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넌 뭘 하고 싶은데?’

‘그럼 넌 뭘 하고 싶은데?’

글. 이해랑 | 일러스트. 벼리 | 2021년 6호

2021. 06. 30 135

누구나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가장 즐겁다.
특히 아이들은 그게 정말 좋으면 부모한테 이야기하며 공감 받고 싶어 한다.
취향을 감지하고 경험하고 즐기는 과정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물론 어린 시절의 취향은 시시각각 변하지만, 언제 어떤 모습이든 부모로부터 존중받는다면
아이는 힘을 얻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칠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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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기대 혹은 초조함

학부모라면 주로 아이의 학업에 동기를 주려고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나도 아이가 초·중·고 학습을 제대로 마치고 사회에서 인정받는 대학 공부까지 마치길 바란다. 이왕이면 그 과정들을 잘 밟아 좋은 위치에서 출발했으면 좋겠고, 홀로 섰을 때 최소한 먹고사는 문제에서 자유로우면 좋겠다. 여러 사교육과 학습 프로그램들이 부모에게 아이의 학업을 이끌어야 한다며 손짓하고, 그렇게 가르쳐야 할 것 같은 학업이 점차 늘어났다. 그만큼 조바심도 커졌다.

중학교 2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4학년 딸을 둔 나는, 아이들이 학교 공부에 어려움을 느끼는 영어와 수학, 그리고 원하는 예체능 한 가지 정도 사교육의 힘을 빌리고 있다. 많은 것을 적용하진 않았지만 두 아이를 키우는 동안 어쩔 수 없이 뒤따르는 학업에 대한 조바심을 겪으며 깨달은 게 있다. 아이에게 주려는 학업 동기는 대부분 부모의 기대와 바람 혹은 막연한 초조함이라는 것을.

먹고 싶을 때, 하고 싶을 때

큰애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교육부가 지원하는 영어 튜터 수업을 학교에서 진행한다는 안내문을 받고, 나와 남편은 아이를 참가시키고 싶었다. 큰애는 내성적인 성격 탓에 단체 활동을 꺼려해서 그동안 교과과정 이외의 활동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아이의 성향을 알기에 우리 부부도 무언가 억지로 시키진 않았었는데, 유독 그 수업은 욕심이 났다. 그렇게 계속 소극적인 채로 둘 순 없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평소와 달리 강한 어조로 아이에게 권하게 되었다. “매번 하기 싫다고만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한번 해보자. 낯설겠지만 분명 아는 친구도 있을 것이고 경험해보면 도움이 될 거야.” 그렇게 한번 참가하는 걸로 하겠다며 신청서를 쓰고 있는데, 아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저 안 하면 안 돼요? 모르는 애들이랑 잘하지도 못하는 영어로 말해야 한다는 거 싫어요. 하고 싶은 사람만 신청하는 거라고 했는데, 나는 하기 싫은데 왜 신청해야 돼요?” 정말 하기 싫은데, 싫다고 하면 혼날 것 같은 분위기여서 답답함에 눈물이 터진 것이었다.

‘그럼 넌 뭘 하고 싶은데? 그렇게 죄다 하기 싫으면 대체 뭘 할 건데?’ 하는 날 선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었다. 그러다 문득 억지로 시켜서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었다. 아무리 필요하고 좋다고 설명해도 스스로 뜻이 없다면 강요에 불과했다. 먹고 싶을 때 가장 맛있게 먹게 되는 것처럼, 뭐든 하고 싶을 때 해야 가장 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고 난 후로 아이에게 강요가 되는 일은 하지 않았다. 마음을 유연하게 갖고 지켜보니 관심 가는 것을 스스로 알아보고, 해보고 싶다고 밝히며 자신만의 활동을 하려는 아이가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우리도 응원을 보냈다. 그렇게 큰애는 기타를 배웠고, 아크로바틱 강습을 받았고, 친구들과 공부하고 싶다며 학원을 옮겼다. 운동을 싫어하던 녀석이 농구 클럽에 나가고, 노래를 잘하고 싶다며 영상을 찾아 목청껏 따라 부른다. 학업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런들 어떠랴. 무엇이든 하고 싶다는 욕구와 의지가 있다는 게 고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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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라도 매일, 아이의 내면을 만나려

나는 아이들이 단잠에 빠져 있을 때 출근하고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오는 워킹맘이다 보니, 하루 중 아이들과 만나는 얼마 안 되는 시간마저 뭔가 강요하고 체크만 하는 엄마이고 싶지 않았다. 학업에 관해서는 숙제를 했는지, 내일의 수업 준비는 마쳤는지 정도만 확인하고, 나머지는 아이의 마음을 들어보는 시간으로 채워간다. 기분 좋은 대화를 많이 나누는 것, 그로 인한 긍정적인 마음이 일상의 자신감으로 차곡차곡 쌓이기를 바라며 짧은 시간이라도 매일, 아이들과 좋은 방향의 대화를 나누려 노력한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딸이 내 뒤를 졸졸 따라와 그날 배운 것, 친구들과 있었던 일들을 줄줄 늘어놓는다. 새롭게 배운 피아노곡을 들어보라며 연주할 때면 열심히 듣고 끝나자마자 감탄과 박수를 보내며 성의껏 감상평을 한다. “강약을 주면서 치는 게 진짜 피아니스트 같았어. 점점 프로 같아지는데? 지난번에 연주했던 곡도 좋았는데, 또 쳐줄 수 있어?” 그러면 딸은 으쓱해져서는 ‘아, 지난번 알라딘 그 곡? 음~, 조금 까먹은 것 같긴 한데 한번 해볼게’ 하고 들려준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친한 친구들을 캐릭터로 자주 그리는데 그걸 보여줄 때는 나도 주문을 더한다. “어, 이번에는 아이돌 버전이네? 다들 머리도 길고 옷도 예쁘고 말야. 멋지다! 엄마도 이렇게 한번 그려줄 수 있어?” “엄마? 그래~ 그려볼게. 지금처럼 긴 머리로 할까 중단발로 할까? 엄마, 치마가 좋아 바지가 좋아? 무슨 색 옷이 좋을까?” 딸은 세세히도 물으며 나에게 맞춰 그리려 노력한다. 이런 시간을 통해 즐겁게 연습하고 칭찬도 들으며 흥미를 이어간다.

사춘기 아들은 좀처럼 방에서 나오지 않으므로 내가 찾아가 말을 걸곤 한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길래 당연히 게임 하는 줄 알고 ‘오늘도 게임 중이신가요?’ 하며 다가가니, 뮤직 비디오를 보는 중이었다. ‘엄마, 이 음악 되게 좋은데 한번 들어보실래요?’라며 듣고 있던 음악을 나에게도 권했다. 전에는 랩에 푹 빠져 있더니 이번에는 그루브 있는 팝송이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나 영화를 추천해줄 때면 더이상 어리기만 하지 않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제가 노래를 잘하고 싶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지금 변성기라 그런지 목에 금방 무리가 오는 것 같아서, 노래는 조금씩 하고 대신 기타 연습으로 음감을 익히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요.” 아들은 전에 학원에 다니며 배워둔 게 있으니 이번에는 유튜브로 독학하면 될 것 같단다. 꽤 구체적으로 계획을 수정하는 모습에서 아이의 진심이 느껴졌다. 맨날 게임만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다행히 그렇지만은 않았다. 원하는 대로 꾸준히 해보라고 나는 격려해준다.

너의 취향을 찾아가는 길에

누구나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가장 즐겁다. 특히 아이들은 그게 정말 좋으면 부모한테 이야기하며 공감 받고 싶어 한다. 취향을 감지하고 경험하고 즐기는 과정이 바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좋아하는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를 조금씩 구체화해 나가는 아이들. 물론 어린 시절의 취향은 시시각각 변하지만, 언제 어떤 모습이든 부모로부터 존중받는다면 아이는 힘을 얻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칠 것이다. 원하는 만큼 해내든 실패를 맛보든 스스로 선택하고 결과를 쌓는 경험을 통해 내면이 풍성해지리라 믿는다. 자신이 만들어낸 재미있고 즐거운 순간이 많을 때, 그 기운이 아이를 긍정적으로 이끌어주지 않을까. 내 기대, 내 생각과 다르게 갈지라도 언제나 아이를 따뜻하게 바라보며 안아주는 엄마이고 싶다.

이해랑은 무역회사에 다니고 있는 회사원이자 15년차 워킹맘이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늘 나만의 방법을 찾으려 노력한다. 출근 후 아이들이 일어났을 때 느낄 엄마 없는 허전함이 마음 아파 두 아이에게 매일 아침 편지를 남기고 출근하기를 5년간 지속했다. 아이들이 언제나 부모와 집, 가족을 편안한 울타리로 느끼길 바라며, 다정하고 쉼터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 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휴식과 위로와 울림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