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은 즐거움의 자본이다

사색은 즐거움의 자본이다

글. 김종원(인문교육 전문가, 《사색이 자본이다》 저자) | 사진. 이미지투데이, 클립아트코리아 | 2020년 3호

2020. 03. 25 78

사색은 발견이다. 이미 존재하지만 누구도 알아보지 못한 것을 혼자만 아는 일이다.
당연히 즐거울 수밖에 없다.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무엇일까?
사과나무 아래에서 가장 오랫동안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그
에게만 보였던 것이다. 사색이 창조로 이어지는 이유는 사색 그 자체가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사색은 아이가 살아갈 자본이다.

서브이미지

생각하는 힘을 잃어가는 아이에게

뜨거운 햇살이 내려오는 사막에서, 며칠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다가 우연히 물을 발견했다고 생각해보자. 당신은 어떤 방법으로 물을 마실 것 같은가? 아마도 ‘벌컥벌컥’ 들이킬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렇게 빠르게 욕구를 채우면 맛과 향을 느끼기 힘들고 생각할 여유를 가질 수가 없다. 일상에서 외출을 했다가 집으로 돌아와 물을 찾는 아이에게 물을 그냥 주지 말고, 이렇게 한 마디를 덧붙여 건네보자. “우리 이번에는 물을 한번 천천히 마셔볼까?”
모든 새로운 시도는 반드시 부모가 함께 하는 것이 좋으니 같은 잔을 준비해서 먼저 천천히 마시는 시범을 보여주자. 그럼 아이도 조금은 즐겁게 따라할 것이다. 그리고 질문으로 아이 안에 잠든 생각을 자극하자. “어때? 평소처럼 벌컥벌컥 마실 때랑 다른 게 있니?” 처음에는 아이가 차이점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미세한 차이를 느끼는 것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시도가 이어지면 아이는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생수를 알게 되고, 그 생수가 다른 물과 무엇이 다른지 설명할 수 있게 된다. ‘대박’, ‘짱’과 같은 들어도 뭔지 예상할 수 없는 표현이 아닌 “이 생수는 다른 물보다 신선해. 음, 이슬을 마시는 기분이야” 같은 아이만의 표현을 하게 된다.

서브이미지

부모의 사색이 ‘되는’ 방법을 찾는다

사색가의 특징 중 하나는 세상이 정해놓은 그대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든 사물을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고 느낀 후, 자신의 언어로 정의한다. 때문에 그들에게 창조란 자신이 발견한 세상을 글이나 그림 혹은 음악의 형태를 빌려 그 틈 속으로 집어넣는 것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능력이다.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세상의 모든 정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 어떤 좋은 정보라 해도 원칙 없이 쌓기만 하면 쓰레기만 쌓인 산과 같다. 그저 정보를 쌓는 기계의 삶을 살고 싶지 않다면, 세상을 보는 데 그치지 말고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발견해내는 힘을 길러야 한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많은 부모의 질문이다. 내 답은 언제나 이렇게 시작한다.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주지 말고 책을 읽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80퍼센트의 부모는 이렇게 항변한다.
“아이 안 키워보셨죠?”, “그게 현실에서 가능할까요?”, “누가 몰라서 안 하나요!”
하지만 언제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20퍼센트이고, 그들은 이렇게 반응한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현실에서 가능한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도 한번 해보자!”
문제를 해결하려는 부모는 결국, 아이만을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아낸다. 나부터 스마트폰을 내려놓자, 텔레비전을 끄고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자, 읽는 재미와 감동을 아이와 함께 즐기자···.
‘어떻게 하면 될까?’라는 되는 방향으로 질문을 해야지, ‘누가 그걸 모르나’라는 식으로 따지기 시작하면 결국 손해는 나와 내 아이에게 돌아온다. 안 되는 방법은 생각이 필요치 않지만, 되는 방법에는 반드시 깊은 생각이 필요하다.

서브이미지

부모와 아이가 함께 만드는 근사한 요리

대문호 괴테의 어머니는 어린 괴테에게 매일 밤 책을 읽어주었다. 하지만 보통의 방법과 달리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가장 극적인 순간에 책을 덮고 이렇게 말했다. “그 다음은 네가 완성해보면 어떨까?” 어린 괴테는 당장 이야기를 완성할 수는 없었지만 포기한 적은 없다. 놀랍게도 그는 이야기를 완성하느라 늘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린 괴테는 매우 즐겁게 사색하며 창조하는 일상을 보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글을 대하듯 요리를, 요리를 대하듯 글을 대하는 삶의 자세가 괴테와 어머니의 삶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는 그 지역을 대표하는 소스가 하나 있다. 일곱 가지 허브로 만든 200년 역사의 프랑크푸르트 건강식 그린소스로 유명한 그뤼네 조제(Grune Soße)인데, 이 근사한 소스를 발명한 사람은 놀랍게도 괴테의 어머니였다. 괴테와 그의 어머니 모두 요리를 좋아했고, 집에 텃밭을 가꾸며 먹을 것을 직접 기르고 재배했다. 괴테는 365일 내내 현재 세계의 어느 나라에서 어떤 식재료가 제철음식인지 알고 있을 정도였다. 글의 영감을 다루듯 음식의 기본인 식재료를 소중하게 다뤘다.
괴테의 어머니는 아이에게만 창조를 강요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런 일상을 실천했다. 갑자기 동화책을 책을 읽어주며 다음 이야기를 상상하라고 강요한 것이 아니다. 요리를 할 때도, 아이를 대할 때도, 삶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괴테는 변치 않는 일상의 어머니에게 배운 것이다.

서브이미지

언어와 풍경을 바꾸면 사색을 즐기게 된다

그 사람의 언어는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한다. 내가 《아이를 위한 하루 한 줄 인문학》이라는 책을 통해 수없이 필사를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직 사색이 어렵고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면 아래 글을 아이와 함께 필사하며 시작해보자.

외모만 바라보며 사는 사람은
결국 늘어나는 주름만 발견하게 되고,
지혜를 모으며 사는 사람은
사색의 깊이가 더해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대가 자주 말하는 언어가 쌓여
그대의 내일이 완성되고,
그대가 자주 바라보는 곳이
그대의 인생을 결정한다.
한 사람의 인생은,
그가 자주 말한 언어와
자주 바라본 풍경의 합이다.

아이는 필사를 통해 사색을 접하게 될 것이고, 처음으로 사색의 즐거움을 맛보게 될 것이다. 같은 풍경과 같은 사물에도 다양한 모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꼭 기억하자. 아이는 두 번 태어난다. 부모의 사랑으로 세상에 태어나서, 부모의 말로 다시 한 번 태어나 완벽해진다.

사색의 즐거움을 아는 아이로 키우는, 3가지 대화 습관

글을 쓴다는 것은 이미 스스로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며, 주변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주관이 뚜렷하고 탄탄하다는 증거다. 사색하고 글을 쓰는 재능은 타고나기도 하지만 부모의 교육과 태도로 길러지는 후천적인 부분도 크다. 나는 지난 10년 이상 후천적으로 쓰기 재능을 기른 아이들의 부모를 연구했고, 그들이 나눈 대화에서 그 핵심을 발견했다.

  1. 긍정의 말꼬리 잡기 대화를 나누자
    “너 또 말꼬리 잡으면 혼난다!” 부모 입장에서 아이가 자꾸 말꼬리를 잡으면 짜증이 나고 ‘나중에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고민되는 게 사실이다. 물론 나쁜 의도의 말꼬리 잡기는 아이의 성장에 좋지 않다. 대신 긍정의 말꼬리 잡기는 아이에게 ‘불가능한 것들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하여 좋은 영향을 끼친다.

  2. 무엇을 말해도 의미를 부여하자
    “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이야?” 아이가 무언가를 만들거나 자연에서 얻은 영감을 말과 그림으로 보여주면, ‘쓸데없는 짓을…’이라며 타박하는 부모가 있다. 중요한 것은 세상 그 무엇도 쓸모없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이다. 그래야 아이가 평범한 일상에서 특별하게 쓸 수 있는 영감을 발견할 수 있다. 쓰레기는 없다. 우리가 용도를 정해주지 못했을 뿐이다.

  3. 한 줄이라도 자기 생각을 쓰게 하자
    말은 잘하지만 글을 쓰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 그런 아이들의 공통점은 일상에서 기록이 아닌 메모만 한다는 점이다. 메모는 타인의 지식이고, 기록은 나만의 지식이다. 책을 읽거나 수업 시간에 무언가를 배울 때, 그냥 받아 적는 데서 벗어나 한 줄이라도 자기 생각을 추가해서 쓰게 하자. 그 한 줄이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음을 기억하고 사랑을 전하자. 스스로 펜을 세운 아이는, 결코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