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만의 고품격 일탈을

지금, 나만의 고품격 일탈을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고가은

글. 최수인 | 사진. 이서연(STUDIO 51) | 2021년 6호

2021. 06. 30 319

제주도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올해 안암 캠퍼스에 입성한 가은 양은 새로운 학문의 자극과 문화적 활력으로 가득하다.
비대면의 일상치고는 매우 왕성한 활동으로 지적, 문화적 영토를 확장해가는 기쁨이 하루하루를 채운다.
안정보다는 비전 있는 삶을 생각하며 더 많은 체험으로 길을 모색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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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여기는 대학 캠퍼스!

전공이 정치외교학이라고는 해도 갓 입학한 새내기로서 정치적인 의견을 드러내는 분위기에는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그런데 공개 토론 자리를 열어 의견과 주장을 펼친 학회 선배들의 자유분방하고 열정 넘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시원하게 열리는 걸 느꼈다. 캠퍼스 곳곳에 붙은 대자보는 또 어쩌면 그리 신선하던지. 대학문화의 꽃이라 들은 그 앞에서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불과 반 년 전에는 그려보기 어렵던, 이 낯설고도 신선한 기류 속에서 온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아, 내가 대학에 왔구나.

가은 양은 대학생으로서 왕성하게 견문을 넓히는 중이다. 처음에는 당황하고 위축되기도 했었다. 대면의 삶이 너무도 익숙한데 오리엔테이션부터 학회, 동아리, 심지어 향우회마저 온라인이라니. 하지만 차츰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고 함께 하고 싶은 일도 권하면서 많이 편안해졌다. 이제는 마음을 나누며 대화할 수 있는 친구들도 생겼다.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비대면의 일상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런 중에도 누릴 수 있는 즐거운 것들이 많다. 국립발레단의 공연이며 뮤지컬 시카고와 명성황후, 앤디 워홀 전시회 등 그간 교과서나 뉴스에서 접하던 작품들을 직접 감상하며 흥분되기도 했다. 정규 강좌 수강만으로 대학생활의 의미를 논하기엔 부족하다. 제주에서 유학을 온 만큼 더 많은 것에 흠뻑 빠져보고 싶다.

‘저는 유흥보다는 문화 활동으로 나를 채우고 싶어요. 그건 나만의 일탈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느낌이 너무 좋아요’라는 가은 양, 지금 고품격 일탈을 즐기고 있다.

참된 지적 활동에 눈뜨는 정치학도

물론 무게중심인 학업에서도 새로 눈을 뜨고 있다. ‘정치학 전공 입문’이라든지 ‘한일 교류의 역사’, ‘자유 정의 진리’ 같은 과목을 접하면서 비로소 정치학도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자유 정의 진리’는 과학 기술과 철학, 심리학 등을 융합해 접근함으로써 흥미를 더해주며, ‘자연재해의 이해’는 어려서부터 좋아하던 과학 분야의 관심과 지식을 심화하고 확장할 수 있어 선택에 만족한다. 강좌명과 교재의 두께에서부터 차이 나는 대학에서의 공부, 사실 가은 양에게는 ‘공부를 한다’는 점에서는 이전과 다를 게 없다. 하지만 한계가 없어 보이는 다양한 분야를 연계하고 융합하는 공부라서 자신의 성향과도 잘 맞고, 습득과 깊은 사고를 거쳐야 하는 진정한 지적 활동임을 깨닫는다. 종국에는 자신의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글쓰기가 중요한 학과라는 점도 알게 되었다. 입학 초 대학생활에 관한 교수와의 개별 면담에서 학과에 대한 자부심도 확고해졌다.
“학과 교수님들 모두 연구 성과도 높고 강의력도 쟁쟁한 분들이시거든요. 신입생으로서 교수님과의 일 대 일 면담 기회가 있었는데, 저는 대학에서의 글쓰기에 관해 여쭈었어요. 적합한 질문일지 몰라 많이 떨렸는데, 막상 교수님께서는 글의 내용과 흐름을 파악하는 방법부터 상세한 스킬까지 아주 친절하게 안내해주셨어요. 앞으로 공부하는 데 큰 힘을 얻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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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활동으로 풍부한 감성 키워

가은 양은 많은 제약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꿋꿋이 일하는 어머니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고, 편견을 깰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감사한 건 초등 시절 학습으로 부담을 준 적이 없다는 점이다. 발레 교습에 힘써주었고, 그림에 관해서라면 화가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도록 길을 터주었으며, 다양한 문화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었다. 재능시낭송대회와 인연을 쌓은 것도 초등학교 5, 6학년 즈음이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많은 시를 접했고 시를 쓰기도 했다. 시를 낭송할 때의 여운, 쉼의 중요성을 배운 소중한 추억이다. 그때 할머니의 사랑에 관해 지은 ‘가장 아름다운 손’을 비롯해 어머니는 지금도 딸의 시를 스마트폰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

학습 난관에서도 스스로 깨치며

학습이라면 재능스스로학습만 하면 되었는데, 어려서부터 익힌 습관으로 거의 전 과목을 스스로, 꾸준히, 오래 했다. 그 중 《생각하는피자》에 대한 즐거운 기억은 오래도록 강렬했던지, 자녀에게 꼭 체험시키라며 고등학교 때 선생님께도 권했을 정도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거인이 된다면 무엇을 할까?’와 같이 질문이 무척 철학적이었어요. 어린이에게 알맞은 물음이지만 결국 삶과 사회 현상에 대해 다각도로 생각해보게 하니까요.”

청소년 시절의 학습은 ‘스스로’와 ‘계획’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대개의 여학생처럼 세세하고 예쁘게 플래너를 꾸미는 타입은 아니라서 한 달, 한 주 단위로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우고 학습 시간도 굳이 체크하지 않았다. 한편, 영어가 약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급기야 중학교 3학년 때 학원을 찾았지만, 자신에게 맞지 않는 잣대에 좌절했었고 고등학교까지 이어져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맛보았다. 그때에도 어머니는 딸의 입장을 지지해주었다.
“처음에는 지문을 통째 암기했어요. 일 년쯤 그렇게 하면서 깨달은 게 있는데, 영어도 이해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차츰 공부 방법을 깨달았어요. 대학 입시라는 관문을 무시할 수 없으니 결국 거기에 맞춰 대비했고, 지금 회화 부분을 보충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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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 있는 다양한 길 모색

초등학교 때 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갖게 된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꿈은 전공을 선택할 때까지도 변함없이 영향을 주었다. 바쁜 엄마에 비해 함께할 여유가 많았던 아빠와는 많은 것을 공유했다. 아빠가 운전하는 차로 등교할 때면 라디오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을 함께 들으며 사회의 이슈들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꿈을 향한 대화로 연결된 것이다. 무척 오래 간직한 하나의 꿈이지만 그 미래는 가은 양도 장담할 수 없다. 다양한 길을 모색하면서 당장은 대학생활에 충실할 뿐이다. 다만, 안정보다는 비전 있는 삶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