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탄하고 연결하고 발전하기

감탄하고 연결하고
발전하기길종상가 박길종

글. 최지영 | 사진. 이서연(STUDIO 51) | 2021년 12호

2021. 12. 29 314

길종상가라는 아지트를 열어 아티스트로, 디자이너로, 메이커로 머리와 가슴과 손을
부지런히 쓰며 십여 년간 영토를 일궈온 박길종.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해보자는
실험과 탐색으로 길을 모색해온 창의의 모델이다. 자신만의 포인트를 입혀 삶 곳곳에 예술적 쓸모를
더하는 그의 생각과 방식은 순하고 부드러우며 편안하다.

길종상가 10여 년을 탐색하는 재미

온라인 길종상가를 구경하던 중 시선이 오래 머문 옛 기록이 있다. ‘길종상가 크리스마스 특집! 산타 인력사무소!’ 요즘같은 때 신청할 수 있다면 좋았겠다. 하지만 지금, 그때의 박산타에게는 굵직한 프로젝트 의뢰가 끊이지 않는다. 최근 몇 가지만 꼽으면, 올초 문을 연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의 타워형 수장고와 열린 수장고의 수장대 디자인 및 설계를 맡았고, EBS 프로그램 ‘다큐프라임–예술의 쓸모’에 등장하는 미로 같은 책상을 디자인하고 제작했다. 또 유명 백화점의 테마가 있는 공간을, 한 기업의 식물가전 제품이 있는 팝업 스토어의 공간과 집기를 디자인했다. 그런 중에 개인의 주문에 맞춰 술과 음반, 스피커, 턴테이블 등을 위한 수납장을, 구불구불한 카펫에 어울리는 3단 선반장을 디자인하고 제작했다. 문화예술 공간, 상업 공간, 가정집 할 것 없이 넘나들며 남긴 흔적들을 생각 같아서는 모두 소개하고 싶지만, 온라인 상가를 직접 탐색하는 편이 좋겠다. 시각적 호사와 빙긋 웃음을 유발하는 재미를 누리게 될 것이다. 평범한 눈에는 모두 예술로 비쳐지는데, 마침 그는 예술의 쓸모를 편안하게 이야기해준다.  http://bellroad.1px.kr
“모든 사람의 쓸모가 다 다르고, 사람이 살아가는 데 모든 게 연관되기 마련이잖아요. 각자 자신이 잘하는 일들을 잘 수행하고 있는 세상에서 서로 감탄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연결되고 발전해나가는 것! 예술도 그 중 하나라 생각해요.”

실험하며 탐색하며 만들어온 길 그리고 사람들

주인장 박길종은 일의 성격에 따라 갤러리 등 미술계의 일을 할 때는 아티스트가, 상업 공간을 연출할 때는 디자이너가, 개인이 의뢰한 가구나 생활용품을 제작할 때는 메이커가 되며, 때로 모두가 융합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지난 십여 년간 전에 없던 새로운 업을 일으켜왔고, 이태원 주택가 골목의 작은 편집숍 모습의 길종상가는 그가 차곡차곡 지은 세상인 셈이다. ‘깊은 생각 안하고 대충’ 지었다는 명칭도 회상의 힘과 작가주의적 내음의 멋스러움을 지녔다. 10여 년 전 처음 문을 연 20대 후반의 그는 무모했다고도 할 수 있다.
“어떻게 살면 좋을지 계속 생각하고 실험하던 단계에서 일단 시도해본 거죠. 스스로 책임지며 살아가는 한 젊은이로서 하고 싶은 것들,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해보자 생각했어요.”

박가공이라는 이름으로 묵직한 공구함을 챙겨 생활 서비스를 제공했던 ‘간다 인력사무소’도 실험의 하나였다. 당시 심부름 센터들이 이용되었지만, 그는 자신의 기능과 재능에 재미를 좀 더 얹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다. 주로 지인들의 친구 소개로 연결된, 커튼을 달거나 가구를 조립하는 등의 기능적인 일들인데, 수입보다는 재미와 의미와 손수 만든 쿠키와 부침 들이 담긴 스토리가 보답으로 남았다.

그가 맡은 프로젝트마다 자주 등장하는 크루가 있다. 아버지 뻘인 은혜용달 사장님은 대학 때 선배로부터 소개받은 인연이고, 다른 이들은 처음 1년 정도 혼자 상가를 꾸리면서 한 명씩 영입했다. 일로 만나기보다 친구를 통해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사람관계에서도 박길종이 주는 순순함과 담담함이 서로 닮았지 싶다.

그림과 함께 성장한 시간들

그림과 프라모델 조립과 종이 접기를 좋아하던 소년이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건 손재주에 대한 자신과 옆에서 자주 들려준 ‘잘한다, 잘한다’라는 칭찬 덕분이다. 그때 만든 도자기 꽃병과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 미니어처 등은 몇 년 전 한 전시에 귀하게 쓰이기도 했다. 중∙고등학생 길종도 주로 그림과 만화, 영화, 음악에 시간을 들였다. 공부 욕심이 있었겠지만 그의 부모님은 아들을 다그치지 않으셨다고. 미술을 하겠다 했을 때도 바로 끄덕이셨으니, 어린 시절 얼음 썰매를 만들고 함께 타주신 기억과 함께 부모님이 주신 선물이라면 아들에 대한 믿음이다.

학창 시절의 착실한 생활은 대학에서도 이어졌다. 규칙적으로 출석하며 더 열심히 공부했던 건 좋아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좋은 동기들을 만나 함께 과제를 수행하는 것도 좋았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후 목공 등으로 영역을 넓힐 수 있었던 데는 아르바이트의 영향이 있었다.
“대개 미술 전공자들이 취직에 뜻이 별로 없고 진로를 고민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잖아요. 그 중 시급이 높은 편인 목공소에서 1년 넘게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거기서 많이 배웠어요. 그러면서 미술 하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설치 작업에 목공을 접목시키기도 했고요. 차츰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고 영역이 넓어진 거죠.”

나만의 예술가구 하나쯤 갖고 싶다면

큰 프로젝트가 끝났지만 바로 다음 일을 준비하면서, 지금처럼 ‘잠깐의 시간과 재료와 생각이 남으면’ 혼자 만들기도 한다. 이번에는 오래 쓴 가스레인지를 바꾸면서 하부장을 만들었다. 만드는 건 금방이라도 내 것은 자꾸 미룬 탓에 꽤 오래 걸린다. 내 집을 위해 새로 만들지는 않는 편이라 가지고 있던 것을 계속 쓰거나 남는 재료를 활용하는 정도다.
하지만 개인 주문 제작은 지금도 가능하다. 실용성에 박길종만의 포인트가 함유된 생활예술가구를 하나쯤 갖고 싶다면 되도록 구체적으로 의뢰하면 좋다. 품목과 크기, 기능, 용도와 장소 등을 세세히 밝힐수록 도움되고, 재료에 관한 취향과 로망도 중요하다. 조건들에 따라 원형 테이블 하나라도 가격은 천차만별이니 대략 예산을 정해두면 더 순조롭다고 주인장이 안내한다.

둘러보니 박길종은 자신의 길을 찾는 매우 창의적인 생각과 방식을 실천해온 듯하다. 아버지가 되기 전인 탓인지 그런 그도 아이들에 관해 이야기하길 무척 조심스러워 한다. 다만 지금처럼 미술관을 방문하기 좋은 환경을 충분히 활용하길 바란다. “당장은 재미를 붙이지 못 붙이는 듯해도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생각날 것 같아요. 또 어릴 때는 아무래도 영화를 좋아하잖아요. 저도 영화, 음악, 드라마 등 영상을 많이 봤는데,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누구나 공부를 좋아하는 건 아니고 아직 눈에 띄지 않을 순 있지만, 조금이라도 더 좋아하는 것이 있을 거예요. 거기에서 시작하면 좋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