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 너희가 즐기는 방식을 인정’

‘좋아, 너희가 즐기는 방식을 인정’

글. 박현여 | 일러스트. 벼리 | 2020년 12호

2020. 12. 24 188

집에 텔레비전이 없다고 이야기하면 다들 하는 질문이 “심심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뭘 하고 놀아요?”였다. 하지만 아이든 어른이든 심심하고 무료할 때에 생각하는 힘이 큰다고 하지 않던가.
심심한 아이들이 놀 거리를 찾고 뭐라도 만들 궁리를 하게 되리라는 것이 우리 부부의 생각이고 기대였다.
아이들에게 넋 놓는 시간, 손발을 묶어두는 시간을 주고 싶지 않았다.

심심한 아이들, 라디오는 내 친구

우리 부부는 아이를 낳기 전, 부모님께 선물 받았던 텔레비전을 중고장터에 팔았다. 남편은 평소 텔레비전 시청을 즐기지 않았기에 이야기가 나온 후 정리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긍정적인 기능도 있지만 내 경험으로 보아 텔레비전은 넋 놓고 보는 경우가 많았다. 주말 아침은 느지막이 일어나 영화 방송에서 보여주는 영화를 몇 편 보다 보면 점심이 훌쩍 지나 오후가 되는 날이 잦았다. 영화를 좋아하지만 이렇게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며 흘러간 주말 오후에는 아쉬움이 뒤따랐다. 그렇기에 아이들에게도 넋 놓는 시간, 손발을 묶어두는 시간을 주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적응하며 라디오를 친구 삼아 성장했다. 텔레비전은 시선을 고정해야 하고 그러면 자연히 손과 발이 고정된다. 반면 라디오는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들면서도 들을 수 있고 디제이가 읽어주는 사연들을 들으면서 상상을 할 수 있다. 때론 흘려듣고 때론 집중해서 귀 기울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가요, 팝, 클래식 음악과 디제이들의 이야기가 종일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들으며 레고도 하고,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고, 숙제도 했다. 물론 텔레비전이 없다고 해서 영상 매체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이진 않았다. 정해진 시간에 뽀로로 같은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 등을 인터넷으로 시청하니, 아이들에게 채널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보기’ 대신 ‘듣기’, 성향과 취향따라

아이들은 텔레비전 광고를 ‘보는’ 대신 라디오 광고를 ‘들었다’. 정해진 시간의 광고는 몇 달씩 고정적으로 방송되니 아이들이 광고 문구와 내용을 줄줄 외고 있었다. 말이 조금 빨랐던 둘째 아이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좋아하는 광고가 나오면 광고 음악에 맞춰 따라 하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 ‘아~ 이렇게 영어 테이프를 매일매일 듣고 살면 영어가 저절로 되겠구나’ 하는 것이 엄마 마음이었으나 학습을 챙길 만큼 부지런한 부모가 아니었기에 아이들의 듣기 능력에 감탄하는 정도로만 끝났다.

흥미로운 것은 라디오 듣는 모습을 봐도 각기 다른 성향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없겠지만, 둘째 아이는 출연자들이 진행하는 라디오 극장 같은 단막극을 집중해서 듣는다. 반면 첫째 아이는 6학년이라 그런지 좋아하는 음악 취향도 생기고 즐겨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종종 사연도 보냈다. 작년에는 짧은 사연을 보내서 디제이와 전화 인터뷰도 하고 사은품까지 챙기는 즐거운 경험을 했다.

이렇게 텔레비전 대신 라디오 생활을 했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을까?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비교는 불가하지만 심심한 시간만큼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하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더 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손길 가는 대로, 생각 가는 대로

라디오 청취 취향도 제각각이듯 두 아이의 관심사도 다른데, 둘째 아이는 크든 작든 종이만 보이면 그림 그리기를 즐긴다. 온갖 상상 속 로봇, 괴물, 땅속 나라, 혹은 바닷속 그림들이지만 그려놓고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을 보면 캐릭터 하나하나 의미도 있고 기발한 상상력이 보인다. 남편이 그림 그리는 일을 하면서도 평소 아이들의 그림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말이 없는 편인데, ‘도구나 재료에 상관하지 않고 본인이 좋아서 그리면 그만’이라고 한다. 특히나 학원의 정해진 주제와 그리기 방법에 의존하기보다는 손길 가는 대로, 생각 가는 대로 슥슥 그려나가도록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 최고의 교육이라고 이야기한다.

둘째 아이가 성향이 머릿속 상상을 손으로 옮기는 편이라면, 첫째 아이는 현실적인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편이다. 폴더폰이지만 핸드폰이 처음 생긴 후, 당시 라디오 퀴즈 프로그램에 자신의 이름으로 정답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했다. 5학년 때는 아이디 만드는 방법을 물어 자신의 블로그를 개설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네이버의 학생들이 만드는 코너에 응모해서 일 년 동안 콘텐츠를 만들어 포스팅하기도 하면서, 요즘은 사진 찍기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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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대로 꾸미는 가족신문

이렇게 아이들의 관심사로 인하여 만들어지는 창작물을 어떻게 하면 계획적으로 정리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재작년부터 가족신문을 만들기로 했다. 네 식구 각자에게 A4 용지 1~2장 분량의 지면을 할당하고 한 달 동안 자유롭게 채워서 매달 말일 취합하여 A3 크기의 신문으로 만드는 것이다. 아이들도 재미있게 받아들였다. 첫째 아이는 ‘이달의 사진’ 코너를 만들어 자신이 한 달 동안 찍은 사진 중 마음에 드는 몇 장을 골라 간단한 설명과 함께 지면을 채웠고, 재미있는 넌센스 퀴즈를 찾아서 퀴즈 코너도 만들었다. “정답은 다음 호를 기다려주세요~~”를 빼먹지 않았다. 둘째 아이는 매번 다르게 구성해 만들어왔는데, 언젠가 함께 요리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감자 샐러드 만드는 법’을 단계별로 그렸고, 어느 달은 가족여행의 인상적인 장소를 그림으로 그려왔다. 아이들과 함께 가장 잘했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바로 이 가족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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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없던 집에 게임이라니

“학교에서 게임 안 하는 친구들이 없다니까요!!!”
작년부터 아이들은 게임을 하고 싶다고 줄기차게 이야기해왔다. 마침 부모님 댁에서 가져온 유행 지난 스마트폰에 와이파이를 연결해 하나씩 쥐여준 것이 시작인데,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게임이 아이들의 일상이 되기 시작했다. ‘게임’의 세계는 텔레비전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맺고 끊음이 쉽지 않다. 한번 시작하면 눈을 떼지 못하고 모든 감각은 스마트폰에서 뗄 수 없으니 게임이 끝나도 한동안은 의욕이 없고 무기력에 빠진다. 어른도 시간 조절이 쉽지 않은데 아이들은 오죽한가. 텔레비전 없는 분위기나 가족신문의 열의도 전에 없던 갈등을 맞고 있다.

당장, 게임은 정해진 시간에만 하자고 했지만 게임 삼매경에서는 시계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법. “잠깐만요”, “10분만 더요,” “이번 판만 하고 끝낼게요”··· 매일 이런 말이 오갔다. 그리하여 앱 설치와 사용 시간을 관리하는 앱을 아이들 폰에 설치하고 일주일의 총 사용 시간을 정해두었으나, 그것 또한 조율이 필요한 상태다. 다만 우리집 게임 규칙에 있어서 이것만은 지키고 있는데, ‘방에서 하지 않는다’ 그리고 ‘게임에 추가적인 돈을 들이지 않는다’이다. 물론 두 번째 규칙에 대해 아이들은 할 말이 많다. "아이템을 사지 않으면 매일 출석 체크라도 해서 레벨을 올려야 해요!!" 나는 차라리 출석 체크를 하라고 한다. 야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아이템은 네가 스스로 돈을 벌어서 결제할 수 있을 때, 그때 하라고···.

새로운 관심사와 즐기는 방식을 이해하며

첫째 아이가 즐겨 하는 게임은 카트라이더, 둘째 아이는 주로 마인크래프트를 한다. 첫째 아이의 블로그는 카트라이더의 카트별 분석이나 맵에 대한 공략 방법이 하나둘 올라오고, 둘째 아이는 마인크래프트 건축을 위한 설계도를 그린다. 아이들이 사회생활을 하고, 보고 듣는 범위가 넓어지면서 부모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이끌고 싶은 방향으로 이끄는 데에도 한계가 생길 것이다. 이제 아이들의 새로운 관심사를 이해하고 즐기는 방법도 아이들과 함께 생각해봐야 할 시점인 것 같다. 무엇보다도 아이들 각자의 성향에 따라 좋아하는 것과 그것을 즐기는 방식도 다양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각자의 방법을 찾도록 지켜보고 도와주는 것이 아이의 창의성을 위해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한다.

박현여는 초등학교 3학년, 6학년 두 아이를 키우며, 일러스트 작가인 남편의 책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와 동일한 이름의 한옥 독립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휴무일에는 아이들과 함께 책방에 나와 근처 시장의 떡볶이를 사 먹는 것을 즐긴다. 19년은 회사원으로 회사의 시간에 맞추는 삶을 살았으나 지금은 나의 시간에 맞춰 사는 것을 목표로 책방의 문을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