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이 바뀌었을 뿐

방법이 바뀌었을 뿐

글. 선은정 | 일러스트. 김지영 | 2020년 8호

2020. 08. 28 211

이제는 스케일이 커진 스마트폰 속 아이의 창작물을 보고 “우와, 이 호수에는 뭐가 있는 거야?
이 성문은 어떻게 열리는 거지?”라고 구체적으로 물으며 그 세계에 함께 존재해보려 노력한다.
아직 전자책이 낯설고 캐릭터 이름도 외우기 힘든 아날로그 엄마라 그 세상을 함께 즐기긴 힘들겠지만,
코로나 이후 온라인 세상이 더 커질 거라니 이참에 이렇게 모바일 세계로 들어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저 둥근 머릿속에서 새로운 세계가···’

“엄마는 어렸을 때 언제 제일 슬펐어?”, “엄마는 어렸을 때 언제 제일 기뻤어?”
올해 열 살인 작은아이는 내게 질문이 많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가 어렸을 때를 물어보곤 한다. 본인에 대해 궁금한 점은 한 가지. “엄마는 언제 내가 제일 예뻐?”
아이가 제일 예쁠 때는 집중해서 책을 읽을 때다. 엄마들의 가장 흔한 바람인 독서를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고개를 약간 숙이고 베이지색 종이, 까만 글자들을 따라 눈동자를 천천히 움직이는 아이의 모습은 정말 예쁘다. 책 속 세상에 빠져든 것이다. 늘 바쁘게 움직이던 손, 발, 머리카락, 아이의 온몸의 기운이 그때만은 조용히 책을 따라 움직이는 눈동자에 집중된다. ‘저 둥근 머릿속에서 천천히 새로운 세계가 지어지고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그림이 없는 책도 수월하게 읽는 편이라 글밥이 꽤 가득한 책 한 권을 읽을 때 걸리는 시간은 40여 분. 그래, 집중력을 기르는 데 독서만한 것이 없지! 괜히 뿌듯해하며 엉덩이를 톡톡 두들겨주기도 했다.

장인이 따로 없다

내년이면 중학생이 될 큰아이는 아직도 레고에 빠져 있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레고를 하냐며 타박할 어른도 있겠지만, 한때 사랑받다 상자 속에서 잊혀지던 여느 장난감과는 달리 지금까지 흥미를 잃지 않는 놀이라 굳이 말리지 않는다. 가끔 작은 블록들이 발바닥에 밟혀 다른 식구들이 강제 지압을 당하는 경우를 빼고는 레고가 우리집에서 문제가 된 적은 없다. 레고를 할 때 큰아이는 가장 몰입력이 좋다. 혓바닥을 입술 위로 반쯤 내어 물고 최선을 다해 자기 손톱만한 블록들을 끼어 맞추고, 다시 빼내고, 이리저리 돌려보고···. 장인이 따로 없다. 하긴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도 큰아이의 꿈은 레고 박사라고 하니. 메뉴얼 없이도 이것저것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내는 걸 보면, 그 나이 또래 아이들 세상에서는 장인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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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을 둘러싼 불안과 밀당

안전 문제가 한국보다 취약하다는 중국에서 생활하는 우리 아이들은, 작년까지 돌봐주시던 아주머니께서 고향으로 가시는 바람에 비교적 빨리 스마트폰을 쓰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핸드폰에 시간을 더 많이 쓰게 되었고, 내 마음은 조급해졌다. 유해 콘텐츠에 노출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그런 건 앱이나 다른 방법을 통해 간접적으로 제한할 방법이 이미 많이 나와 있었다. 그보다는 ‘스마트폰을 빨리 접한 아이들은 집중력이 떨어진다던데’ 하는 ‘카더라’ 소식이 더 큰 문제였다.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포털의 수많은 소식들, 쉴새없이 흥미를 끄는 재미난 영상들, 그리고 잠깐 시선이 머무를 틈도 없이 휙휙 바뀌는 스마트폰 화면. 전문가가 아닌 내가 생각해도, 아이들의 생각이 쉴새없이 어딘가로 쉽게 옮겨가니 집중력이 생겨날 수가 없겠구나 싶었다. 마음이 불안해진 나는 타이머를 설정해놓고 아이들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시간 되었으니 내려놔, 약속했으니 그만해. 아이들은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짜증을 내고, 나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결국 스마트폰을 뺏고 아이들은 울고, 서로 얼굴을 붉히고. 예상대로 일련의 상황이 반복되었다.

아이들은 변함이 없었는데

어느 날 아이들과의 스마트폰 밀당에 지친 나는 ‘mobile free time’을 선언하고 자유로운 스마트폰 사용을 허락해주었다. 무엇을 하든 지겨우면 내려놓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럼에도 아이들 근처를 왔다갔다 하며 화면을 들여다보니, 작은아이는 만화를 그리고 글을 쓰는 앱에, 큰아이는 블록 모양으로 원하는 세상을 만드는 앱에 빠져 있었다. 한참 지나도록 아이들은 혓바닥을 반쯤 깨문 채 자신들이 사랑하는 대상에 집중하는 모양이었다. 눈도 아프고 어깨도 아플 텐데···. 걱정스러운 마음이 가득했지만 입을 꾹 다물고 모르는 체하였다. 두어 시간 지났을까, 아이들이 자기 스마트폰을 내게 보여주며 재잘재잘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 이건 내가 만든 성인데, 드디어 완성해봤어. 매번 시간이 모자랐거든. 시간을 많이 줘서 엄마 정말 고마워요. 여기는 이렇게 열리고 이곳에 들어가면···.”
작은아이도 질세라 오빠와 엄마 틈으로 끼어든다.
“엄마, 이건 내가 만든 짧은 만화인데, 한번 볼래? 얘가 얘랑 친구인데, 어느 날 어디를 가고 있었어···.”

나는 당황스러웠다. 당연히, 아이들이 재밌는 흥밋거리를 찾아 여기저기 앱을 옮겨 다니거나 화려하고 귀여운 캐릭터 게임에 빠져 있을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으로 자리를 옮겨갔을 뿐, 아이들이 사랑하는 대상은 변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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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엄마였다

돌아보니 문제는 나였다. 조그만 블록으로 10분짜리 모형을 만들던 아이가 이제 넓고 큰 성을 만들고 있는데 ‘땡땡땡, 한 시간이 지났으니 지금 당장 그만둬’라고 아이의 몰입을 흩트려놓았던 것이다. 기승전결의 똑 떨어지는 구성은 없을지라도 나름의 스토리를 짜서 이제 막 인물들이 서로 얘기를 주고받는 와중에 엄마가 ‘시간 끝’이라며 방해를 했을 테니, 흐름이 뚝 끊어진 어린 작가님이 그 작품을 온전히 완성했을 리가 없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좋아하고 관심을 가진 분야에 대해 함께해주고, 충분히 몰입할 수 있도록 시간을 마련해줘야 했었는데 내 인내심도, 집중력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다. 뒤돌아보니 오프라인 세상에서도 아이가 블록으로 만드는 과정이나 결과보다는 흩어진 블록의 정리가 더 중요했고,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기보다 제자리에 정리하는 습관과 시간을 더 강요하던 엄마였다. 마치 수업 시간이 45분이니 너에게 주어진 집중의 시간도 단지 45분 정도여야 한다고, 그 시간이 지나면 너의 집중력도 처음처럼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그리고 그 관심의 대상이 손에 쥘 수 있고 엄마의 눈으로 당장 확인 가능한 모습이어야 한다는, 스마트한 시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준을 세워놓았던 것이다.

새로운 세상, 지원도 스마트하게

그 이후, 나는 아이들의 스마트한 집중력을 지원해주려 노력 중이다. 엄마가 좋아하는 예쁜 모습으로 천천히 한 줄 한 줄 책을 따라 읽으라 강요하기보다 흥미를 느낄 만한 책을 곁에 놓아두는 것으로 대신 독서를 유도해보고, 아이가 만들고 있는 스토리와 유사한 내용의 책을 권해보기도 한다. 지난날 큰아이가 만든 레고 모형에 “오, 멋진데!” 한 마디로 응대했던 나지만, 이제는 스케일이 커진 스마트폰 속 창작물에 대해 “우와, 이 호수에는 뭐가 있는 거야? 이 성문은 어떻게 열리는 거야?”라고 구체적으로 물으며 그 세계에 함께 존재해보려 노력한다. 아직 전자책이 낯설고 캐릭터 이름도 외우기 힘든 아날로그 엄마라 그 세상을 함께 즐기긴 힘들겠지만 코로나 이후 온라인 세상이 더 커질 거라니 이참에 이렇게 모바일 세계로 들어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시간 우리 아이들은 아직도 글 읽기와 그림 그리기, 그리고 레고에 몰입한다. 물론 놀이 시간의 집중력이 학습 방면으로도 연결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직은 놀이를 통한 교육이 필요한 나이라고 생각하는 터라 언젠가 아이들이 무엇인가에 진짜 몰입이 필요할 때 그 힘을 발하게 되지 않을까 믿어본다.

선은정은 중국 상하이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회사를 다니고 있는 워킹맘이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 생각하여 자신과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또 즐겁게 생활하려 노력한다.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부모이지만, 늘 아이들을 통해 배우는지라 ‘엄마는 아이들의 학생’일 수밖에 없다며 감사한 마음으로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아주고 중국 생활의 재미난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상하이 보부장의 공작일보’ 웹툰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