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나를 만나는 일

최고의 나를 만나는 일정리컨설턴트 정희숙

글. 김문영 | 사진. 이도진(AZA STUDIO) | 2020년 10호

2020. 10. 28 71

정리에 대한 정의와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극단적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온갖 물건을 쌓아두고서도 정리의 필요성을 별로 못 느끼는 사람이 있다.
정리컨설팅업체 똑똑한정리를 운영하는 정희숙 대표는 어떤 물건을 버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따라 정리의 방향이 달라진다고 이야기한다.

아이가 정리를 안 하는 이유

갖고 논 장난감이나 다 읽은 책을 제자리에 정리하는 아이는 드물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면 매일 들고 다니는 책가방을 스스로 정리할 줄만 알아도 다행일 것이다. 정리하는 게 어지르는 것보다 힘든 법이니 아이가 정리를 못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어지르는 아이의 본능을 이해해온 엄마들이 배신감을 느낄 만한 장면이 있다. 유치원에 다니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등원하는 순간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가지런히 집어넣는다는 사실이다.

밖에서는 잘하는 아이가 집에서는 왜 어지르기 대마왕이 되는 걸까. 정희숙 대표는 부모와 아이의 관계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아이가 집에서 정리를 하지 않는 이유는 엄마가 대신 해주기 때문이다. 아이는 스스로를 엄마와 분리된 존재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자기 일도 엄마가 해줘야 한다고 여긴다. 지난 8년간 정리컨설턴트로 활동하면서 2500여 가구를 방문한 정희숙 대표는 부모와 아이가 전혀 분리되지 않은 사례를 수없이 목격했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도록 데리고 자는 엄마는 아이를 떼어놓기가 불안하다고 했다.

엄마와 분리되지 못한 아이의 정서는 제 나이에 맞게 성장하기가 힘들다. 초등학교 때 이미 중학교 수준의 선행 학습을 하면서도 유아들이 주로 보는 애니메이션을 계속 찾는 아이들이 있다. 아이가 어릴 적 갖고 놀던 장난감들도 그대로 쌓여 있다. 정희숙 대표는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물건과 환경도 달라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부모가 아이의 공부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놓치기 쉬운 부분이다.

따로 또 같이 지내는 공간이 중요

고객이 정리를 의뢰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군 입대, 유학, 사망 등으로 가족 구성원 수가 달라졌을 때나 구성원의 퇴직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 경우에 공간 구조를 바꾸기 위해 정리컨설턴트를 찾는다. 일이 바쁜 직장인이나 자영업자, 프리랜서부터 살림을 전담하는 주부까지 스스로 정리를 못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최근에는 가사를 담당하지 않는 남편이 연락해오는 경우도 늘었다. 정희숙 대표는 고객이 왜 정리를 하려 하는지 이야기를 듣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인다. 집을 깔끔하게 정리한다는 표면적 이유 뒤에는 대개 현재의 불만족스러운 삶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공간은 가족 구성원의 생활 양식을 반영한다. 정희숙 대표가 방문한 집들 중에는 아이 혹은 남편에 치중된 모습이 두드러진 곳들이 많았다. 공간의 불균형은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아이의 공부방과 자는 방이 따로 있는데도 거실, 안방까지 아이 물건으로 가득한 집에서 아빠는 불만이 쌓인다. 둘 곳이 없어서 아빠가 보는 책조차도 사무실에 가져다 둘 정도가 되면 아빠에게 집은 안식처라고 할 수 없다. 아이에게 모든 시간과 정성을 쏟는 엄마도 쉴 곳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가족 구성원이 네 명이면 네 명 모두가 행복한 집으로 공간을 바꾸는 게 중요해요. 그러려면 공동의 공간과 개인 공간을 나눠야 해요. 가족 공간에는 소파와 텔레비전, 책만 두면 됩니다. 집 평수가 작으면 한 벽면을 활용해서 책상과 노트북, 의자만 놔도 남편을 위한 서재를 만들 수 있어요. 주부도 자기만의 공간을 어느 한 곳에라도 만들어야 해요. 그렇게 집이 따로 또 같이 지낼 수 있는 공간이 돼야 건강한 가족관계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늦게 나의 길을 찾은 행복한 엄마

공간과 가족관계의 변화에 대한 생각은 정희숙 대표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것이기도 하다. 전업주부였을 때는 깔끔하게 정리되고 청소된 집이 자랑이자 보람이었다. 두 아이를 모자람 없이 돌보는 완벽한 엄마의 역할에 회의가 들었을 때 자신을 위한 일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정리컨설팅이 지금처럼 전문가의 일로 받아들여지기 전이라 위험 부담이 컸지만 성공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적은 돈을 벌더라도 내 일을 갖고 싶었다.

자타 공인 꼼꼼하고 깔끔하게 살림하는 주부였지만 정리컨설팅을 전문적으로 하기 시작하면서 이론과 실전을 모두 다시 배웠다. 블록 장난감을 색깔별로 분류해야 직성이 풀렸던 정리 습관을 버리고 공간과 동선에 대한 개념을 다시 정립했다. 지금도 모든 현장을 몸소 챙기고 끊임없이 배우며 정리컨설팅을 수행하고 있다. 새로 출시되는 가전, 전자제품, 생활과 취미에 필요한 용품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정확히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리컨설턴트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것들을 배우면서 성장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성장하는 데 관심을 두면서 가족관계도 좋아졌어요. 우선 아이들 공부와 성적에 집착하지 않게 됐어요. 저 스스로 늦은 나이지만 좋아하는 일을 찾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도 자기만의 행복한 길을 찾아갈 수 있다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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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충실하게 사는 법

근간 《최고의 인테리어는 정리입니다》는 정리가 삶을 변화시킨다는 믿음과 경험을 담은 책이다. 책은 정리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세부 지침까지 안내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다. 정희숙 대표는 삶이 고달프고 괴로운 사람들에게 정리를 추천한다. 물건을 버린다는 건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언젠가 쓸 것 같다는 이유로 지금 불필요한 물건을 안고 살지만 실제로 그 물건들을 쓰게 될 일은 거의 없다. 정리할 때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가치를 포기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지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정희숙 대표는 물건을 버리고 좁은 공간을 넓게 활용하는 데 치중하기보다 현재를 충실히 살 수 있도록 공간을 재구성하는 컨설팅을 한다. 이렇게 삶을 정리하는 컨설팅으로 많은 주부들이 겪는 무기력과 우울증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길 원하고, 자녀를 공부만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행복한 아이로 키우고자 하는 엄마들에게 정리는 꼭 한 번은 체험해볼 만한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