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니?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니?

글. 장소형(방송작가) | 일러스트. 벼리 | 2021년 1호

2021. 01. 29 124

다그쳐도 보고, 달래도 봤지만, 제 고집을 꺾지 않고 자신의 속도를 고집하는 첫째 아이는
매번 우리 부부를 지치게 했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만의 속도로 세상을 터득하고 있었다.
결국 육아도, 인생도 기다림의 연속임을 아이를 통해 깨닫는다.
그리고 더는 아이를 재촉하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다. 오늘도, 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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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고

여덟 살이 되면 방 청소를 하겠다고 선언했던 첫째는, 해가 바뀌어도 차일피일 약속을 미루면서 도통 청소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여유를 부리며 놀고 있는 첫째를 볼 때마다 나와 남편은 슬슬 부아가 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는 결단을 내렸다. 드디어 지난 주말, 아이를 설득해 온 가족이 방 청소에 돌입했다. 이날 청소의 핵심은 침대와 바닥에 널린 아이의 작품(?)들 정리하기. 그동안 방 안엔 아이가 종이로 그리고, 오리고, 붙이는 과정에서 탄생한 종이 곤충 인형들과 공룡 그림들이 여기저기 대량으로 방치된 상태였다. 하지만 치우지는 않고 쌓여만 가니 결국 놈들이 아이 방을 점령해버렸고, 아이는 이제 거실을 주 무대로 놀게 되었다. 나와 남편은 더이상 눈 뜨고 볼 수 없어 남편이 아이를 설득했고 아이도 선선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청소를 해도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우리가 버린 종이 더미에서 아이는 계속해서 뭔가를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남편의 목소리 톤이 점점 높아졌다.
“그거 버리는 거 아니었어?”
아빠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가 정색하며 한마디 한다.
“아니야. 이거 내가 찾던 거야.”

방 청소는 사적 영역이다?!

아이는 아직 청소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아이의 방은 다시 전처럼 종이 곤충들과 공룡 그림들이 하나씩 쌓이기 시작했다. 이쯤 되니 남편의 화는 머리끝까지 올랐고, 결국 터질 게 터지고 말았다. 아이는 책장 한 칸에 곰 인형 열쇠고리와 놀이 패드만을 두겠다고 고집했고, 남편은 책장의 반을 차지하는 공간이니 책을 더 넣자고 제안했다. 책장 한 칸의 용도에 대해 남편과 아이 사이에 설전이 오갔지만, 협상은 결렬됐다. 결국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다. 서럽게 울면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어’라며 자기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남편을 거실로 데리고 나왔다. 아이 방이니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자고 남편을 설득했다. 아이는 아직 방 청소가 급하지 않은 거다. 게다가 막상 손수 만든 장난감들을 버리려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하는 수 없이 나와 남편은 눈에 보이는 것들만 정리하는 선에서 아이 방 청소를 마무리했다.

결국 때가 되면 알아서 다 한다

첫째를 키우면서 육아는 기다림의 연속이란 걸 깨달았다. 다른 아이와는 다른 성장 속도를 보인 첫째는 27개월에 모유를 끊었고, 37개월에 기저귀를 뗐다. 두 돌이 지나면 모두 간다는 어린이집도 다섯 살이 다 되어서야 다니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보면 첫째는 모든 게 다 늦었다. 아이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준다는 명목 아래 너무 방치하는 건 아닌지 고민도 많았다. 그 중 모유 수유를 끊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언제까지 응석받이로 키울 거냐는 주변의 핀잔도 많이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몇 번의 단유를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러다 두 돌이 지나서 어느 정도 대화가 통할 무렵, 가슴에 빨간 비트 물을 바른 후 또박또박 설명해주었다. “엄마 가슴이 너무 아프대. 유준이도 이제 컸으니까 그만 안녕하자.”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던 아이는 그 뒤로 한 번도 찾지 않았다.

일단 한 번 수긍하면, 정해진 규칙을 절대 수용하는 아이다. 가끔 예외 상황도 있으니 괜찮다고 설득해도, 기어이 규칙을 지켜야 한다. 다른 아이들처럼 첫째도 한때 마스크 쓰기를 극도로 싫어했지만, 이제는 먼저 마스크를 챙긴다. 유치원에서 코로나의 위험성과 마스크의 중요성에 대해 배웠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엘리베이터에서 막대사탕을 먹기 위해 마스크를 쓰지 않겠다는 동생에게 독하게 한마디 했다.
“엘리베이터에선 마스크 안 써도 되는 줄 알아?” “응~.”
“써야 돼. 안 쓰면 바이러스가 (널) 가만 안 둬. 코로나가 없어질 줄 알아?” “응~.”
“아니야, 평생 안 없어져.”

옆에 서 있던 택배 아저씨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아이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엘리베이터에서도 마스크를 써야 하는 게 우리 현실이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죽을 수 있다는 식으로 협박하는 건 아니라고 내가 한 마디 덧붙였다. 말이 더 길어지면 잔소리가 될 뿐이니 나는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물론 그 이후로도 마스크 문제로 가끔 동생을 협박한다. 이것도 기다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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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속도를 이해할게

누구나 자신만의 속도로 시간을 소비한다. 그 속도를 조절하는 건 각자의 영역이다. 아이는 자신이 아는 만큼, 깨달은 만큼 행동한다. 가끔 어른들이 과정을 생략하고 성큼 앞으로 가자고 재촉한다. 하지만 아이는 아직 경험치가 적기 때문에 과정 하나하나가 궁금하고 알고 싶은 모양이다. 그리고 가끔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 펼쳐지면, 그 자리에서 멈추기도 한다. 그때마다 부모가 아이를 끌고 나와버리면, 결국 수동적인 태도로 세상을 대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숟가락으로 밥을 먹다 흘리더라도, 걷다가 자꾸 넘어져도, 일단 아이 스스로 해결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부모라면 대부분 알고 있다. 그런데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내가 하면 금방 끝날 일인데 아이의 속도에 맞춰 기다리는 게 답답할 때가 많다. 하지만 아이는 과정에서 스스로 인생을 터득하고 있었다. 책을 좋아하던 아이가 일곱 살이 되자 스스로 한글을 깨우쳤다. 한 번도 앉혀 놓고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는데 유치원에서 놀이 식으로 배운 한글 교육만으로 혼자서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언제 한글을 떼야 할지 그 시기를 고민하던 나는 ‘애들은 때가 되면 다 알아서 한다’라는 어르신들의 말을 절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안 돼, 너도 좀 기다려봐!"

사실 ‘아이가 하고 싶어 할 때까지 기다려줘야지’ 생각을 하다가도 또래 친구들을 보면 불안감이 밀려든다. 영어 교육도 하지 않았고, 줄넘기며 수영도 못하는데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잘 적응할지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그간의 경험을 통해 결국 때가 되면 아이가 알아서 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얼마 전, 사슴벌레가 우리 집에 왔다. 그런데 복병이 하나 있었다. 사슴벌레는 새집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대낮에는 톱밥 위로 올라오지 않고, 파놓은 방에서 한 달간 숨어 지낸다고 한다. 당장이라도 꺼내서 사슴벌레 크기를 재고 싶은 아이는 계속 징징댔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 기다려야 돼.”
그러고 나서 속으로 말한다.
‘너도 좀 기다려봐라! 엄마의 심정을 이제 좀 이해할 수 있겠니?’

장소형은 20년차 방송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곤충 덕후인 첫째와 첫째 덕후 둘째를 키우면서 일상을 포털 매거진 브런치에 기록한다. 90년대 인디밴드를 좋아하고, 브릿팝과 미국 작가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를 비롯한 여러 소설과 박준 시인의 시를 읽으며 가끔 감성을 충전한다. 아이와 함께 주로 책과 만화를 만들고, 나아가 동화도 쓰면서 다양한 세상 속 스토리를 만들어가려고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