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만 버려도 충분하다

고정관념만
버려도 충분하다
아빠가 아이의 흥미를 깨우는 방식

글. 도준형(작가) | 일러스트. 김지영 | 2020년 3호

2020. 03. 25 120

아이에게 진정 필요한 건 해외여행도 장난감도 아니고 그저 아빠와 함께한 시간의 추억이다.
나는 이왕이면 그런 추억을 아이가 좋아하는 곳에서 함께 만들고 싶었다. 아이가 평소 좋아하는 텔레비전 속
캐릭터가 등장하는 공연을 함께 즐겼고, 과학 쇼에서는 선물로 주어지는 보드게임을 차지하려고 숨가쁘게 몰입했다.
함께 열광하고 집중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충분히 즐거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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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시간을 선물하자

7세까지는 아이의 뇌가 성장하는 시기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아이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부모가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뇌의 구조는 평생 살아가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이때 뇌에 만들어진 기억의 방은 아이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때 ‘어, 이거 언제 해봤던 것 같은데’라는 느낌과 함께 새로 시작하는 일에 대한 부담을 줄여준다고 한다. 어른이나 아이나 어떤 일이든 부담감을 가지게 되면 싫어지기 마련이다. 반대로 ‘익숙하다’란 느낌을 가지게 되면 더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많은 경험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을 아이에게 많이 만들어주는 것이 유아기에 너무나도 중요하다.

책을 오리고 찢고 쌓고···

내가 육아를 시작하면서 가장 처음으로 시작한 놀이는 책 놀이였다.
아이가 아직 글을 모르는 시기라서 책을 읽는다기보다는 책을 가지고 논다는 생각으로 접근하였다. “언제쯤 아이가 책을 읽어주면 좋아할까?” 하는 생각을 버리고 책을 가지고 같은 색깔 책 표지 찾기, 책 쌓기, 징검다리 놀이를 비롯해 책에 나오는 그림 중에서 우산, 토끼 등 같은 그림이 나오는 책을 찾기도 하고, 때로는 함께 책 속 그림을 오리거나 찢기도 했다. 책은 찢거나 오리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만 버리면 이렇게 유익한 장난감도 없다. 장난감도 가지고 놀다 보면 부러지고 고장나니 그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책을 가지고 놀이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아이가 책 속 내용을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아빠 이건 뭐라고 적혀 있는 거야?”
바로 이 순간이 아이가 놀이에서 읽기로 관심을 전환하는 시작점이 된다. 그 후로 매일 잠자기 전에 두 권의 책을 읽어주는 습관을 계속 유지했고, 여섯 살이 된 지금도 아이는 책을 읽어주지 않으면 잠들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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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흥미도 아빠 하기 나름

책 읽는 아이로 키우고 싶어서 아내는 집에서 텔레비전을 없애자고 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텔레비전을 없앤다고 책을 좋아하게 될까? 그건 아니었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텔레비전을 없앨 게 아니라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많이 노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매일 아이에게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텔레비전 EBS 채널을 시청했다. 텔레비전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 친구들은 아이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뽀로로를 시작으로 타요, 띠띠뽀, 페파피그, 헬로카봇, 번개맨 등 텔레비전 속 캐릭터 친구들을 아이는 좋아했다. 좋아하는 캐릭터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아이는 매일같이 상상력을 키워갔다. 때로는 마트에서 이 친구들을 닮은 장난감을 보면 사달라고 떼를 쓰기도 한다. 너무 가지고 싶어서 마트 바닥에 엎드려 울거나 때굴때굴 구르기도 했다. 매우 난처한 상황이긴 했지만 나는 이미 이럴 때를 대비해서 원칙을 정해두었다. 아무리 구르고 울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라고 아이에게 말했다.
“울고 싶을 때까지 울어도 좋아.”
울음이 멈추고 나서 아이에게 말했다.
“사고 싶다고, 가지고 싶다고 다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란다. 하지만 가질 방법을 아빠가 알려 줄 수 있어.”
장난감을 가질 수 있다는 말에 아이는 눈을 크게 뜨고 “아빠 어떻게 해야 저 장난감 가질 수 있는데?”라고 물었다.
“하루에 책 한 권씩 읽을 때마다 아빠가 100원씩 줄게. 그럼 그 돈으로 건우가 돼지 저금통에 저금해서 돈이 모이면 가지고 싶은 장난감을 사렴. 그렇게 장난감을 사는 건 아빠가 반대하지 않을게.”
그날부터 아이는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싶어서 매일 책을 읽어달라고 졸랐다. 그리고 그 매일의 습관 덕분에 책을 점점 좋아하는 아이가 되었다.
이렇듯 미디어 시청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아이가 좋아한다면 활용하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더 좋은 방향으로 사용할 수가 있다. 자제력만 길러준다면 말이다.

아이는 부모와의 시간을 기억한다

아빠가 밖에서 일만 하면 아이는 아빠와의 시간을 기억할 수가 없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해외여행도 아니고 그저 아빠와 함께한 시간의 추억이다. 나는 이왕이면 그런 추억을 아이가 좋아하는 곳에서 함께 만들고 싶었다. 아이는 평소 좋아하던 번개맨과 헬로카봇을 눈앞에서 마주했을 때 유난히 빛나는 눈으로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 후 이렇게 말했다. “아빠랑 다음에도 또 오고 싶어.” 문득 들으면 공연이 좋아서 또 보러 오고 싶다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으나 아이는 분명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아빠와 함께했다는 사실이 매우 행복할 거다.
아이와 함께해서 가장 좋았던 공연은 EBS에서 방영되던 ‘허풍선이 과학 쇼’였다. 이 공연은 독특하게도 공연 중에 관객이 참여하는 보드게임을 소재로 했다. 과학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아이들에게 게임이라는 소재를 활용해서 과학자들과 그들의 업적을 소개하는 방식인데, 공연 중에 선물로 보드게임을 주니 반응이 뜨거웠다. 관객 가운데 참여자를 뽑을 때 아이가 내 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여기요, 여기!’ 하고 소리쳤다. 보드게임은 따로 얼마든지 사줄 수 있지만, 그 순간에 아이가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게임에 임하는 아빠의 모습은 돈으로 사줄 수가 없기에 나는 숨이 가쁠 정도로 게임에 몰입했다. 아이는 내가 선물 받아준 보드게임을 품에 안으며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공연을 통해 보드게임이 진행되는 방식을 이미 습득하고 있었기에, 집으로 돌아와서 아이는 쉽게 게임을 할 수 있었다. 게임을 할 때마다 한글을 읽을 수는 없지만 대신 내가 읽어주는 과학자들의 업적을 매번 들으며 자연스럽게 과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아이들은 학습도 운동도 결국은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재미란 요소는 새롭게 접하는 환경에서 아이가 보인 첫 반응을 놓치지 않고 호응해주는 부모의 역할에서 시작된다. 항상 아이와 놀아주는 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처음 5분만이라도 집중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아이는 충분히 즐거워하고 행복해한다.

도준형은 육아 6년차 아빠로서 초등맘 카페 매니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들과 가까워져 네이버 대표 맘카페 매니저(도반장)가 될 수 있었고, 육아의 경험이 작가로서 새로운 걸음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아빠가 육아를 시작한 후 바뀐 것들》, 《초등6년이 아이의 인생을 결정한다》를 펴냈다. 육아는 분명 힘든 일이지만 그 경험은 소중하며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줄 만큼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