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선전으로 특별히 빛남

치열한 선전으로
특별히 빛남SK하이닉스 김성원

글. 이슬비 | 사진. 남윤중(AZA STUDIO) | 2020년 11호

2020. 11. 27 328

올해 2월 부산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김성원 씨는 전공을 살려 7월 SK하이닉스에 입사했다.
코로나19 여파로 ‘바늘구멍도 막혔다’는 대기업 공채의 문을 통과한 것이다. 비결은 없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위해 노력한 결과였다. 줄곧 모범생 소리를 들으며 초중고 시절을 마치고
원하던 대학 진학과 대기업 취업으로 이어졌으니 무척 순탄한 흐름이다 싶지만,
성원 씨 자신은 누구보다 치열한 삶의 연속이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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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깜이 됩니까?

글로벌 반도체 기업 SK하이닉스에 입사한 김성원 씨.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덜컥 인터뷰에 응하긴 했지만 ‘제가 인터뷰 ‘깜’이 됩니까?’라고 묻는 부산 사투리가 무척 유쾌하다.
“친구들과 저녁 먹으러 가는 길에 회사에서 ‘발표를 확인하세요’라는 문자 메시지가 왔어요. 확인을 해야 하는데, 그대로 주저앉아 30분 넘게 망설였어요. 진짜 못하겠더라고요.”
합격을 확인한 후에는 기쁨보다는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부모님이 아들 취업 걱정에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되었으니.

입사 4개월째, 전공을 살리긴 했지만 학교에서 배운 이론과 회사에서 부딪치는 실무 사이에는 간격이 커서 적응하느라고 시간이 어떻게 지나는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지금 회사 기숙사에서 지내는데 추석에 한 번 고향에 다녀온 후로는 아직 여유를 내지 못하고 있다. 새내기 직장인의 좌충우돌 사연이 많겠지만, 반도체 산업은 무엇보다 보안 유지가 엄격해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에는 무척 조심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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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봉사 위해 스포츠 마사지까지 배워

학창 시절의 성원 씨는 ‘그저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다고 말한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힘으로 공부하는 학생이었어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될 때까지 수없이 반복했어요. 모르면 외우고, 외우다가 결국 이해하는 타입이었지요.”
그렇다고 소위 공부벌레는 아니었다. 일 벌이기를 좋아해서 학창 시절 내내 분주했다. 학교 대표로 고교독서토론대회에 참가하기도 했고, 대한민국창의체험페스티벌에서 과학 부스를 운영했고, 역사캠프를 기획해 추진한 적도 있다. 학교 축제 무대에 올라 사회를 보기도 했으며, 지역 어르신을 위한 봉사활동을 제대로 하고 싶어 스포츠 마사지를 배운 적도 있다.
“새로운 경험을 즐기는 편이었어요. 그래서 학교 게시판에 이벤트 공지가 올라오면 일단 신청부터 하고 수습해나갔어요.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도록 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노력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3학년 때는 KBS 청소년 퀴즈 프로그램 ‘도전 골든벨’에 출연해 최후의 3인까지 오른 적도 있다. 딴생각 없이 열심히 문제를 풀다 보니 어느새 세 명만 남았더란다. 도전은 아쉽게 그쳤지만 성원 씨의 유쾌한 선전을 눈여겨본 PD의 섭외로 연말 왕중왕 전에 다시 출연하는 ‘더 특별한’ 경험까지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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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

올해로 스물일곱 살 성원 씨, 철든 이후로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쉽지 않은 질문이었을 텐데 선뜻 답이 돌아왔다.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부모님에게는 믿음직한 아들이고 후배들에게는 의지할 수 있는 선배, 친구들에게는 유쾌한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어요.”
좋은 사람이 된다! 언뜻 평범하게 들리지만 그의 말을 듣고나니 참 오랫동안 생각했겠구나 싶을 만큼 진솔했다.

선택도 책임도 모두 나의 것

어린 시절에는 재능스스로학습으로 꾸준히 공부하는 습관을 키웠다고 한다. 오래 전 일임에도 《생각하는피자》, 《재능스스로수학》, 《재능스스로국어》, 《재능스스로한자》를 꾸준히 했던 기억은 또렷하다. 그 덕분에 성적이 올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꾸준한 학습 습관을 키우는 데는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는 성적을 높이겠다는 욕심보다는 매일 꾸준히 세 장씩 푸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쌓이고 쌓여 나중에 스스로 공부하는 힘이 되었거든요. ‘스스로학습법’이라는 말이 참 적확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학습이 밀린 기억은 거의 없다. 매일 세 장씩 꼬박꼬박 푸는 일이 지루하고 번거롭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밀려서 여섯 장이 되고 아홉 장이 쌓이는 것보다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고 한다.
“학교에서 풀려고 챙겨갔다가 친구들과 노느라 까먹은 날도 있어요. 그런 날이면 집에 들어가기 전에 아파트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서라도 다 풀고 초인종을 눌렀어요.”

성원 씨의 이런 모습 뒤에는 부모님의 교육 방식이 한몫했다. 아이 자신이 싫다고 하면 학원도 강요하지 않으셨다고.
“모든 선택과 책임을 저에게 주셨어요. ‘이것 해도 돼요?’라든가 ‘친구랑 놀다 와도 돼요?’라고 묻지 말고 ‘이것을 하겠습니다’, ‘놀러 갔다 오겠습니다’라고 말하라고 가르치셨어요. 네 일이니 네가 판단하고 결과도 책임지라는 것이었죠. 그래서인지 스스로 자립하는 법에 대해 어릴 때부터 터득했던 것 같습니다.”

어떤 큰 꿈이든 기대되는

불과 4개월 전까지만 해도 ‘전공을 살려서 취업에 성공하기’가 목표였다는 성원 씨. 다음 목표와 비전을 가지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했다. 이제 막 입사한 상황에서 주어진 일을 해내기에 바쁜 처지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이제 반도체인으로서 우리나라가 메모리반도체 최강자로 굳혀가는 행보에 일조하고 싶다는 것이다. 더 큰 꿈을 꾸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했던 성원 씨가 인터뷰 다음날 메시지를 보내왔다. ‘세계 반도체 역사에 한 획을 긋겠다’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는 성원 씨라면 그런 거창한 꿈을 꾼다 해도 그대로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