열등감은 때론 에너지 원천이 되기도 해요

열등감은 때론
에너지 원천이 되기도 해요
영화감독 이준익

글. 이기원 | 사진. 안홍범 | 2016년 5호

2016. 05. 20 314

올 상반기 영화계의 가장 큰 이슈는 <동주>의 흥행이었다.
불과 5억 원의 제작비를 쓴 이 저예산 영화는 110만 관객을 극장에 불러 모았고, 관객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것이 이준익 감독이다. 어느 영화보다 흥미진진한 그의 삶의 궤적을 들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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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은 한국의 대표적인 영화감독이다. 그야말로 센세이셔널했던 <왕의 남자>를 비롯해 지난해 개봉한 <사도>에 이르는 숱한 화제작이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수십억 원의 제작비는 기본으로 써 오던 그가 순 제작비 5억 원의 작은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의아해 했다. 이준익 같은 감독이 투자를 받지 못했을 리 없는데 왜 굳이 작은 영화를 찍는다고 했을까.
“투자를 많이 받으면 그만큼 부담스러워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부담이 덜하니까 촬영이 정말 신났습니다. 영화에만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요. 물론 저도 의심은 있었습니다. ‘이게 잘될까? 윤동주의 이야기를 사람들이 궁금해 할까?’ 누구나 다 아는 시인이기 때문에 기대와 염려가 동시에 있었죠. 게다가 흥행에 불리한 흑백영화이기도 했고요. 그래도 100만 넘는 관객이 찾아 준 건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예상보다 훨씬 잘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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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박스(주)플러스엠

결과가 아닌 과정의 시대

한 사람이 유명해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조력자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역사 속 위인들 주변에도 훌륭한 조력자들이 있었다. 영화 <동주>를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 영화는 역사 속에서 잊힌 송몽규라는 인물을 재조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인다. 윤동주와 송몽규가 어떻게 서로에게 영향을 끼쳤는지, 또 어떻게 서로를 위로했는지. 말하자면 <동주>는 윤동주의 아름다운 시가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를 찬찬히 살피는 영화다. 이준익 감독이 송몽규를 중요 인물로 다룬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워낙 가난했던 시절을 거쳤습니다. 가난을 빨리 벗어야 했기에 결과 중심적으로만 살아왔어요. 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성장을 이뤘으니 성숙을 생각해야 하는 단계에 왔다고 봐요. 성장을 성숙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과정의 가치를 알아야 하지요. 사람들이 윤동주의 시는 잘 알지만 윤동주란 사람이 어떻게 살다 갔는지 모르는 게 속상했습니다. 송몽규는 윤동주의 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인데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속상했고요. 송몽규는 과정은 성숙했으나 결과가 좋지 않았던 인물이지요. 이젠 그의 가치를 알아봐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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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는
기성세대를 불신하고,
자신들이 선택한 길로
가야 해요.

멘토를 찾지 마라

이준익 감독은 달변가다. 유머러스하면서도 사안의 핵심을 찌르는 그의 말을 듣고 있자면 [천일야화]라도 듣고 있는 기분이 든다. 고민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의지하고 싶어질 정도다. 게다가 드라마틱한 개인사도 가지고 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세종대 미대 2학년 중퇴. 스물한 살에 아이 아빠가 됐고, 정부종합청사의 수위로 일하기도 했다. 영화 포스터를 그리다 영화 수입사를 차렸고, 첫 연출작인 <키드 캅>은 2만 명의 관객을 모은 데 그치며 흥행에 참패. 그리고 <황산벌>로 재기한 뒤 <왕의 남자>의 대흥행까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 성공 스토리에 열광하는 대중의 특성상 그는 이 시대의 멘토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다.
“저는 멘토라는 말이 굉장히 불편해요.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를 의지하기보다는 자신이 선택한 길로 가야 해요.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멘토를 찾고, 또 누군가에게 멘토가 되어 달라고 합니다. 저는 그건 정말 별로인 것 같아요.”
이준익 감독은 자신의 성공담이 과대포장되는 것도, 그 성공담이 가공돼 신화처럼 여겨지는 것도 거부했다. 그저 본인은 자신의 현재를 성실히 살아온 사람일 뿐이고, 좋은 타이밍과 행운이 겹쳐 지금의 이준익이 됐을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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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은 에너지의 원천

그는 고생담을 늘어놓는 걸 싫어한다지만 힘들었던 과거가 현재의 이준익을 만든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집도 가난했다. 집안에 번듯한 완장 찬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결과 이준익 감독의 유년기를 지배한 건 꿈이나 희망이 아니라 열등감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의 말을 경청했고, 다양한 경험을 쌓으려고 노력했다.
“열등감 많지요. 지금도 영화 찍을 때마다 열등감을 느껴요.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이나 <암살>의 최동훈 감독 영화를 보면 늘 자괴감이 들어요. ‘난 저렇게 못 찍을 거야, 노력해도 안 될 거야’ 하는 감정을 매 순간 느끼지요. 하지만 어떻게 보면 계속 그런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요. 열등감이 사라지면 오만해질 수 있어요. 때론 에너지의 원천이 되기도 하고요.”
이준익 감독은 자기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이라고 말한다. 스스로에게 솔직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자신감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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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이 사라지면
오만해질 수 있어요.
때론 에너지의
원천이 되기도 하고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감

지금의 모습만 보면 상상하기 힘들지만 이준익은 어릴 때 수줍음이 많고 온순한 아이였다. 이 수줍음 많은 소년을 지탱해 줬던 건 어머니였다. 그의 어머니는 공부를 못해도 타박하지 않았고, 아들에게 뭔가를 강요한 적도 없었다. 다만 아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낼 거라는 믿음만은 분명했다. 이준익 감독은 어머니의 믿음이 지금까지 자신을 지탱해 주는 것 같다고 한다.
“어머니가 그랬듯이 저 역시 아이에게 단 한 번도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어요.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길 원하긴 했지만요. 아이는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입니다. 인생을 조금 더 먼저 살았다고 해서 ‘세상은 이런 거야’라고 강요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준익 감독은 영화처럼 살아온 영화인이다. 실패도 했고, 성공도 했다. 실패 앞에서는 반성했고, 성공 앞에서는 성숙했다. 그는 깨달음이라는 게 성공보다 실패나 실수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그가 실패를 겁내지 않는 이유다. 이준익 감독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어떻게 하면 성공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자신감을 기를 수 있을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