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을 빼앗긴 시대의 중심잡기

몰입을 빼앗긴
시대의 중심잡기

글. 박민근(세종사이버대 겸임교수, 《공부호르몬》 저자) | 사진. 이미지투데이, 클립아트코리아 | 2020년 8호

2020. 08. 28 60

지금 우리는 좀처럼 무엇에 집중하기 힘들다. 지나치게 많은 소음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정보에 노출되면 진짜 신호는 놓치고, 소음에 불과한 정보에 휘둘리게 된다.
미래학자 네이트 실버는 넘치는 정보에서 소음을 차단하고 꼭 필요한 신호를 발견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고 말한다.
신호를 실수 없이 포착하려면 집중력과 통찰력이 요구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주변에는 몰입을 방해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아이들의 뇌를 깨끗하게 비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꿀벌 가족을 공격하는 말벌 같은

몰입을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은 저마다의 손에 놓인 스마트폰이나 책상 위의 컴퓨터, 거실을 점령한 텔레비전이다. 쉴 새 없이 정보와 소음을 쏟아내는 이들 기계에 접속하고 있으면 머릿속은 어느새 엉망이 된다. 석학 수전 그린필드는 이런 현실이 종국에는 인간의 주체성마저 분열시키거나 변형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남들의 반응에 심하게 의존하게 되고, 균형이 덜 잡힌 아이의 미성숙한 자아감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필자는 최근 들어 기질적 원인이 아닌 후천적 ADHD에 걸린 아이들을 자주 만난다. 부모가 방심한 사이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주의력이 훼손된 경우다. 뒤늦게 심각성을 깨닫고 손쓰려 해도 회복이 힘들어 보이는 사례가 많다. 필요와 선의로 부모가 건넨 스마트폰이 아이의 마음과 뇌를 망치는 독이 될 수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17년 조사에 따르면 유아동의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이 20퍼센트에 육박한다. 초등학생, 중·고등학생은 이보다 더 높은 비율을 보인다. 스마트폰은 어른에게는 매우 유익하고 꼭 필요한 도구이지만, 아이 양육에서만큼은 막대한 위험 요인이 된다. 꿀벌 가족을 공격하는 말벌 같은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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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할 줄 모르면 중독되기 쉬워

겉모습은 비슷해도 스마트폰에 빠지는 것과 건강한 두뇌 활동으로 알려진 몰입(flow)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몰입은 주의력과 지능을 높이지만, 스마트폰 과의존은 주의력을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비단 주의력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도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건전한 몰입이다. 건강한 심신과 지력 향상을 돕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래서 몰입은 행복의 조건이기도 하다. 삶에서 몰입이 사라질 때 행복도, 건강한 정신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몰입 연구의 창시자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이런 실험을 진행했다. 피실험자들에게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저녁 아홉 시까지 평소처럼 일을 하되, 자신이 즐기는 ‘놀이’나 ‘비도구적인’ 일은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걸고 행동을 관찰했다. 즐거운 몰입을 일상에서 제거한 것이다. 그러자 피실험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심각한 스트레스 상황에 가까운 부정 심리가 증가했다. 한편 몰입할 줄 모르는 아이는 부족한 즐거움을 보상하기 위해 그만큼 중독에 빠져들기도 쉽다. 몰입 대신 중독을 택하는 것이다. 이는 모든 부모가 가장 경계할 일이다. 술, 담배나 도박뿐만 아니라 내 아이가 인터넷, 게임, SNS 중독에 빠지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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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책으로··· 무한한 노력이 필요하다

텔레비전, 컴퓨터, 스마트폰이 발명되기 전 인간에게 최선의 정신적 열락을 주던 대상은 독서였다. 미래학자 니콜라스 카는 ‘독서가 생활화되기 전 인류의 주의력은 ADHD 아동 수준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카는 근대 이후 보편 교육을 통해 깊이 읽기가 일상화되면서 인류의 높은 집중력도 완성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책 대신 스마트폰을 손에 쥔 아이라면 이는 도달하기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독서학자 매리언 울프는 이런 환경에서 아이를 ‘다시 책으로’ 다가서게 하고 계속 ‘좋은 독자’로 남게 하려면 부모의 무한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경고한다.

스마트 기기에 오래 노출되면서 나타나는 가장 큰 위험성은 아이들의 뇌를 무력화한다는 점이다. 데이비드 레비 교수가 연구를 통해 발견한 ‘팝콘브레인’(popcorn brain) 증후군은, 스마트 기기에 오래 노출된 아이들은 팝콘이 터지는 것 같은 강한 자극에만 반응하고 평범한 일상적 자극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중독 증세가 있는 아이들은 불빛에 맞춰 손뼉을 치거나 발을 구르는 등의 주의력 테스트에서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한 뇌는 민들레꽃이 핀 들길이나 산들바람이 부는 계곡에서 아무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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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뇌를 비우자

이미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의존하는 아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에게서 이를 차단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아이의 뇌를 깨끗하게 비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가끔 아이와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보자. 하늘, 수평선, 해안선, 숲… 모두 좋다. 마음챙김 명상이나 어린이 요가를 함께 배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당연히 일과 중에 즐겁게 독서하는 시간을 꼭 넣어야 한다. 연구에 따르면 잠들기 3시간 전부터는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을 보지 않아야 수면 방해를 막을 수 있다. 건강한 뇌를 위해 아이가 8시간 이상 숙면할 수 있도록 돕자. 보드게임 같은 아날로그 세계로 관심을 돌리는 것도 필요하다. 레고 조립이나 모델 킷(Model Kit) 만들기, 종이접기처럼 손을 많이 쓰는 것이라면 더욱 좋다. 음악 감상이나 그림 그리기 등의 예술 활동은 아이의 뇌를 깨끗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당연히 아이의 개성에 맞는, 푹 빠질 만한 신체 활동을 찾아 규칙적으로 해야 한다. 애완견과 놀기, 동네 산책하기, 숲길 걷기 같은 ‘스마트폰 휴식’ 중 마음에 드는 활동을 찾아주는 것도 좋다. 이는 무언가에 몰입할 수 있는 뇌 상태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환경과 정보의 미니멀리즘을

각종 매체에서 자주 접하는 집의 구조나 배치 가운데 특히 거실을 편안한 소파와 커다란 텔레비전으로 채우는 것은 어른은 어떨지 모르나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반면 500권 이상의 명작 소설이나 동화책이 꽂힌 거실이라면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실제 연구에서도 집의 장서 수가 아이의 언어지능과 IQ를 결정하는 중요한 척도로 밝혀진 바 있다. 가족이 둘러앉아 공부나 독서를 하는 ‘거실 학습’의 유익함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필자는 부모 상담에서 자녀 방을 서재로 꾸며줄 것을 자주 권하는데, 세 살쯤부터 시작하면 좋다. 어릴 때일수록 더 단단히 몸에 배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자기만의 방’을 만들어주는 것은 위대한 사상가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듯 고유한 정체성을 형성하는 최선의 선물이다. 당연히 아이 서재에 스마트 기기를 두지 말아야 하며, 서재를 만들 때 아이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한다. 거실에서 가족이 함께 공부하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자기 방에서는 혼자서 책을 읽는 습관을 들이면 금상첨화이다.

요즘 집을 단순하고 가볍게 비우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이 큰 공감을 얻고 있다. 미니멀리즘은 물리적 환경만의 단순화는 아니다. 복잡한 일상과 지나친 정보 역시 그 대상이다. 집안의 스마트 기기 수를 줄이고, 사용 시간을 줄여나가는 것 역시 옳은 미니멀리즘이다. 함께 가족 일과표를 다시 짜서 힘차게 실천할 필요가 있다. 거실을 점령하던 텔레비전 자리에 책장을 놓아 가족 도서관이나 공부방으로 만들어보는 것은 극적인 변화를 가져올 만한 방법이다. 당장의 단 음식이 무서운 당뇨병을 초래하듯, 웃음을 주려고 아이에게 건넨 스마트폰이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할 수 있다. 아이가 좀처럼 책을 꺼내 읽지 않거나, 오로지 스마트폰을 좀 더 쓰기 위해 숙제나 공부를 억지로 하고 있다면, 그리고 다른 일은 시큰둥하면서 스마트폰에 집착한다면, 가족 모두에게 변화가 필요하다. 더 늦기 전에 마음과 뇌에 이로운 활동을 찾고, 그것에 몰입하는 일상을 만들어야 한다. 상담 경험상 이는 온 가족이 있는 힘껏 정성을 다해야만 이룰 수 있는 일이다.

몰입의 힘을 찾아주는 일상 속 실천 방법

  1. 텔레비전, 컴퓨터, 스마트폰 사용 시간 총량제가 필요하다. 하루 2시간, 일주일 10시간을 넘는다면 그 이하로 줄여야 한다. 물론 인터넷 강의나 학습 시간은 제외한다. 그 시간을 독서, 글쓰기, 예술 활동, 운동으로 대체하자. 설득을 통해 가족 규칙으로 정하고 저항감을 최소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2. 몰입의 쾌감을 알려주어야 한다. 독서나 공부와 멀어진 아이라면, 가장 좋아하고 즐길 만한 일부터 몰입을 느끼게 해야 한다. 예술 활동이나 스포츠 활동이라면 이상적이다. 루틴을 만들어 일상화하도록 돕자. 몰입을 즐기는 아이가 된다면 표정이나 행동부터 달라질 것이며, 이런 아이라면 책에도 금방 집중할 수 있다. 이때는 좋아할 만한 책이나 과목으로 조금씩 몰입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자. 단 이는 장기 계획을 세워 천천히, 치밀하게 진행해야 한다.

  3. 대화를 나누며 몰입의 기쁨과 깊이를 더한다. 아이가 몰입을 느끼는 것을 목격했다면, 그 경험과 관련한 대화를 나누어보자. 만약 아이가 《샬롯의 거미줄》을 열독했다면, 소감과 생각의 변화, 책에서 말하고 싶은 바에 관해 이야기한다. 영화도 함께 감상하며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이는 뛰어난 코치들이 하는 방식이다. 피겨 선수가 노력을 통해 트리플 악셀을 성공했다면 칭찬은 물론이고 성공과 관련된 기술적, 정서적 대화를 꼭 나눈다. 그럴수록 몰입 능력도 커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