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미래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 미래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십년후연구소장 조윤석

글. 오인숙 | 사진. 이규철(AZA STUDIO) | 2020년 9호

2020. 09. 28 43

홍대 앞은 조윤석 소장에게 제2의 고향과 같다. 음악가로, 문화기획자로, 또 건축가로 전방위적인 활동을 해온 그는
소위 ‘홍대 앞 문화’를 이끈 주역 가운데 하나다. 예술가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파는 ‘희망시장’, 도시형 농부시장 ‘마르쉐’와
같은 시민시장을 시작하고 활성화하는 등 늘 새로운 것에 앞서 도전했다.
지금 가장 큰 관심사는 ‘기후위기’에 대응한 움직임으로, 이 또한 지속 가능한 삶을 향한 앞선 발걸음이다.

홍대 앞 1세대, 10년 후를 고민하다

조윤석 소장은 건축을 전공했지만, 한때 인디 밴드로 유명했던 황신혜밴드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다. 이것 말고도 새로운 모습의 플리마켓을 여는 등 홍대 앞을 무대 삼은 다양한 문화 활동에 오랜 시간과 공을 들였다. 하지만 소위 홍대 앞 문화를 앞서 이끌었던 많은 이들이 그랬듯 그도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낙후된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되면서 기존 주민이나 상인들이 밀려나는 현상)을 피할 수 없었다.
“월세가 올라 홍대를 떠나는 지인들의 모습이 남의 일이 아니었어요. 음악, 영화, 기획하는 친구들이 모여 우리의 10년 후를 고민하기 위해 만든 모임이 십년후연구소의 시작이었습니다.”

다양한 논의 끝에 월세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포스트’ 홍대 앞을 꿈꾸며 2008년 귀농을 결심했다. 그는 전공을 살려 따뜻한 남도의 농촌에 정착할 수 있는 방갈로 형태의 소형 모듈 주거 시스템을 만들었다. 땅값과 건축비가 저렴하고 따뜻한 시골이라 단열이 필요 없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한여름에 실내 온도가 40도를 넘어 찜통 같았다. 배관용 은박 보온재로 집을 둘러싸 겨우 무더위를 해결했지만, 한겨울 추위는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 이상 기후에 마을 어르신들마저 난생처음 겪는 추위라 했다. 그는 ‘기후 난민’이 되어, 2012년 초 홍대 앞으로 돌아왔다.

녹색 지붕과 옥상을 하얀색으로 바꾸면

그는 명함에 십년후연구소라는 이름을 새겼고, 사람들은 그에게 십 년 후 세상에 대해 물었다. 답을 찾아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주목한 것이 ‘기후변화’였다. 그즈음 SNS를 통해 뉴욕의 청년들이 옥상에 하얀 페인트를 칠하는 ‘화이트루프 프로젝트’를 접했다. 당시 뉴욕은 기후변화로 기온이 높아지면서 오래된 건물의 옥탑에 거주하는 노인들이 폭염으로 사망하는 등 피해가 급증했다. 이에 지역 청년들이 햇빛과 열 반사 효과가 있는 하얀색 페인트로 건물 옥상과 지붕을 칠하기 시작했던 것. 실제로 효과가 입증되면서 쿨루프(Cool Roof) 캠페인으로 확장됐다.

귀농 당시 태양의 복사열만 차단해도 집 안이 얼마나 시원해지는지 체험한 그는 쿨루프 효과에 확신을 가졌다. 한 페인트 회사의 지원을 받아 홍대 앞 옥탑에 거주하는 지인들의 옥상을 직접 시공해주기 시작했다. 시공을 도와주는 크루 롤링베어스와 함께 2014년부터 해마다 100여 가구를 모집해 무료로 진행하고 있다. 쿨루프가 점차 알려지고 주목받으면서 지금은 십년후연구소 외에도 많은 지자체에서 자체 사업으로 추진하기도 한다. 올해는 한국지역난방공사의 후원을 받을 수 있었는데, 잦은 비로 인해 예년의 절반 정도밖에 진행하지 못했다. 이 또한 예측할 수 없는 기후위기의 단면이라 짐작한다. 조윤석 소장은 얼마 전 마무리한 석사 학위 논문의 주제를 ‘난방 기간 쿨루프의 영향 실증분석 연구’로 정했을 만큼 이 프로젝트와 기후위기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 ‘단열을 강화하고, 쿨루프 공법을 적용하고, LED 조명으로 교체하는 것만으로도 온실가스 절감 효과를 크게 볼 수 있다’라고 강조한다.
“온실가스를 가장 손쉽게 줄일 수 있는 분야가 바로 건물 에너지입니다. 2030년까지 우리나라 모든 건물에 쿨루프를 적용하는 것이 저희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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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식히는 몇 가지 방법

십년후연구소는 기후변화에 대응하여 가정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고 보급한다. 플라스틱과 전기 에너지를 줄이는 가전제품 사용과 활용법 등을 제안하는데, 친환경 은하수공기청정기나 전기가 필요 없는 자연 여과 방식의 브리타 정수기 등이 대표적이다. 은하수공기청정기는 그가 개인적으로 사용하려고 만들었다가 입소문이 나면서 지금도 꾸준히 판매되는 제품이다. 브리타 정수기는 친환경 제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필터를 교체하면서 플라스틱을 배출한다. 이를 줄이기 위해 십년후연구소에서는 브리타 필터 충전재를 교환해 재사용하는 ‘브리타 해킹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뿐 아니라 지금 당장 위기를 자각하고 행동을 이끌기 위한 십년후연구소의 활동은 범위가 넓다. 코로나19로 엄중한 상황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사회적 거리두기와 더불어 쌓여가는 일회용 쓰레기를 감안하면, 그래서 더욱 멈출 수 없는 일이다. 지난 9월 초 서울 망원동 일대에서 함께 참여한 야외 피케팅 및 자전거 행진은 소리 없는 외침이었다.

생명을 살리는 작은 실천

기후변화는 더 이상 다음 세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예상을 빗나가는 잦은 폭우와 홍수, 태풍, 가뭄, 사막화 등은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더 심각한 것은 그 연결 고리가 잘 보이지 않는 문제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난민들의 고통은 상상 이상이라며, 조윤석 소장은 “유럽에서는 어린이들이 기후위기 시위에 동참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후변화가 기후 난민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잘 알기 때문”이라고 짚는다. 지난해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른 스웨덴의 17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와 같은 청소년이 나올 수 있는 이유다.

“온실가스 배출의 95퍼센트를 G20 국가가 차지합니다. 중국, 미국, 인도 등에 이어 우리나라도 온실가스 배출량이 세계 9위입니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가장 큰 피해와 고통은 가난한 나라에서 먼저 시작됩니다. 지금까지 살던 방식으로 살 수 없게 된 이들은 결국 난민이 되어 떠돌게 됩니다. 제가 귀농생활 중에 경험했듯이 갑자기 추워지거나 더워지면 자신의 삶터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됩니다. 무엇보다 난민 어린이들이 더 끔찍한 고통을 겪게 됩니다.”

조윤석 소장은 기후위기가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되는지 그 배경과 실태를 꼭 알기를 바란다. 전기를 만드는 일이 어떻게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지, 철을 만들고 아파트와 도로를 건설하는 일, 나무를 베어 종이를 만드는 일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풍요를 가져다주는 모든 것을 들여다보아야 지금 무엇을 줄여야 하는지 보인다. 그것이 곧 장래에도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에게 미안하지 않은 길임을 알게 된다. 이미 오래 전부터 십 년 후를 고민해온 그의 간곡한 권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