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좋은 습관, 일기 쓰기

내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좋은 습관, 일기 쓰기

글. 선은정 | 일러스트. 김지영 | 2020년 9호

2020. 09. 28 50

어린 시절 아빠는 우리 사 남매의 교육에 별로 관심이 없으셨다.
8, 90년대를 힘겹게 살아야 했던 당시 가장들이 다 그랬을 것이다. 낮에는 힘겨움, 밤에는 고단함, 그 감정들을 품고
아이들에게까지 살갑기는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가정 교육이라 할 것도 딱히 없이 집에서 아이들 교육은
늘 엄마 몫이었고, 나도 엄마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자랐다. 그런데 아빠에게 물려받은 좋은 습관이 하나 있으니 일기 쓰기이다.
유독 이것만큼은 나도 지금껏 실천하고 있고, 내 두 아이에게도 양보하지 않을 생각이다.

서브이미지

얘들아, 일기 쓸 시간이다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나는 꼭 한 가지 묻는다. “일기 썼니?”
그 한 마디에 아이들은 얼굴을 찌푸리고 침대에서 다시 일어나거나 가끔은 이미 잠든 척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기에 관해서는 나도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아빠가 나에게 하셨듯, 나도 아이들에게 일기 쓰기를 권하고 있다. 물론 쉽지는 않다. 궁둥이를 토닥이며 달래든 무서운 얼굴로 이불을 들춰내든 해서 꼭 일기를 쓰게 한다. 하루하루 쌓여 만들어지는 게 습관이니까. 하지만 아이들은 내 맘 같지 않다.

“일기를 왜 써야 해요?”
“어른들은 안 쓰는데 왜 우리는 써야 해? 불공평해요.”
“오늘은 별일 없었는데, 뭘 써야 해요?”
엄마의 요청에 대해 돌아오는 아이들의 항변은 참 다양하다.
“일기를 쓰면 오늘 좋았던 점은 더 크게 기억하고 나빴던 점은 일기장에 묻어둘 수 있어. 세상 사람들이 역사를 기록하잖아? 너도 네 시간의 역사책을 쓴다고 생각해봐.”
나도 나름대로 아이들을 설득하지만 썩 와닿진 않는 눈치다. 그저 엄마의 목소리가 높아지거나 핸드폰 사용 시간이 줄어드는 등 현실적으로 저희들에게 더 불리한 상황이 돌아올 수 있으니 억지로 자리에 앉기는 한다. 무슨 이야기를 쓰고 있나 잠깐 들여다볼까 하면, 이미 개인의 권리에 대해 교육을 받은 큰아이는 ‘사생활 침해’ 운운하며 온몸을 다해 일기장을 감추고, 오빠의 권리를 옆에서 지켜본 작은아이도 똑같은 반응이다.

한 줄이라도, 제 손으로 마무리하는 하루

도무지 쓸 일이 없어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날은, 내가 들었던 아이들 주변의 작은 일을 화젯거리로 올려본다.
“네 친구 수현이, 오늘 학교에서 넘어져 팔을 다쳤다며? 그걸 쓰면 되겠네.”
“친구가 넘어진 건 슬픈 일인데, 그걸 일기로 써요? 그리고 내 일도 아닌데요?”
“친구가 다쳐서 마음이 아팠던 것도 너의 감정이잖아. 그리고 일기에는 꼭 좋은 일만 써야 하는 건 아니야.”
“아~ 그래볼까?”
아직 일기 쓰기 습관의 장점을 몸소 깨닫지 못한 아이들이라, 일단 무슨 내용을 쓰는지는 참견하지 않고 하루 한 줄이라도 쓴다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온몸을 비비 꼬며 겨우 완성한 일기를 몰래 펴보면, 주로 일어나서 학교 가고, 응가 하고, 놀았다 정도의 일상이 어제와 꼭 닮은 한 줄로 쓰여 있거나 내가 제시한 주제가 간략히 (대개는 엄마가 전한 내용 그대로) 쓰여 있지만, 그래도 제 손으로 마무리한 하루라고 칭찬해본다.

아빠의 일기

아빠는 평생 운전을 하셨다. 젊은 시절 시내버스, 택시로 시작해 나이가 좀 드신 후에는 무거운 짐을 실어 나르는 화물차까지. 아빠에게 일기는 차량 일지로 시작되었던 것 같다. 언젠가 우연히 들춰본 아빠의 일기에는 기름값이 얼마에, 주행거리는 몇 킬로미터, 이동은 어디에서 어디까지 그리고 자동차와 관련된 세세한 기록들이 적혀 있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제대로 된 나의 노동의 대가를 청구하기 위해 시작되었을지도 모르는 그 작업은, 언젠가부터 그날의 땀과 감정이 노트 맨 아래에 한두 줄 더 쓰이면서 평생 하루를 마감하는 습관으로 자리를 잡은 것 같았다.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 아빠였지만, 매년 12월 한 해가 끝날 즈음엔 시내의 큰 서점을 찾아 고급 가죽 커버에 따로 종이 커버까지 씌워진 일기장을 직접 사고는 하셨다. 빳빳하고 매끈한 양장지에 그해의 날짜와 요일까지 정확히 찍혀 있는 일기장을 보며, 아빠가 일기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알 수 있었고 나도 일기는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루를 정리하고 다시 여는 힘을

우리에게 특별한 생활 습관을 요구하지 않으셨던 아빠지만, 유일하게 하신 잔소리는 일기를 쓰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래서 시작되었을 나의 일기 쓰기는 아주 어릴 때부터 하루를 마감하는 일종의 의식이 되었다. 아빠의 근사한 일기장의 영향이었을까, 그저 재생지 몇 장의 한쪽을 풀로 붙여 만든 얇은 공책이었을 뿐이지만 내 일기장은 늘 ‘일기장’이라는 크고 굵직한 라벨을 달고 책상 한 켠에 당당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는 지난 일은 좀 쉽게 잊어버리는 편인데, 아마 일기를 쓰면서 그때의 감정들을 일기장에 다 묻혀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좋았던 일이건 속상했던 일이건 털어버리고 하룻밤 자고 나면 지나간 일로, 오늘의 나와는 멀어지는 것이다. 생각이 많았던 20대, 30대에는 일기장 몇 장을 채워도 모자랐을 감정들을 손가락이 아프도록 꾹꾹 담았는데, 별 특별한 것이 없는 요즘은 매일매일 긴 글보다는 짧은 문장이나 단어로 그날의 기억을 표기하고 마무리한다. 글줄이 길건 짧건 나는 내 일기 습관을 만들어준 아빠께 늘 감사하다. 일기는 소소한 일정이나 작은 감정을 대신 기억해주기도 하거니와, 언짢은 감정을 털어내고 다시 일어나게 하는 힘이 있는 좋은 습관이기 때문이다.

서브이미지

‘내’가 중심인 나만의 공간이니까

아이들이 힘들어하지만 나는 아이들의 일기 쓰기를 포기할 계획이 없다. 마음만 먹으면 24시간 내내 일상을 기록해주는 카메라가 돌아가고 태어나기도 전 엄마 뱃속에서 눈을 뜨고 감던 모습까지 영상으로 다 확인할 수 있는 세상인데, 굳이 그날그날의 시간을 연필로 손 아프게 꾹꾹 눌러가며 기록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객관적인 사건과 내가 가지는 생각은 분명 다르다. 일상 혹은 어떤 사건에 대한 내 기억을 곱씹어봄으로써 내 감정을 정리하자는 면에서 일기는 자존감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일기는 누군가의 공감을 얻지 않아도 되는 가장 독립적인 나만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내가 고마웠어, 내가 슬펐어, 내가 화가 났어, 내가 기뻤어. 먼저 ‘내’ 감정에 솔직하고 충실할 때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한 이해도 가능하지 않을까?

연필 향과 종이의 바스락거림을 기억하길

점점 연필로 글을 쓸 일이 없어지는 디지털 세상에서 아이들이 손에 나무 냄새나는 연필을 꼭 쥐고 종이에 일기를 쓴다는 것은 중요한 경험이라 생각한다. 물론 머지않은 시간에 우리 아이들도 매끈한 스마트폰 유리 화면에 손가락으로 가볍게 터치를 해가며 나름의 하루를 정리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이 지금 아이들에게 일기를 권유하기에 더 쉽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아이들은 보고 듣고 느끼는 온갖 감각이 다 머리에 가슴에 새겨질 나이. 일기장 위에 엎드린 얼굴의 코끝에 맞닿은 연필의 향과 꾹꾹 눌러 쓴 글씨의 힘으로 가장자리가 살포시 떠오른 종이의 바스락거림, 틀린 글씨 위에 벅벅 그어 놓은 연필 선···, 그 아날로그 감성을 기억하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누구와도 목소리 내어 말하고 싶지 않은 그런 날에, 조용히 일기장을 열어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알게 된다면, 매일 일기를 쓰라며 눈을 부릅뜬 엄마를 기억한다 해도 나는 슬프진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이미 늦은 시간임을 알지만, 또 일기를 재촉한다. 매일매일 한 줄이라도 좋으니, 오늘의 너를 남겨두라고.

선은정은 중국 상하이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회사를 다니고 있는 워킹맘이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 생각하여 자신과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또 즐겁게 생활하려 노력한다.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부모이지만, 늘 아이들을 통해 배우는지라 ‘엄마는 아이들의 학생’일 수밖에 없다며 감사한 마음으로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아주고 중국 생활의 재미난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네이버 웹툰에 ‘상하이 보부장의 공작일보’를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