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선택한 삶에 만족하나요?

당신이 선택한
삶에 만족하나요?화가, 작가 노석미

글. 김수영 | 사진. 현진 (AZA STUDIO) | 2020년 2호

2020. 02. 26 205

노석미 작가. 그녀는 스물여덟에 ‘탈서울’을 결정하며 귀촌을 했다.
무엇을 버리기 위해서라기보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라는 표현이 더 옳을 것이다. 부대끼지 않아 더 행복한 삶,
자연 속에 살고 싶은 욕망을 실현한 선택이었고, 화가라서 더 쉽게 가능했던 일이라고 인정한다.
지금도 햇살 하나 풍경 한 자락도 공평한 초록 자연 안에서 고즈넉하게 즐겁게, 사색의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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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아닌 시골을 선택했어요

《매우 초록》 표지 그림처럼 차를 몰고 초록의 산길을 지나, 노석미 작가를 찾아가는 길은 왠지 모르게 편안했다. 그림 그리고 글 쓰며 시골에서 미혼 여성이 혼자 산다···, 부럽지만 엄두가 나지는 않는다. 양평에 땅을 사서 집을 짓고 40대를 보냈다는 그녀의 이야기는 화가라는 특별한 직업을 가진 생활인으로서 주변과 사람들에게 어떻게 스며들어갔는지를 편안하게, 때론 코믹하게 읽히게 했다.
아, 이 집이군. 키 큰 나무 울타리와 철제 대문을 보니 ‘이웃들과 어울리지만 최소한의 사생활은 보호받고 싶다’던 책 속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마당에는 몸소 작업한 잔디와 분홍빛 디딤돌이 있다. 시선을 드니 (그녀의 표현으로)‘큰 개집을 뻥튀기한’ 것 같은, 작업실에 치중해 지은 층고 높은 단순한 구조의 집이 눈에 들어온다. 뒷마당에는 겨울이라 허전해 보이는 작은 텃밭이 있고, 동생과 같이 짓기 시작해 마을 어르신들이 도왔다는 창고용 오두막이 제법 잘 지어져 있다. 그녀는 오드아이와 우아한 흰털을 가진 반려묘 씽싱이를 안고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스물여덟에 ‘탈서울’을 했어요. 특별한 벌이 없이 비용이 많이 드는 서울에 산다는 데 회의를 느꼈고, 그림 작업에 큰 공간이 필요했죠. 가평, 포천 같은 곳을 떠돌며 남의집살이로 시골 생활을 했던 십 년의 이야기가 전작인 《서른 살의 집》이에요. 그 책 말미에 ‘드디어 양평에 땅을 샀다’로 끝을 맺는데 뒷이야기를 염두에 둔 거예요.

여기 양평에서 보낸 40대의 이야기는 쉰이 되기 전에 내야지 했는데 작년 가을 아슬아슬하게 출간하게 되었어요.”
‘매우 초록’은 원래 ‘베리 그린(Very green)’이라는 제목으로 삼 년 전 개최한 개인전이자 작품의 제목에서 따왔다. 오래 그려왔던 여름 풍경화 시리즈를 모아 개인전을 준비할 때 만든 말이다. 도시를 벗어나 시골을 꿈꾸었고,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늘 동경해 마지않던 자연의 상쾌한 색감을 떠올리며.

용기가 대단하세요

서울에서 태어난 노석미 작가는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다수의 개인전과 기획전을 연 인정받는 화가인 동시에 수많은 에세이와 그림책을 낸 작가이다. 그녀의 그림책은 루브르박물관 앞 유명 서점에 세계의 아트북으로 콜렉팅되어 있다고 한다. 《매우 초록》에 실린 삽화는 그녀의 작품들을 발췌한 것으로, 독자들이 텍스트를 읽다가 이미지를 볼 때 알쏭달쏭하지만 무슨 뜻인지 알 것만 같도록, 독자의 상상이 개입되는 메타포에 의미를 두어 편집했다고. 그림의 저변에 문학을 두었다니 삽화를 보며 스토리가 읽히는 듯이 느껴졌던 것은 나만의 느낌이 아니었구나 싶었다.
‘용기가 대단하세요.’ 그녀의 또 다른 전시회 제목이기도 하다. ‘불편하지 않으세요?’ 자기와 다른 삶은 이상하고 신기하다고 여기기에 흔히 받는 질문들이다. 그녀는 일반적이지 않은 선택을 했을 뿐, 특별할 것 없는 이 삶에 만족했기에 지금껏 쭉 살아올 수 있지 않았겠냐고 반문한다.
“저는 원래 밀집된 곳을 힘들어해요. 건물, 사람, 차···, 도시는 모든 것이 밀집돼 있잖아요. 헐렁한 데 있으면 편안하고 숨을 쉴 수 있죠.”
돌아보면 작가의 20대, 30대는 가난했지만 그 가난을 체감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어떻게 보면 지금보다 긍정적이고 진취적이어서 일면 무모한 결정들을 내릴 수 있었어요. 기필코 성공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해보다 안 되면 돌아가지 뭐, 이런 생각이었지 죽어도 예술가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건 없었죠. 이 길이 내 길인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은 너무 하고 싶으니 해보자’ 생각했죠. 실제로 돌아갈 생각은 한 번도 안 했어요. 저한테 맞고, 운 좋게 한 단계 끝나면 다음 단계가 눈앞에 놓여 있었어요. 쉽지 않은 길이었는데 어렵지 않게, 즐겁게 해온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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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지면 다시 아름다워지는 것들

노석미 작가는 가끔 ‘나도 이런 오두막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이들을 만나면 “그러면 제 삶과 통째로 바꿔보시겠어요?”라고 묻는다.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것에 감사할 줄 몰라요. 저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어요. 하지만 그들을 부러워하진 않거든요. 생각보다 자기네 삶도 꽤 괜찮은데 너무 많이 갖고 있어서 힘든 것은 아닐까요.”
작가 노석미에게 넉넉한 것이 있다면 사색의 시간이다. 예술가로서 혼자만의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지루할 만큼 심심해지면 사색은 비로소 시작된다. 미디어에 넘쳐나는 얕은 지식의 수동적인 받아들이기가 아닌 능동적인 사색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불필요한 만남도 가능한 없애왔는데 자연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 환경이었다.
“사람은 타인을 통해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규정한다죠. 저는 낯선 곳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떤 상황에도 당황하거나 주눅 들지 않는 편이에요. 저를 오랫동안 보아온 친구 말이 ‘너 같은 성격이나 이런 곳에 살지 소심한 사람이면 못 산다’ 하더군요. 어떤 사람은 제 삶의 태도가 너무 쉽고 가벼워 보인대요. 제가 평범한 부모 아래에서 결핍 없이 자라 그렇지 환경이 좋지 않았다면 이런 성격은 못 되었을 거라는데, 둘 다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자연이라는 축복이라 했다. 모든 것이 밀집된 도시는 상대적 박탈감과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고 그런 불공정함을 느낄수록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된다. 반대로 햇살 하나 풍경 한 자락도 공정한 자연 안에서는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징글징글하다면서도 부대끼는 삶을 원하는 듯이 보여요. 이렇게 고즈넉한 삶은 두려워하죠. 익숙해지면 두렵지 않은데···.”
노석미 작가는 가끔 볼일을 보러 서울에 올라갈 때면 외국에 온 듯 생경하게 느껴지고, 다시금 도시의 삶이 아름답고 신선하게 느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적당하게 편안한 거리가 만들어졌음을 느끼는 것이다.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아름다운 것은 사랑하는 가족도 마찬가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