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서 미래를 봅니다

박물관에서
미래를 봅니다유물 애호가 · 작가 김서울

글. 김문영 | 사진. 현진 (STUDIO 51) | 2021년 9호

2021. 09. 29 27

좋아하는 유물을 공유하고 싶어서 글쓰기를 시작했고 세 권의 책을 냈다.
자연스럽게 작가로 불리고 강의를 하지만 ‘박물관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쪽이 더 편하다.
작가의 자격 문제보다는 하나의 직업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기가 망설여지기 때문일 것이다.
내일은 또 다른 일을 하고 좌충우돌하더라도 마음이 이끄는 길로 솔직하게 따라나서는 것,
김서울이라는 사람이 지금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방식이다.

서울 사는 김 서방의 유물 이야기

김서울은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를 떠올리며 지은 필명이다. 익명성의 공간인 SNS에서 유물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을 풀어놓기에 이만큼 어울리는 이름이 또 있을까. 어떤 유물은 귀엽고 깜찍해서 눈길이 머문다. 그것을 사용했을 사람들이 떠올라 주전자의 손잡이에 손가락을 걸어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기도 한다. 그런 소소한 감상을 자유롭게 공유하는 공간에 또 다른 김 서방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김서울식 유물 감상을 쓰기 시작한 지 2년 만인 2016년에 첫 책 《유물즈》를 냈고 독립출판계의 화제작이 됐다.

김서울식 소소하고 개인적인 유물 감상 작업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텀블벅 연재로 시작한 ‘시리즈 오브 시리즈 - 뮤지엄서울’을 모으고 살을 더해 2020년에는 《뮤지엄서울》을 펴냈다. 올해는 사진작가와 함께 작업한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을 출간했다.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를 설명하지 않고도 궁궐의 나무와 돌, 유물에 대한 소소한 감상을 펼쳐놓은 책이다. 묵직하게 전각을 받치고 있는 석조기단을 보면서 정사 돌보느라 지친 왕이 머리를 식히며 바람을 쐬던 베란다를 상상하는 작가의 시선을 따라 독자들은 근엄하거나 지루하다고 느꼈던 궁궐을 오늘 자신의 삶 속 공간으로 가볍게 산책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어떤 유물은 못생기고 어설프다

옛것에 대한 탐색과 글쓰기를 계속해 나가는 김서울 작가의 태도는 숭고함에 대한 경배와는 거리가 멀다. 이 작가 특유의 젊고 발랄한 표현은 미술이나 역사 교과서의 전형적인 설명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온다. 경복궁에 ‘댄스 댄스 레볼루션 나무’가 있다고 하면 누구든 색다른 흥미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통통 튀는 표현보다 중요한 것은 소소한 감상을 자신의 언어로 풀어놓는 태도이다. 어떤 유물은 못생겨 보인다거나 만듦새가 어설프다는 식의 감상은 용기 없이는 드러내기 쉽지 않다. 누구나 SNS에 일상을 기록하고 직접 본 영화와 공연에 대한 리뷰를 공유하는 시대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감상에 좀처럼 확신을 갖지 못한다. 유물이나 전통이 아무리 유명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현재를 감상의 중심에 놓는 태도야말로 김서울 작가가 남들과 다른 이야기를 쓸 수 있는 비결일 것이다.

글쓰기를 제대로 배워 본 적은 없다. 역사는 오히려 싫어하는 쪽이었다. 대학 전공으로 전통회화를 선택했지만 오래지 않아 그만두고 보존과학으로 변경했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문화재 보존처리 분야에서 일을 시작했다. 문화재 보존처리는 흥미로웠고 국가의 중요한 자산을 보존하는 일인 만큼 긍지를 가질 수 있었지만, 개인에게 너무 많은 희생을 요구했다. 대부분 계약직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고용은 불안정하고 대우는 최저시급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문화재를 다루는 소수의 사람들로 이루어지는 좁은 사회에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 일에 회의를 느끼던 차에 첫 책의 성공이 계기가 되어 프리랜서 작가로 전직을 결정했다.

나의 현재를 살아가는 힘

“어떤 일이든 이전보다는 수입이 좋아서 만족스럽더라고요. 기타 수리를 배워서 악기 파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행복했어요. 지금은 대학원에서 박물관학을 공부하고 있고 언제든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 선택한 길, 미래에 대해 두려움은 없는 편이에요.” 김서울 작가는 딸의 취향과 선택을 수긍하고 수용해주셨던 부모님의 태도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현재를 충실히 살아갈 수 있는 토대가 된 것 같다고 했다. 공부를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았고, 유별나게 보일 수 있는 행동으로 학교 선생님들의 걱정을 산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딸에게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묻고 ‘너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해주신 어머니 덕분에 몇 번이나 전공과 진로를 바꾸면서도 김서울이라는 이름을 만들고 여기까지 왔다.

김서울 작가에게 옛것을 본다는 것은 지식을 얻는 학습이 아니라 현재로 이어진 과거를 유추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과정, 미래지향적인 시간이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전통과 유물을 소재로 자유로운 ‘스몰토크’를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이 해태상이 마음에 드니?”

아이를 데리고 박물관을 찾는 부모에게도 마찬가지로 스몰토크를 권한다. 많은 부모는 아이가 방학 숙제를 해결하도록 박물관을 찾고 아이는 유물 설명 카드의 내용을 공책에 옮겨 적기 바쁘다. 김서울 작가는 아이가 교재를 덮고 부모와 감상을 나누는 것이 박물관과 친해지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유물을 오래도록 진지하게 볼 필요도, 모든 걸 볼 필요도 없어요. 아이에게 지금 보고 있는 유물이 마음에 드는지 물어보세요. 괜찮은 것 같다고 하면 조금 더 보고, 싫다고 하면 다른 걸 보러 가면 돼요. 둘러보다가 지치면 나와서 쉬거나 산책을 해요. 어떤 게 좋았는지 되짚어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좋았던 기억을 쌓아가세요. 저녁 식사 메뉴 이야기하듯 가볍게 주고받다 보면 점점 할 이야기가 많아질 거예요.”

유물에는 과거를 살았던 인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김서울 작가는 수많은 우연이 겹치고 겹치면서 현재에 다다른 그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다. 박물관은 유물이 품고 있는 사연과 시간을 보존해 미래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고, 그 역할에 함께하고 싶어 박물관과 유물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어쩌면 누군가를 만나는 지금, 카페 탁자에 놓인 컵이 운 좋게 미래의 유물이 되는 상상도 한다. 그런 상상만으로도 평범하지만 충실히 살아가는 하루가 가치 있다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