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글. 조선미(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사진. 이미지투데이, 클립아트코리아 | 2021년 3호

2021. 03. 31 15

까꿍놀이는 아기가 겪는 첫 번째 놀이이자 성장을 촉진하는 첫 시련이다.
무수히 반복되는 이별과 재결합을 통해 아이는 불안을 견디는 능력을 싹틔운다.
막 세상을 탐색하는 데 재미를 붙인 아이들에게 익숙한 놀이터는 더이상 모험의 공간이 아니다.
그래서 눈을 감는 의식, 즉 숨바꼭질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아이의 성장 욕구는 부모가 제공하는 안락함에 머무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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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꿍놀이의 비밀

아기가 엄마를 알아보기 시작하면 까꿍놀이가 시작된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까꿍!’ 하면서 얼굴을 보여주면 아기는 까르르 웃는다. 누가 보아도 흐뭇하고 아름다운 광경이다. 그렇지만 까꿍놀이에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있다. 잠깐 얼굴을 가렸다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아기가 그렇게 행복해하는 것은 엄마가 없어졌다는 불안이 해소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눈앞의 대상이 보이지 않으면 영영 사라졌다고 느낀다.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아도 대상이 존재한다는 ‘대상 영속성’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지면 자꾸 봐도 보고 싶고, 못 보면 괴로운 심정도 감정에 압도된 나머지 대상 영속성이 흐려진 탓이다. 한시라도 같이 있고 싶어 결혼을 하면 두려움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안정감이 들어선다. 저녁이면 그가 돌아온다는 사실에 가슴 벅찬 시간은 길지 않다. 분리와 재결합은 일상이 되어 더이상 아슬아슬하지도, 불안하지도 않게 되어 강렬한 일치감도 줄어든 탓이다. 엄마가 사라졌다 ‘까꿍’ 하며 나타날 때까지 3초 동안 아이가 느끼는 것은 영원한 이별이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다 울먹울먹하는 귀여운 표정 뒤에는 이런 비밀이 있다.

그렇다면 왜 모두가 까꿍놀이를 할까? 까꿍놀이는 아기가 겪는 첫 번째 놀이이자 성장을 촉진하는 첫 시련이다. 3초의 이별을 겪은 아이는 3초 뒤에는 엄마가 나타난다는 것을 믿게 되고, 닫혀 있는 화장실 문 너머에 엄마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회사에 간 엄마가 저녁이면 집에 온다는 믿음으로 분리의 시간을 견뎌낸다. 불안을 견디는 능력은 이처럼 무수히 반복되는 이별과 재결합을 통해 싹을 틔운다.

엄마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만 하는 아기에게 엄마의 부재는 불안을 초래한다.

  1. 그래서 대상의 부재를 견디는 능력은 세상에 들어가는 데 필수적이다. 잠깐 사라졌다 나타나는 엄마는 재회의 기쁨을 주지만 기다려도 오지 않거나 반응을 보이지 않는 엄마는 깊은 우물에 빠진 절망감을 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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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를 좋아하는 아이들

딸아이가 어렸을 때 일이다. 하루는 저녁을 먹자고 아이를 불렀는데 대답이 없었다. 방마다 문을 열어보았으나 아이는 얼른 눈에 띄지 않았다. 짧은 시간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오르며 책상 밑과 베란다, 씽크대 안까지 뒤졌지만 아이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당황스러웠던 그 순간 뭔가 머리를 스쳤다. 안방 이불장을 열자 차곡차곡 쌓인 이불 위에 웅크리고 있던 아이가 울먹거리며 나에게 안겼다. 장난으로 장에 들어갔다가 잠이 들었는데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깨보니 깜깜하고 엄마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불장에는 이불이 반 이상 쌓여 있기 때문에 그걸 딛고 올라갈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이 일이 있고나서 나는 아이가 사라지면 아주 작은 구멍까지도 꼼꼼하게 살펴보게 되었다.

아이들이 노는 곳에는 어디나 숨바꼭질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술래가 눈을 감고 열을 셀 때까지 아이들은 흩어져 숨을 곳을 찾는다. 금방 들키면서도 두세 명은 꼭 들어가는 놀이터 동굴, 몸을 한껏 웅크려야 들키지 않는 몸통 큰 나무, 어떤 아이들은 함께 온 엄마 뒤에 숨기도 한다. 아이들은 왜 숨바꼭질을 좋아할까?

지금 막 세상을 탐색하는 데 재미를 붙인 아이들에게 눈에 익은 놀이터 공간은 더이상 모험의 공간이 아니다. 그래서 눈을 감는 의식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갑자기 친구들이 사라진 놀이터는 친숙한 대상을 찾는 낯선 공간이 되어 아이들의 새로운 탐험이 시작된다.

엄마가 사라지면 울던 아이는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꼬마 탐험가가 된다.

  1. 그림책을 세워서 벽을 만들고, 집안에서도 텐트에 들어가 있기를 좋아한다. 책상 밑에 숨는 아이도 있다. 엄마 눈에서 잠깐 벗어나는 것, 그것이 모험심의 기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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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함께 모험하기

아들은 나가서 노는 걸 좋아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놀이터는 집에서 좀 떨어져 있어 가지 못하게 하고 주차장에서만 놀도록 했다. 현관 앞 주차장에는 어린아이와 아이를 따라 나온 아이 엄마, 혼자 나온 초등학생들로 늘 북적댔다. 한번은 아이가 늘 들어오는 시간이 훨씬 지나 집에 온 적이 있었다. 주차장에는 더이상 노는 아이들이 없었고, 주변 놀이터에도 아이들은 없었다. 아파트 단지를 정신없이 돌다가 혹시나 해서 집에 갔더니 아들은 태연하게 집에 와 간식을 꺼내 먹고 있었다. 어디를 갔었는지 묻자 주차장에서 놀다가 우리 집 라인의 같은 나이 아이를 만났는데 자기네 집에 가서 놀자고 하여 따라갔다고 한다. 두 시간 동안 애를 태웠던 엄마 따위는 보이지 않는지 그 아이네 집에 어떤 장난감이 있었는지, 그 집 텔레비전이 우리 것보다 얼마나 큰지를 설명하느라 신이 나 있었다. 나타나기만 하면 눈물이 쏙 빠지게 혼쭐을 내려고 했는데 흥분해서 말하는 아이를 보니 슬그머니 화가 가라앉았다. 앞으로는 엄마한테 꼭 물어보고 가라고 신신당부를 했고, 다음부터 그런 일은 없었다.

아이들에게 친구란 모험을 함께 하는 동지이자 아군이다. 부모가 제공하는 익숙하고 안락한 환경은 아이들로 하여금 안전감을 느끼게 하지만, 아이의 성장 욕구는 그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친구와 한 편이 되어 떠난 모험의 세계에서 아이들은 괴물을 물리치고 여의주를 구해오는 영웅이 된다. 미지의 세계는 어른이 되어 들어가야 하는 세상이며, 친구는 미래를 함께할 이웃이자 동료들이다. 이렇게 아이들은 점차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준비를 한다.

아이들은 커갈수록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

  1. 부모 입장과 달리 안전하고 안락한 길은 큰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당장은 낯선 길일수록 아이의 흥미를 돋을 수 있다는 열린 사고가 필요하다. 이때 함께 탐색할 가장 좋은 존재는 역시 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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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

얼마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한국형 발사용 로켓 누리호의 2차 연소 시험에 성공했으며, 올 하반기에 정식 발사할 계획이다. 우주산업의 초발 주자인 러시아와 현격한 차이를 보였던 한국 우주산업은 짧은 시간에 괄목할 성장을 보이면서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어 러시아의 러브콜을 받게 되었다. 누리호 프로젝트에 참여한 최기혁 선임연구원은 어려서부터 별 보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밤이면 불빛 하나 볼 수 없는 외갓집에서 쏟아질 듯 아름다운 별빛을 보며 언젠가는 저곳에 가보고 싶다는 동경을 갖게 되었다고 하였다. 대학을 마치고 유학을 간 그는 이번에는 오로라에 매료되었다고 하였다. 막연하게 우주를 꿈꾸었던 어린아이는 그 꿈을 접지 않고 자기 길을 가서 꿈 같은 일을 이룬 것이다.

미지의 세계는 무한하다. 아이들의 소망은 공상적이어서 황당하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지 피부로 실감하고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을 공포스럽게 하는 바이러스 하나가 비대면 접촉을 야기해 온라인 수업과 화상 회의의 실현을 부쩍 앞당겼다. 채혈을 할 때 피를 쭉쭉 뽑아내는 진공 주사기도 신기했는데 지금은 5명 분량의 주사액으로 6명에게 접종할 수 있다는 쥐어짜기 주사기를 구하지 못해 한국 중소기업에 손을 내밀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나는 심리치료를 하는 심리학자이다. 심리치료는 전형적인 대면 작업이다. 내담자와 마주앉아 미세한 숨소리의 변화를 알아채고, 말과 말 사이의 멈춤 시간, 손 떨림을 관찰해야 하는 정교한 작업을 해야 하는 나로서 비대면 세상은 큰 시련이자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최근 미국이나 호주에서 상담을 할 수 있는지 물어오는 메일을 자주 받는다. 꼭 도움이 필요한데 낯선 곳에서 심각한 고민을 호소하는 사연을 보고 한두 번 비대면 상담을 해보았다. 세심한 관찰과 전이가 필요한 상담은 어려웠지만 부모 교육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찾으려 하면 방법이 생긴다는 것을 배워가는 게 힘든 코로나 시기를 보내는 나만의 비법이 되어가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를 견디는 힘은 방해받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드는 정도와 비례한다.

  1. 너무 자세히 설명하지 말고, 너무 안심시켜주지 말고, 느낌표와 마침표를 스스로 찍게 한다면 아이의 상상력에는 힘이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