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한 번! 우리만의 무늬가 좋아

일 년에 한 번!
우리만의 무늬가 좋아

글. 김원중 | 일러스트. 벼리 | 2021년 9호

2021. 09. 29 52

우리 가족은 일 년에 한 번 10가지 ‘한다’ 리스트를 작성하는 게 습관이 됐다.
A4 크기의 도톰한 색지에 각자 손글씨로 쓰면서 이야기를 나눈 후 가장 잘 보이는 거실 벽에 나란히 붙여놓는다.
자주 보면서 잊지 않고 실천하기 위해서다. 가훈을 적어 오라는 아이들 유치원 과제 때문에 엉겁결에 시작했지만,
그닥 엄격하지 않게 일곱 해째 해오니 나름 우리집만의 삶의 무늬가 그려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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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가훈이 뭐예요?

아이들이 글씨를 쓸 줄 알게 되고 자기 생각을 글로 표현하기 시작한 유치원 때, 우리집 가훈이 뭐냐는 아이들의 물음에 한참 고민했었다. 그로부터 가훈이라기보다 우리 식구들만의 실천방침, 루틴 하나쯤은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 싶어 시작한 일이 어느덧 매년 한 번씩 거쳐야 하는 관문으로 정해진 지 일곱 해가 지나가고 있다.

처음 가훈에 대해 아이들이 물었을 때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국민학교라 불리던 시절 학교에 입학한 나는 가정환경조사서에 ‘가훈(家訓)’ 적는 칸만 비워서 냈다. 시골 초가집 마루에 딱히 가훈을 걸어놓지도 않았었고, 할머니와 부모님도 보릿고개 넘기기에 급급했던 시절이라 무슨 거창한 집안이라고 가훈을 정해놓았을 리도 없었다. 촌이긴 해도 면 소재지에서 태어나 큰 도시에 나가 고등학교까지 졸업하신 아버지는 나름 인자한 ‘먹물’이시긴 했지만, 정치 활동을 하시다 할머니의 만류로 그만두신 후론 농사짓는 것 외에는 세상 모든 일에 관심을 끊으신 듯 가훈이 뭐냐는 물음에 심드렁하셨다.

‘화목하면 되지 무얼 더 바래’

2학년이 되어 또다시 가정환경조사서를 써야 했는데, 나는 가훈 칸도 적어 내고 싶어 아버지께 “왜 우리는 가훈이 없어요?”라고 물었다. 아버지는 웃으시며 “그냥 가족끼리 화목하게 지내면 되지 무얼 더 바래”라고 다소 의미 없이 말씀하시고는 일을 나가셨다. 커다란 목판에 멋있는 한자로 ‘家和萬事成’ 같은 글귀가 마루 한가운데에 턱 하니 걸려 있는 친구네 집을 볼 때면(심지어 봄이면 싸리문 앞에 화선지에 붓글씨로 적어놓은 ‘立春大吉’도 무슨 글자인지는 몰라도 멋있어 보였다), ‘에이, 우리도 저런 거 하나 걸어놓지’라는 부러움이 있었다. 나는 한참을 생각해서 ‘성실, 화목’이라는 많이도 진부한 두 단어를 적어 제출하였고, 다음 해에도 그다음 해에도 똑같은 문구를 써넣었다. 그나마 나에게만 존재했던 ‘성실, 화목’은, 중학교에 들어가 가정환경조사서가 없어진 후로는 내 뇌리에서도 금세 사라져버렸고, 가훈이란 단어도 점점 생소한 말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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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한다’ 리스트 탄생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니던 어느 날, 유치원에서 배웠다며 “우리집 가훈이 뭐예요?”라고 물었다. 나는 일단 “정해놓은 가훈은 없고 가족끼리 화목하게 지내면 되지 뭐”라고 삼십여 년 전 아버지와 똑같은 대답을 하고나서는 약간 후회가 되었다. “이참에 하나 정해서 써놓을까”라는 내 말에 아내는 없던 걸 다급히 정하는 것도 민망하다며 이왕이면 제대로 하자고 했다. “차라리 한 해 동안 각자 이루고 싶은 것이나 하고 싶은 일들을 5가지나 10가지씩 적어보는 건 어때? 생각만 하기보다 적어서 눈에 보이는 데다 붙여놔야 실천하게 되니까. 보통 새해에 많이들 하지만 꼭 그때만 하라는 법은 없잖아. 유치원에 제출하려고 뚝딱 만들지 말고, 우리도 한번 해보자.”

마침 한창 캘리그래피를 배우고 있던 아내는 두툼하고 예쁜 색지를 꺼내 멋을 내 쓰기 시작했다. 캘리 연습을 하느라 평소 좋은 문구를 많이 찾아보고 메모하던 터였다. 우선 제목부터 정성 들여 크게 써넣었다. “2015년 ○○○이 한다!” 동그라미 안에는 각자 이름을 손글씨로 직접 써넣으라며. 1. 하루에 한 번 식구들 안아주기 2. 악기 한 가지 연습하기 3. 매일 만 보 걷기 4. 집에 올 때 계단으로 올라오기(우리집은 14층이었다) 등등 현실적으로 할 수 있지만 지키기는 어려운 일 열 가지를 타이틀 아래 써서 거실 한쪽 벽에 붙여놓았다. ‘뭐 그도 괜찮네. 근데 지킬 수는 있겠어?’라고 되묻던 중 이게 웬일!! 우리 아들들도 삐뚤빼뚤한 글씨로 쓰기 시작한 것이었다.

“2015년 우리가 한다”
1. 서로 싸우지 않기 2. 일주일에 한 권씩 책 읽기 3.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잘 먹기 4. 매일 운동하기(야구, 축구 등)··· 처음 몇 가지는 두 녀석이 소곤거리면서 평소 엄마가 강조하던 것들을 적어넣다가 이내 생각이 막혔는지 더이상 적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지켜보다가 나도 따로 쓰기 시작했다.

“2015년 아빠가 한다”
로또에 연속 당첨되기, 픽업트럭 사기, 우리 가족이 원하는 새로운 집 짓기, 뱃살을 빼서 대학 때 허리둘레를 되찾아 26인치 바지 입기, 수염을 관우처럼 길러보기, 키가 20센티미터 더 커서 위층 공기로 숨쉬기···.
황당하고 불가능한 것도 있지만 평소 자주 꿈꾸던 것들이었다. 아빠가 하나씩 적을 때마다 웃긴다고 낄낄대던 두 녀석이 서로 등을 돌리더니, 상의해서 쓰던 항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몸집이 더 크고 우람한 동생은 ‘닌텐도 게임기 사기, 건담 100개 조립하기, 야구 글러브와 방망이 사기’ 등등 평소 좋아하고 갖고 싶던 것을 추가로 적은 반면, 평소 활발하던 큰아이는 살짝 날 뭉클하게 했다. 아빠랑 같이 주말마다 야구하기, 아빠랑 같이 책 읽기, 아빠랑 같이 게임하기···. 아이들이 태어나 한창 클 때 회사 일에 치여 자주 놀아주지 못한 것이 녀석에게는 이룰 수 없는 꿈이었으려니 생각하니···.

서로 웃기도 하고 응원도 하며

소원과 목표, 다짐 등이 뒤섞인 리스트를 각자 그렇게 완성했다. 함께 얘기를 나누면서 서로 웃기도 하고 잘해보자고 다짐도 했지만 작심삼일이 우리 가족도 피해가지는 않았으니, 그해에 끝까지 이룬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그래도 벽에 그대로 붙어 있는 종이를 들여다보며 야구도 함께 하고(정말 가끔이지만), 피곤해도 함께 책을 읽고(역시 가끔), 함께 게임도 했으며, 아내도 세 남자가 단체로 눈을 흘기는 날에는 계단을 오르기도 했었다.

다음 해에도 그다음 해에도 우리는 일 년에 한 번씩, ‘한다’ 리스트를 만들고 있다. 연초에 하자고 했지만 반드시 고집하지는 않았다. 때로는 봄맞이 기념으로, 어떤 때는 여름방학 계획으로 적기도 했다. 그 사이 두 아들의 마음은 점점 넓어지고 포부는 커지고 있다. 일 년에 한 번이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변해가는 걸 충분히 알 수 있다.

우리 가족만의 작은 습관으로

벌써 일곱 번째, 엄마의 강요에 의한 면이 없진 않고, 아직은 바라는 것과 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중심으로 때로는 심드렁하게 휘갈기는 듯도 하지만, 그 내용은 차츰 개인적인 욕심보다 친구나 학교, 사회 등으로 관심이 넓어지고 있다. 기후 위기나 환경 보호, 아프리카 친구 돕기 등과 같은 문구가 등장하기도 하고(학교에서 배운 것을 대충 적었을 수도 있지만 그마저도 흐뭇함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영어학원 블랙 단계 끝내기, 로보파워 7단계 도전하기 등 엄마가 바라는 것을 적절히 집어넣기도 하는 것을 보면 아이들이 자라고 있음을 눈으로 느낄 수 있다. 물론 매년 최고로 정성 들여 '최고급 핸드폰 받기'를 써 넣는다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말이다.

네 식구가 적은 것을 다 실천하고 이룰 수는 없어도 서로 놀리기도 하고 격려도 하며 마음을 들어주는 것이 우리들의 습관이 된 것 같다. 우리만의 삶의 무늬랄까. 아들들은 또 얼마나 생각이 커졌는지 궁금해서 맘껏 상상하느라 연말이면 아내와 나는 밤을 꼬박 새우게 된다. 아이들 머리가 완전히 커지는 고등학생 때까지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김원중 은 회사원으로 아들 둘을 두었다. 점점 아버지의 역할이 중요함을 깨달아, 맞벌이하는 아내와 가사 및 교육을 적극적으로 분담하고 있다. 두 아들과 테니스, 야구, 축구 등 스포츠 경기 관람을 제일 좋아하며, 한국사와 세계사의 풍부한 뒷이야기로 아이들과의 대화를 즐긴다. 요즘은 매일 저녁 《곰브리치 세계사》를 소리내 읽어주고 이야기를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