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적 있나요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적 있나요스피치 코치 이민호

글. 김문영 | 사진. 이규철(AZA STUDIO) | 2021년 3호

2021. 03. 31 32

말하기를 좋아하고 말을 잘하는 아이였다. 타고난 재주를 살려 직업으로 삼았다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다.
스피치 코치라고 하면 으레 말솜씨가 좋겠거니 여기고 말 잘하는 요령을 배우고 싶다고 찾아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민호 코치는 그런 사람들에게 말하는 기술보다 말이 가진 힘이 얼마나 큰지를 먼저 알리고 싶다.
말은 인생을 바꾸는 힘을 가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너의 말에는 힘이 있어

또래보다 말솜씨가 좋은 초등학교 4학년쯤의 아이는 두 명의 교사에게 잊지 못할 이야기를 들었다. 너는 말을 그렇게 잘하니 나중에 사기 같은 사고를 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던 선생님이 있었고, 너의 말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며 칭찬해준 선생님도 있었다. 어느 쪽이 상처가 되고 위로가 되었는지는 곱씹어보지 않아도 명백하다. 이민호 코치는 그때의 기억을 꺼낼 때마다 아이가 어른의 말을 따라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믿음을 되새긴다.

텔레비전 강의로 이름을 알리고,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펴내고, 주요 기업의 임직원 대상 교육에 강사로 초빙 받는 전문가가 되기까지 자기만의 전문 분야를 개척해 탄탄한 커리어를 쌓아온 배경에는 이민호 코치가 어릴 적부터 들어온 긍정적인 말들이 있었다. 부모님은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자식에게도 공부로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법이 없었다. 실수를 해도 허허 웃으며 ‘잘한다’고 농담하는 분들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음악을 하겠다고 밴드를 만들었을 때나 뮤지컬에 빠져 아르바이트로 용돈 벌어가며 극단생활을 할 때도 부모님께 걱정을 들어본 일이 없다.

듣는 마음에도 힘이 있다

가르치는 일에 자신의 적성과 재능을 발견한 것은 수많은 방황과 탐색의 결과였다. 20대에 충동적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신청하고 찾아갔던 호주의 목장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의 공부를 돕다가 가르치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설명을 잘한다는 동료의 칭찬에 한없이 고무되면서도 동료에게 꼭 필요한 도움을 주었다는 만족감이 컸다. 영어 강사로 시작해 스피치 강사로 분야를 넓혀온 과정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말을 잘 못한다 여기고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에게서 이야기를 끌어내는 일, 그 과정에서 위로와 용기를 전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아서 스피치 코칭에 깊이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연예인들의 스피치 코치로도 유명하지만 화려한 말의 기술을 앞세웠던 것은 아니다. 이민호 코치는 다른 사람들을 웃기는 게 직업인 개그맨조차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는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음을 목격했다. 소심해서 말을 잘 못한다며 스피치 강의를 듣는 일반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가치 있는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습니다. 단지 자신의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야기해야 할 상황에서도 두려워만 하는 거죠. 해본 적 없는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내도록 기다리면서 들어주고 듣기 좋게 정리해서 말하도록 도와주는 게 제 역할입니다. 그 과정에서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이 위로받는 것을 느끼고 마음을 엽니다. 서로가 진짜 소통하고 있다고 느끼는 대화가 시작되는 거예요.”

미운 말을 하는 아이와 ‘오예스’

진짜 소통을 시도하고 경험해온 전문가로서도 한계에 부딪칠 때가 있다. 여섯 살과 네 살, 누가 와도 소통하기 쉽지 않은 두 딸과의 관계에서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늘고 아이들과 같이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민호 코치는 자신의 인내심과 소통 능력에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무심코 짜증을 내는 자신을 종종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나이의 아이들이 흔히 ‘싫어증’에 걸린다고 하죠. 부모가 하는 모든 말에 ‘싫어’라고 대답하는 아이와는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할지 많은 부모가 난감해하시잖아요. 그래서 저는 ‘오예스(5 yes)’ 대화법을 추천합니다.”

오예스는 아이에게서 다섯 번의 긍정 대답을 이끌어내는 대화법이다. 동생한테 장난감을 빼앗긴 언니에게 양보하라고 말하면 ‘싫어’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게 당연하다. 동생 때문에 속상했냐고 공감하는 말을 건네서 아이의 ‘응’이라는 답을 이끌어내는 게 우선이다. 그렇게 다섯 번쯤 긍정적인 대답을 반복하면 아이는 자신의 감정이 존중받는다고 느끼고 대화하는 상대를 신뢰하게 된다. 아이의 부정적인 감정을 걷어내고 이성이 작동할 조건을 만든 후에야 차근차근 소통하라는 의미이다.

서브이미지

이집트의 바다 같은 수업을

아이가 억지를 부릴 때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동의해주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민호 코치는 동의하지 않아도 공감은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공감은 이민호 코치가 추구하는 수업의 핵심이다. 이제껏 경험했던 좋은 수업은 공감과 깨달음에서 출발했다. 자신의 온라인 강의를 듣는 사람들과 단톡방을 만든 이유도 공감대를 쌓기 위해서다. 혼자 힘들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고 있다는 위로와 응원을 전하기 위해 수시로 소통하는 중이다.
“비염으로 한창 고생할 때 식염수로 코를 세척하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어요. 귀찮고 힘드니까 잘 안했는데 이집트 여행 중에 스킨스쿠버를 배우면서 바닷물의 소금기로 비염이 싹 나은 경험을 했어요. 식염수를 넣으라고 말하고 강요하는 수업이 아니라 이집트의 바다 같은 수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티칭(teaching)보다는 터칭(touching)을 하고 싶습니다.”

저서 《말은 인생의 조각칼이다》에는 말의 기술이 아니라 선한 마음이 빚어내는 말이 삶을 바꾼다는 메시지를 담고자 했다.

사람들과 좋은 영향력을 주고받으며 좌충우돌 경험하고 도전한 이야기를 담아 다음 책도 펴낼 계획이다. 재능영어TV 강사가 된 것도 그런 도전 중 하나였다. 첫 촬영을 앞두고 너무 두려운 나머지 촬영 전날 밤에 못하겠다고 PD에게 연락한 적이 있다. 아무렇지 않게 그냥 나오라는 PD의 말이 이민호 코치에게는 오히려 용기를 주었다. 도망치고 싶을 만큼 두려웠지만 어떻게든 할 일을 해낸 이야기가 삶의 크고 작은 도전 앞에서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응원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민호 코치는 그렇게 마음을 건드리는 자기만의 수업을 만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