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하고 행복한 삶을 만듭니다

단단하고 행복한
삶을 만듭니다출판인 조성웅

글. 김문영 | 사진. 홍덕선(AZA STUDIO) | 2020년 6호

2020. 06. 22 132

잘 팔리는 책의 외양은 따로 있다. 눈길 끄는 디자인과 고급스러운 종이,
장서가의 수집 욕구를 자극하는 화려한 만듦새. 조성웅 대표는 그런 요소와 거리가 먼 책을 출판한다.
책의 내용도 소수에게 읽힐 법한 인문학을 주로 다룬다. 그런 책을 사줄 독자를 보고 출판사를 시작했고 시작은 미약했지만
믿고 선택해주는 독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 베스트셀러의 조건이 아니라 스스로 잘 할 수 있고 좋아하는 것에 집중한 결과다.

색깔 있는 1인 출판으로 신뢰 얻어

출판계에서 조성웅 대표의 유유출판사는 1인 출판의 롤 모델로 자주 언급되는 곳이다. 적은 자본으로 시작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흔치 않은 사례다. 베스트셀러를 연이어 터뜨리거나 큰돈을 버는 것은 아니지만, 인문학 독자들에게 믿고 읽는 출판 브랜드로 인식된다. 자기만의 확고한 색을 갖고 좋은 책을 꾸준히 펴내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독자들의 신뢰는 하루아침에 얻어진 것이 아니다. 2012년 첫 책을 출판한 이래 매달 한두 권씩 선보인 책들이 어느덧 130여 종에 이르렀다. 책의 가짓수가 쌓이면서 계속 경영할 수 있는 기반이 생겼다. 그 기반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색을 유지하며 꼭 출판하고 싶은 책을 펴낸다. 그것이 또다시 독자의 신뢰로 돌아오고 출판사를 지탱하는 선순환의 체계가 만들어졌다.

서브이미지

작고 단단한 책을 만드는 실험

조성웅 대표가 만드는 책은 외양부터 평범하지 않다. 표지 디자인은 극도로 단순하고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재생지를 사용한다. 첫 책을 펴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부정적이었다. 첫 책인데 돈을 좀 더 쓰지 그랬느냐, 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화려하지 않고 트렌드와도 맞지 않는 책들의 생김새는 어느덧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작고 가벼워서 언제 어디서나 들고 다니며 읽기 좋은 책을 만든다는 출판 의도에 공감하는 독자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외양에 돈을 덜 들인 만큼 책값이 저렴한 것도 서점에서 많이 팔리는 책들과 구분되는 특징이자 장점이다.
외양이 끌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책을 들춰보기도 전에 외면하는 독자가 없으리라고는 단정할 수 없다. 독자의 내면을 단단하게 하는 공부책, 동아시아의 지적 유산을 공유한다는 취지로 출판하는 고전이나 중국 관련 콘텐츠도 대중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그는 작고 가벼운 책을 선호하는 독자들도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인문학 교양서가 대중적이지는 않아도 꾸준히 찾는 독자층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실패하지 않으려 애썼다

자기 출판사를 차리는 것은 선택의 문제였다. 잘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두고 독립을 결심할 때는 좋아하는 편집 실무를 계속하겠다는 의지가 컸다. 출판사 직원으로 머물러 있으면 경력이 쌓일수록 편집 실무에서 멀어져 관리직 등으로 옮기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편집자 출신인 부인은 이 고민을 이해했고 살던 집을 팔아 1억 원의 독립 자금을 마련하는 데도 동의했다. 그 선택은 분명 모험이었지만 무모하지만은 않았다.
“좋은 출판사에서 일했고 10년 이상 편집자로 일하면서 경험하고 얻은 데이터가 있었어요. 저는 실패하지 않으려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선택한 거예요. 큰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서 색깔 있는 출판사를 만들겠다는 계획이 있었고 좋은 책을 만들면 독자들이 알아봐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정해둔 방향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만들고 싶은 책을 펴내는 것, 다른 하나는 기본 이상 읽히고 판매될 책을 함께 만드는 것. 《춘추좌씨전》 같은 중국 고전을 새롭게 번역해 소개하는 것은 편집자의 취향이 반영된 기획이다. 좋은 글쓰기를 안내하는 책처럼 시류와 대중의 흥미를 염두에 두고 만든 책들도 있다. 지금도 둘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책 한 권 낼 때마다 판매량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게 중요해요. 스스로 재미있는 아이템을 기획하고 재미있게 편집하는 과정을 거쳐 좋은 책을 출판하고 독자들에게 양식이 되는 보람까지 얻는데, 더 바랄 게 있을까요.”

내면을 단단하게 하는 공부

재미와 보람은 그가 삶의 기로에서 여러 선택을 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한 기준이고 동기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몸담았던 방송업계는 일의 재미만으로 만족하기 힘든 조건이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밤낮없이 일에 쫓기는 선배들의 모습이 자신의 미래가 되길 원치 않았고 다른 길을 찾다가 시작한 일이 출판편집이었다. 출판계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든 책이 남는다는 성취감과 보람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어려서는 한자가 재미있다는 이유로 중국어학과를 선택했다. 진로를 염두에 두지 않고 흥미를 따랐지만 그 선택은 지금 그가 공부, 고전, 중국이라는 출판 테마를 정하고 자기 색깔대로 책을 만드는 기반이 됐다. 그에게 공부는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다.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모든 일상에서 시시때때로 부딪치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면을 단단하게 만드는 공부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제가 경험한 교육은 어울려 살아가는 교육이었어요.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한데 어울려 배우고 생활하는 곳이 학교였죠. 학교가 입시를 위한 관문으로 여겨지는 지금은 학생부터 성인까지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익혀 행복한 삶의 길을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공부를 돕는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작은 출판사를 차리고 수많은 책을 내면서 배운 것은 다양한 책들이 독자에게 제각기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잘 팔릴 책과 덜 팔릴 책을 예측하기는 여전히 어렵고 빗나갈 때도 많다. 하지만 좋은 알맹이와 자기만의 색을 가진 책은 눈에 띄는 화려함이 없어도 살아남는다는 것을 배웠다. 그는 그렇게 매번 새 책을 내고 배우면서 단단하고 행복한 삶을 일궈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