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삶을 바꾼다

공간이
삶을 바꾼다

글. 김인수(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사진. 이미지투데이, 클립아트코리아 | 2021년 6호

2021. 06. 30 164

영국의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캇은 ‘안아주는 환경’을 아이의 건강한 발달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았다.
안아주는 환경은, 어머니가 아이에게 제공하는 안정감, 믿음, 사랑이 느껴지는 지지적 환경을 말한다.
아이는 부모 못지않게 집이라는 공간과도 장시간 접촉을 하며 영향을 받는다.
즉 집이라는 공간 또한 하나의 세상으로 경험되는 것이다.
공간을 바꿈으로써 우리 아이의 삶에 긍정적 변화를 주는 것은 어떨까?

공간이 우리가 어떻게 살지 결정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그 어느 때보다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증가함에 따라 인테리어, 공간 설계, 정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우리는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공간으로부터 끊임없는 영향을 받는다. 너저분하게 잡동사니나 옷가지들이 펼쳐져 있는 방에 들어갔을 때 어떤 느낌을 받을지 떠올려보라. 내 마음 또한 늘어지고 그 어떤 생산적인 활동도 내키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방을 정리하고 난 후에는 안정감, 편안함을 느낀다. 책상에 앉아 어떤 작업을 시작하고 싶은 의욕도 들 것이다. 인간은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사무실에 있을 때, 바닷가에 있을 때, 카페에 갔을 때 혹은 도서관에 있을 때마다 각기 다른 마음 상태를 가진다. 그리고 각각의 공간에서 다른 활동을 한다. 어떤 공간에 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마음이 바뀌고 그것은 우리의 생각,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방 안을 정돈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은 곧 내 마음을 정돈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다.
내 방을 내 마음이라 생각하고 가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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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의 공간은 어떻게 꾸며야 할까?
애플 본사 건물이 주는 교훈

2017년 완공된 애플의 새로운 본사 건물, 애플 파크(Apple park)는 설계부터 기존의 회사 건물들과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졌다. 창립자 스티브 잡스는 새 건물이 자신이 수학했던 스탠포드 대학교 캠퍼스처럼 ‘자연과 어우러져 있으며, 건물 안에 있을 때도 바깥과 연결된 느낌’을 가지길 원했다. 이를 반영하여 건물 주위에 9000여 그루의 나무를 심었고, 큰 유리벽을 사용하여 안에서도 밖을 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건물 내부의 온도와 습도도 바깥과 크게 차이나지 않게 조절하여 건물 안에서도 바깥과 연결되는 느낌을 가지게 하였다. 모든 면이 가로막힌 사무실에 있을 때보다 햇빛, 나무, 바람 등 다양한 자극들이 있을 때 영감과 창의적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가설을 건축에 적용시킨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평소 어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혹은 동료와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을 때 산책을 길게 하였다고 한다. 그는 장시간 걸으면서 기존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 영감이 떠올라 문제 해결의 열쇠를 얻는 경험을 자주 하였다.

실제로 사람이 걷고 있을 때, 뇌 속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 아무런 인지활동을 하지 않을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으로 내측전전두엽피질, 후대상피질, 두정엽피질에 퍼져 있는 신경세포망을 말한다)’라는 것이 작동하여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나 더 유연하고 창의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경험에 착안하여 새 건물 안에도 긴 복도를 포함하여 걷는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였다. 애플의 최고 디자인 책임자였던 조너던 아이브(Jonathan Ive)는 이를 염두에 두고 새 본사 건물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하였다. “사람들이 계속 교류하고, 협업하고, 대화하고, 걸어 다닐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 했다.”

물론 애플 본사 건물처럼 아이의 방을 꾸밀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공부를 하다 오랜 시간 집중을 못하거나 어떤 부분에 가로막혀 진도를 못 내고 있을 때, 집이라는 공간을 벗어나 산책을 다녀오라고 권유할 수 있겠다. 또한 아이 방을 꾸밀 때 자연과 접점을 가질 수 있도록 작은 식물을 들이거나, 창문을 통해 바깥을 볼 수 있는 방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이의 방을 선택할 때, 바깥 풍경들을 볼 수 있는 창문이 있는 방을 고르자.
여유가 된다면 집 안에서도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식물들을 들이거나 자연 풍경이 담긴 그림, 사진을 벽에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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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력이 생기는 공간과
집중력이 생기는 공간은 다르다

공간의 영향력에 대해 알게 되었다면, 내가 목표로 하는 활동, 머물고 싶은 심리 상태에 따라 공간을 골라서 사용해볼 생각도 할 수 있을 것이다. 2007년 미네소타 경영대학의 마이어스 레비(Meyers-Levy) 교수팀은 공간의 천정 높이에 따라 사람들이 잘 수행해내는 과제의 종류가 다름을 발견하였다. 천정의 높이가 높을수록 피험자들의 추상적 사고, 창의적 업무 능력이 향상되는 반면, 천정이 낮은 곳에서는 집중력이 향상되는 결과를 보였다. 더불어 작은 디테일을 예민하게 신경써야 하는 작업, 예를 들면 외과수술이 이루어지는 수술방의 경우, 천정을 낮게 유지하는 것이 집도의가 집중력을 발휘하는데 적합한 환경이 될 수 있을 거라 하였다.

미네소타 대학의 연구 결과를 조금 더 유연하게 해석한다면, 넓고 공간감이 있는 곳에서는 창의력이,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는 집중력이 발휘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아파트의 구조를 보면, 가장 넓은 공간은 거실이 될 것이고, 좁은 공간은 각자의 방이 될 것이다. 위의 연구 결과를 적용해보았을 때, 거실에서는 창의성이 요구되는 활동들, 즉 글쓰기, 그림 그리기, 악기 연주 등을 할 수 있게 꾸며볼 수 있겠다. 그리고 각자의 방은 집중력이 요구되는 활동들, 예를 들어 수학, 과학 등 학과 공부를 하는 공간으로 정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각 공간에서 하는 활동을 정해놓는다면 ‘내 방은 수학 공부를 하는 곳’, ‘거실은 그림 그리는 곳’처럼 공간에 정체성을 부과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이 형성되었을 때 아이는 전보다 저항감을 적게 느끼며 각 공간에서 글쓰기, 학과 공부 등의 활동들을 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에게 각각의 공간에서 어떤 느낌을 갖는지 먼저 물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아이들 개개인이 각각의 공간에서 주관적으로 어떤 느낌을 가지는지가 더 중요할 것이다. 아이가 “왠지 이곳에서는 공부가 잘 돼”, “여기서는 자유로운 느낌이 들어”라고 한다면, 그 공간에 맞는 활동들을 추천해주는 것이 더 적절한 지도 방법이겠다.

예전부터 글을 쓰는 작가들은 집필에 돌입할 때면 호텔방, 수도원, 휴양지 등 창작하기에 적합한 마음 상태가 생기는 곳을 찾아 한동안 머물며 글을 썼다. 동일하게 글을 쓰는 활동을 하지만 작가에 따라 편하게 느끼는 공간이 다르듯이, 우리 아이는 어떤 공간에서 공부할 때 집중이 잘 되는지, 혹은 편하게 느끼는지 물어보고 그 공간을 아이가 하는 활동에 맞게 꾸며보는 것이 좋겠다.

거실에서는 창의성이 필요한 작업을, 방 안에서는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을 하자.
각각의 공간에 정체성을 부여하자.
그리고 아이가 각각의 공간에서 어떤 느낌을 갖는지 물어보자.

집은 단순히 거주하는 공간이 아니다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집을 떠올려보자. 이때 사람들이 집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각각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따뜻함과 포근함이, 어떤 사람에게는 차가움과 외로움, 또는 불안과 공포의 감정이 일 것이다. 오래 시간을 보낸 공간일수록 그 공간에 대해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감정을 발달시키게 되며, 사람 간의 관계에서 느낄 법한 애착을 느끼는 경우 또한 흔하다.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자동차(역시 하나의 공간이다)를 폐차할 때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심지어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다. 이렇듯 공간은 시간을 만나면서 정서적 차원을 지닌다.

영국의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캇(D. Winnicott)은 ‘안아주는 환경(Holding environment)’을 아이의 건강한 발달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았다. 안아주는 환경은, 어머니가 아이에게 제공하는 안정감, 믿음, 사랑이 느껴지는 지지적 환경을 말한다. 위니캇은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건강한 자아를 형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처럼 부모의 역할이 아이의 건강한 성장에 가장 지대한 역할을 하지만, 아이는 부모 못지않게 집이라는 공간과도 장시간 접촉을 하며 영향을 받는다. 즉 집이라는 공간 또한 하나의 세상으로 경험되는 것이다.

공간심리학자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미젯 카우프(Migette Kaup)는 빛, 색깔, 환기 등 공간의 특정 요소들이 안정감, 유대감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균형, 대칭, 규칙성이 있는 디자인은 조화, 안정감을 느끼게 하고, 따뜻한 색감 역시 편안함을 준다. 빛, 채광이 좋을수록 공간이 더 넓고 크게 느껴지며, 공간이 생동감을 갖게 된다. 이러한 요소들을 잘 활용한다면 집을 ‘안아주는 공간’으로 느껴질 수 있게 꾸며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공간은 우리의 사고, 행동,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공간을 바꿈으로써 우리 아이의 삶에 긍정적 변화를 주는 것은 어떨까?

집이라는 공간은 ‘안아주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
빛, 색깔, 균형감에 신경을 써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우리 가족만의 공간을 디자인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