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보듯 너를 본다

꽃을 보듯 너를 본다시인 나태주

글. 최지영 | 사진. 남윤중(STUDIO 51) | 2021년 8호

2021. 08. 31 251

‘나는 마이너’였다고 말하는 풀꽃 시인. 시인 교사, 시인 교장으로서 43년간의 교단생활을 마치고,
지금은 오직 시인으로서만 활동한다. 시가 브랜드가 된 공주풀꽃문학관을 열어 전국에 사례가 없는,
지속 가능한 문학관의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한국시인협회장으로서 사회적 몫을 지고 있다.
자세히, 오래, 그렇게 보아달라. 풀꽃 시인의 마음은 변함없다.

풀꽃시인과 공주풀꽃문학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 아이들을 가르치며 시를 쓰던 시인이 아이들을 보며 ‘낳은’, 스물네 글자의 이 짧은 시를 읊으면서 사람들은 그를 ‘풀꽃 시인’이라 불러주었다. 그리고 ‘풀꽃’은 시인이 살고 있는 공주의 오래되어 불 꺼진 거리를 살려냈다. 그 거리의 끄트머리 즈음 낮은 언덕에 풀꽃문학관을 열 때 시인의 마음은 풀꽃을 향한 마음과 같았다. 공주도 자세히 보면 예쁘고, 오래 보면 사랑스럽지 않은가. 그렇게 보아달라. 8년 전부터 공주시가 터를 내어주고 시인의 콘텐츠로 채운 공주풀꽃문학관은, 이제 나라에서도 관심을 가져 곧 지금의 뒤쪽 자리에 다시 지어질 예정이다.
“이 거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 그 기점이 여기였어요. 문학관이 들어섬으로써 공주 구도심의 꺼진 불을 밝힐 길이 생긴 것이에요. 풀꽃문학관은 공주에서 거의 유일하게 미래지향적이고 변화하는, 아직도 성장하는 문화공간이에요.”

시인에게 이 집은 ‘풀이 놀러와서 사는 집’이다. 놀러 와서 사는 풀들을 쫓지 않는 집이다. 이렇듯 풀은 살라고 하는 곳에서 살지 않고, 살고 싶은 데서 산다고 했다.

아무때나 쓰고, 아무데서나 쓴다

“생텍쥐페리가 이렇게 얘기해요. ‘어린아이 시절이 없었던 어른은 없다. 그러나 어린아이 시절을 기억하는 어른은 그다지 많지 않다’. 시인이 아닌 사람은 다 버리고 떠나와서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시인은 그것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 시간과 장소가 소거되고 없음에도 불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이게 시인이에요.”

지난 건 잊어버리고 앞으로 나가면 좋겠는데, 그러질 못해 다 가지고 있으니 형벌과도 같다고 했다. 시인이 돼서 시를 쓴다는 것은 평생 형벌을 받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형벌이라 생각하지 않고, 감수하면서 묵묵하게 가는 사람, 시인 나태주. 시인이 말했다. “그러니 아무리 멋있어도, 좋아보여도 시는 그 사람만 갖게 하세요. 시인 되려 하지 마세요.”

더욱이 작정하고 쓰는 글과 달리 시를 쓰게 하는 힘이 시인에게 있지 않고 시, 그것한테 있다고 했다. 안에서 솟아나야 써지는 것이 시이고, 시를 잉태해 가슴에 품어 기르고 낳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시인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태주 시인은 언제 시를 쓰는 걸까. “그러니, 말할게요. 시는 아무때나 쓰고, 아무데서나 쓴다. 예정이란 없어요.”

나는 60년을 노력했어요

시인이기 이전에 그는 초등학교 교사였고,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시인이 된 후로는 시인이자 교사로 살았다. 43년의 교단생활을 마치고 2007년 교장으로 정년퇴임을 한 뒤로는 시인으로서만 더욱 열심히 시를 쓰고 더 많은 책을 내고 강연을 한다. 젊은 세대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편지글로 담아 최근에 펴낸 《마이너 없이 메이저 없다》에서 시인은 ‘정말로 부지런히 읽고 외우고 쓰고 베끼고 그런 삶을 끊임없이 계속했습니다’라고 적었다. 열여섯 살부터 지금까지 60년을 그렇게 해왔다고 했다. 오늘의 그를 만든 것은 결핍이었으며,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한 시간이었다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미 책이나 방송에서도 밝힌 바, 재능이나 환경이 아닌 좋아하는 마음이었다. 나아가 공자의 ‘락자(樂者)’야말로 인생의 최정점이라 강조한다. 인생의 질서는 상위부터 ‘즐긴다, 좋아한다, 안다’ 순임을 기억할 일이다.

아이들을 락자(樂者)로 안내해야

“지금 학교의 질서는 ‘안다’ 중심이 아닐까요. 지(知)가 기본이긴 하지만, 지는 호(好)를 위한, 호는 ‘락(樂)’을 위한 것이에요. 이미 우리 모두 다 아는 거지요. 우리는 호자(好者), 락자(樂者)로 가야 해요. 우리 아이들을 락자로 안내해야 해요.”

일흔을 넘긴 시인에게 락자로 가는 그 길에 시만큼 좋은 것이 없다. 시를 그냥 읽으면 된다. “그냥 눈으로 읽어요. 그리고 진짜 좋으면 낭송을 하는 거예요. 시 낭송은 그렇게 하는 거예요.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것을 즐기기 위해서 낭랑한 목소리로···. 재능시낭송대회는 바로 락자의 수준인 거지요.”

서브이미지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는 시인의 눈

지금은 전국으로 강연을 다니며 다양한 독자들을 만나지만, 아이들을 만나 건강한 에너지와 활기를 얻을 수 있어 더 좋다. ‘요즘 아이들은 솔직하고 담백합니다. 꾸밈이 없습니다. 조금은 버릇이 없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미숙함으로 보아줄 문제입니다. 오히려 그러한 점을 장점으로 보아줄 때 아이들은 점점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믿습니다’라며, ‘중학생을 위하여’라는 시로 화답하기도 했다.
‘(···)정이나 칭찬할 것이 없으면 / 네 굵고도 튼튼한 다리를 / 칭찬하라 // 그 다리로 하여 너는 / 대지를 굳게 딛고 서 있는 것이고 / 멀리까지 갈 수도 있는 것이다.(···)’

사춘기 아이들을 보는 시인의 눈은 너그럽다. 인생에서 가장 난해하고 중요한 시절, 성인으로 가는 꼭 필요한 길이다. 부모라면 시인의 이 시선을 기억할 일이다.
“나에 대한 자각이 시작되는 시기, 자기 몸을 좀 더 굳게 갖고자 하는 의지, 행동, 노력··· 그런 것들이 사춘기예요. 매우 축복해줘야 되고, 매우 주목해줘야 되고, 매우 잘해줘야 됩니다. 더러 거친 행동도 이면에 무엇이 있나 관심을 갖고 봐줘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