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을 골라 쓰려는 이유

긍정을 골라 쓰려는 이유

글. 박현여 | 일러스트. 벼리 | 2020년 11호

2020. 11. 27 138

아이가 아가였을 때,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조건의 끊임없는 후원과 격려뿐이었다.
목을 가누고, 기기를 시작하고, 드디어 두 발로 딛고 일어섰을 때, 환호하고 응원하고 손뼉을 쳐주었다.
두 발로 일어서다 주저앉았다고 질책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일까, 자기만의 의지와 고집이 생기는 아이에게
“이건 해서 뭐 하려고?”, “아직은 어려울 것 같아”, “거봐~ 엄마가 안 된다고 했잖니” 하며
미리 재단하고 막아버리는 일들이 생기게 된다.
입학한 후에는 또래 아이들의 시험 결과와 비교하며 실망하는 일도 자주 생긴다.

무엇이든 ‘처음’인 아이에게

어린이집을 다니던 둘째가 하루는 식판을 설거지하겠다며 받침대를 놓고 싱크대 앞에 올라섰다. 설거지를 하기엔 너무 어린 게 아닌가 싶어서 처음엔 “엄마가 해줄게. 그냥 놓고 가렴” 했으나 아이는 완강히 자신이 하겠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사실 엄마인 내 마음속에서는 ‘구석구석 깨끗하게 씻기 어려울 텐데. 그러면 내가 다시 해야 할 텐데. 밖으로 물도 튀고 흘러내리면 바닥도 닦아야겠네’ 등등 당장 엄마의 사소한 일이 늘어나는 것을 걱정하고 곤란해했지만, 아이에게는 대단한 도전이고 실험이었을 것이다. 물론 나의 이런 마음을 꾹 눌러가며 아이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뒤에서는 사진도 찍어가며 아주 잘한다고 호들갑을 떨었더니 아이는 흡족해하며 설거지를 마치고 내려왔다. 바닥에는 물이 흥건했고 내가 다시 뒷정리를 해야 했지만, 아이의 마음에는 ‘내가 설거지를 했다’라는 성취감이 자리잡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성취감은 다시 자신감으로 확장했겠지!

부지런한 아이들, 쉬고 싶은 엄마

설거지와 같은 일은 부엌에서 종종 일어난다. 초등학교 6학년인 첫째 아이는 오늘도 부엌에서 쿠키를 만들겠다고 나의 요리책을 뒤적거렸다. 평소 요리를 즐기지 않고 익숙하지 않은 엄마라면 아이들과 함께 요리하기가 버겁고 어려울 수 있다. 나 역시 워킹맘으로 오랜 시간 부엌 일에 정성을 들이지 않았던 터라 아이들과 쿠키 한 번 만드는 것이 하나의 과제처럼 느껴지며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은 당장 엄마가 다른 일을 해야 하니 도와줄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재료 준비부터 계량, 반죽까지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아이가 고른 것은 옥수수 찐빵이었는데, 마지막에 찜솥을 찾아서 찌는 것만 도와주고는 처음부터 마무리까지 아이 혼자 완벽하게 해냈다. 만일,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그건 너에게 무리야”라며 처음부터 부정적으로 다가갔다면 아이는 시도하려는 의지가 꺾이며 불평하고 불만에 가득 찬 오후가 되었을 테지만, 아이를 믿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라며 긍정의 마음으로 다가가니 아이에게 만족스러운 오후 시간을 만들어줄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아이의 긍정성을 위해서는 엄마의 부정적인 생각을 버려야 하는 것이 먼저이다.

서브이미지

낙천적인 아이에게 힘을 실어주기

엄마가 긍정적이라는 건 엄마의 욕심을 내려놓는 것일지도 모른다. 평소 주어진 과제나 학습을 거부감 없이 착실하게 수행하던 첫째 아이는 초등학교 1, 2학년 때에도 받아쓰기 준비를 위해 집에서 3번 이상 쓰기 연습을 하고 시험에 임했고 백 점 혹은 한두 개 틀리는 정도의 실력을 보여왔다. 반면 둘째 아이는 자리에 앉아 쓰기 연습을 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고 준비나 연습이 부족한 상태로 시험에 임하기 일쑤였다. 둘째 아이는 학교에서 받아쓰기를 빵점 받아온 날,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했다. “몇 개 빼고는 다 아는 문장인데 갑자기 생각이 안 나서 조금씩 틀렸어요.”

사실 틀린 이야기는 아닐 거다. 아는 단어지만 연습이 부족하니 정확하게 생각나지 않았겠지. 그렇다고 그 앞에서 “왜 더 꼼꼼하게 공부하지 못했니?”, 혹은 “빵점이 창피하지도 않니?” 하며 다그치고 몰아세웠다면 아이는 주눅 들고 그로 인해 다툼이 생길 수도 있는 일이었다. 똑같이 따라 쓰는 것이 재미없고 힘들다는 둘째 아이를 위해 나는, 그렇다면 받아쓰기 10문장 중에서 쉬워 보이는 3개만 연습하자고 했다. 그러면 아이는 2~3개 정도 더 자신 있는 문장을 연습했다.

엄마의 욕심을 내려놓기

“엄마, 오늘은 받아쓰기 50점이나 맞았어요.”
20~30점을 받아 오던 아이가 50점이나 맞았으니 대견한 일이다. 쓰기는 어려워해도 말은 청산유수다.
“내가 이번에 백 점 맞으면 다음에 백 점 맞을 때 칭찬거리가 줄어드니까 아껴두는 거예요.”
그 뒤로도 백 점은 없었지만 빵점은 면했고,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아이에게 그때의 빵점을 이야기하면 역시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
“이제 1학년 단어들은 다 안다니까요~.”
“그리고 맞춤법 검사기 돌리면 띄어쓰기는 문제없어요.”

물론 지금도 맞춤법을 틀리는 글쓰기는 여전하지만 나는 일부러 꼬집어 지적하지는 않는다. 독서록 한바닥에 틀린 받침이 대여섯 개 나오면 한두 개 정도만 살짝 알려줄 뿐이다. 엄마의 마음으로는 “이렇게 쉬운 것도 모른단 말이야?” 하며 구박과 질책의 말이 하고 싶어질 때도 있지만, 한 번에 하나만 제대로 알고 가자고 마음먹으면 엄마로서의 불평과 불만을 내려놓을 수 있다.

서브이미지

그래, 일단 해보렴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는 창조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창조성을 회복시켜주는 일종의 가이드 같은 책이다. 총 12주의 워크숍 형태로 이루어진 이 책은 25년 전에 처음 출간된 후 지금까지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감흥을 주고 있다. 창조성이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대개 분노, 후회, 슬픔, 무기력을 느끼게 되며 이를 회복하기 위한 워크숍에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바로 내면의 긍정성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그래, 일단 해보렴”과 같은 긍정의 후원과 격려를 받지 못한 기억을 떠올리며 긍정의 메시지를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과제로 시작한다. 작가는 이런 자기 긍정의 힘이 안정감과 희망을 느끼게 해준다고 이야기한다.

가장 큰 후원자는 역시 부모뿐

마거릿 D. 로우먼은 1970년대 활동을 시작했던 여성 생물학자다. 당시 남성의 전문 분야로만 여겨졌던 현장생물학에서 탁월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데는 부모님의 역할이 컸다. 그녀의 저서 《나무 위 나의 인생》에서 어렸을 때를 회상하는 부분을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녀의 부모님은 차를 타고 가다 어린 그녀가 관심 있어 하는 것을 발견하면 언제라도 차를 세우고 기다려주었던 것이다. 그런 이해는 아이의 과학적 호기심을 키우는 데 가장 확실한 뒷받침이 되었으리라. 매일 아이들과 티격태격하지만 ‘너희의 가장 큰 후원자는 역시 부모뿐이란다’라는 생각으로 내가 긍정의 단어들을 골라 쓰려는 이유다.

결국, 긍정성은 이런저런 이유로 ‘할 수 없다’는 마음을 ‘할 수 있다’로 돌려놓는 데에서 출발한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듯 아이들의 처음 시도는 서툴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부모는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때로는 두 배의 손길이 필요하기도 하겠지만 일단 시도하고 끝내보는 경험만이 아이에게 ‘할 수 있다’라는 긍정의 마음을 키워줄 수 있다. ‘할 수 없다’,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라는 긍정의 마음으로 바꾸는 것을 시작으로 성취감과 자신감도 향상되지 않을까. 그것이 자연히 행복한 삶으로 이어지는 원동력일 테니까.

박현여는 초등학교 3학년, 6학년 두 아이를 키우며, 일러스트 작가인 남편의 책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와 동일한 이름의 한옥 독립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휴무일에는 아이들과 함께 책방에 나와 근처 시장의 떡볶이를 사 먹는 것을 즐긴다. 19년은 회사원으로 회사의 시간에 맞추는 삶을 살았으나 지금은 나의 시간에 맞춰 사는 것을 목표로 책방의 문을 열고 있다.

연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