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잘 맞는 길을 찾는다는 것

내게 잘 맞는
길을 찾는다는 것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2학년 김상범

글. 최지영 | 사진. 정운(AZA STUDIO) | 2020년 6호

2020. 06. 26 235

과목당 500페이지쯤은 쉽게 넘어가는 교재를 여러 권 소화하며 기말고사를 준비하던 김상범 군.
어려서 운동으로 다진 체력을 바탕으로 수학을 좋아한다는 강점과 좋은 학습 습관으로 꾸준히 공부한 결과
오늘의 건장한 모습이 실현되었다. 9월 말 입대를 앞두고 진로와 보다 긴 삶에 대해 진중하게 고민하는 모습이 믿음직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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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여 쪽 공학수학의 무게에도

6월 초 고려대 안암캠퍼스에서 만난 상범 군은 한 달 전 학교 기숙사에 다시 입주한 상태였다. 코로나19로 닫혔던 기숙사도 엄격한 방역관리 수칙에 따라 희망자에 한해 문을 연 것이다. 전공과목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실습과 기말고사 등으로 곧 1학기를 마무리할 시점이다. 상범 군에게 올해 상반기는 온라인 수강으로 편하기도 했지만 과제가 많아 괴롭기도 했던 시간이다. 중간고사도 치르지 않아 기말고사는 과목당 400~500페이지가 넘는 교재들로 공부해 총 다섯 과목을 치러야 한다. 900페이지는 되는 듯한 전공 교재 ‘공학수학’은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을 안겨주는데, 상범 군도 빙긋 웃으며 덧붙인다. 저도 무서워요.
그럼에도 자신과 잘 맞아서 할 만한 공부라고 한다. 더욱이 전기전자공학은 전기 회로, 반도체, 인공지능, 컴퓨터, 사물인터넷 등 다양하고 광범위한 분야를 다루기에 졸업 후 진로도 폭넓게 생각할 수 있어 좋다고.
“전기전자공학은 수학과 물리가 기초이지만, 컴퓨터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많아요. 라디오나 선풍기, 엄마 폰 같은 걸 분해해보고 컴퓨터도 조립해본 친구들 있잖아요. 저는 그런 쪽은 아니지만 전공이 잘 맞는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워낙 수학을 좋아하기도 했고요.”
사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그 해 말까지도 뚜렷한 진로를 정하지 못해 고민이 컸다고 한다. 하지만 수학과 물리를 좋아한다는 점을 가운데에 두고 학교 선생님과 부모님 등 주변 어른들의 조언을 다양하게 수용하고 고민한 후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또 올해와는 달리 대학 새내기로서 자유롭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 행운이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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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계획과 습관이 중요

경북 안동에 있는 한 자율형사립고에 기숙하며 보낸 3년. 핸드폰 사용 금지, 한 달에 한 번 귀가라는 틀 안에서 공부하고 운동하며 몰두한 귀한 시간이다. 평일에는 공부에 전념하고 자율 시간인 주말이면 밀린 잠도 보충하고 친구들과 놀거나 운동을 하며 최대한 그 시간을 즐겼다. 당시 함께 공부한 친구들도 고려대에 함께 진학해 친분을 잇고 있다.
공부에 관해서라면 상범 군은 계획을 중시하는 타입으로, 어려서부터 들인 습관이라고 한다.
“사실 고등학교 일, 이학년 때는 때로 흐트러지기도 했지만, 미리 공부 계획을 세우고 아침에 정해둔 시간에 일어나는 것부터 실천했어요. 새벽 6시 30분에 기상해서 바로 도서관으로 가는 거죠.”
한 달에 한 번 귀가한 만큼 그 시간은 가족과 소중하게 보냈다. 맛있는 식사와 함께 대화를 많이 나누었는데, 진로에 대해 고민할 때도 부모님은 격려와 조언으로 기다려주었다.
“그때 제일 깊이 와 닿았던 말씀이 있어요. 지금은 하고 싶은 게 없더라도 나중에 하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현실적인 제약이 있을 수 있다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공부에 집중했어요. 그 덕분에 제 적성에도 잘 맞는 전공을 찾게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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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자산인 체력과 습관을 어려서부터

상범 군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육상을 시작했었다. 매일 세 시간씩 훈련에 열중했고 6학년 때는 단거리 부문의 경상북도 대표까지 꿈꾸던 기대주였다. 전국대회를 앞둔 테스트 경주에서 근육 파열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전공도 다르지 않았을까 한다. 한 6개월을 깁스한 채 다리를 절며 친한 친구들의 놀림도 받으면서 지냈지만, 더 이상 달리지 못한다는 절망을 비교적 가볍게 털어낼 수 있었던 건 아직 어린 탓으로 돌려본다.
운동을 하면서도 상범 군은 공부를 꾸준히 챙겼다고 돌아본다. 어려서부터 ‘할 일은 하자’는 게 규칙이었다고. 생각해보면 이 습관을 갖게 된 데에는 유치원 때부터 교재 밀림도 없이 계속했던 《생각하는피자》의 힘이 큰 것 같다.
“그 전에 다른 학습지를 할 때는 선생님이 오시는 날에 임박해서 베끼는 경우가 많았어요. 제가 워낙 숙제를 싫어해서 늘 밀렸거든요. 그러다가 《생각하는피자》를 시작했는데, 정말 재미있게 했던 기억이 나요. 정답이 없으니까 저 혼자 이것저것 생각하고 시도할 수 있어서 밀리지 않고 했었어요. 그때 학습 습관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타인에게 믿음을 얻는 태도

상범 군은 9월 말이면 군에 입대할 예정이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기말고사 후 해외여행을 떠나야겠지만 지금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계획 대신 그 동안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딱히 없다고 솔직히 대답하며 생각해보겠다고 했던 상범 군은 그날 밤 자정이 넘어 장문의 문자를 보내왔다.
“그제서야 저는 마땅한 취미가 없는 걸 알겠더라고요. 남들은 사소한 거라도 노래, 춤, 캠핑같이 취미가 여럿 있던데 전 딱히 없었던 것 같아요. 계획적으로 정형화된 삶을 살았고 그게 좋은 줄만 알았거든요···”라는 진중한 고민이 담겨 있었다.
순간, 진로를 정하지 못해 고민했다던 고등학생 김상범 군이 그려졌다. 그때도 이렇게 진실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겠고, 그 태도가 학교 선생님과 어른들의 마음을 활짝 열지 않았을까. “··· 그래서 저는 매우 사소하지만 장기적으로 ‘취미 만들기’가 목표예요. 군대에서 여가 활동도 여럿 해보고 졸업하기 전까지 이것저것 체험하고 도전해보면서 찾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상범 군의 메시지 마지막은 아주 깨끗하고 담백해서 다른 어떤 이의 화려한 계획을 들을 때보다, 자석처럼 믿음을 끌어당긴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상범 군을 응원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