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오픈북, 탐험하고 이야기하라

도시는 오픈북,  
탐험하고 이야기하라도시건축가 김진애

글. 최지영 | 사진. 남윤중(AZA STUDIO) | 2020년 1호

2020. 01. 29 890

타임지가 주목했던 거인이 목요일 아침마다 까칠하면서 거침없는 목소리로 풍성한 이야기를
수다스럽게 풀어놓아 더 반갑다. 변함없는 키워드인 도시와 사람에 대한 성찰을 담은 ‘도시 3부작(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도시의 숲에서 인간을 발견하다, 우리 도시 예찬)’을 비롯해 건축과 집, 교육과 성장 등 풍성한 콘텐츠를 친근하고도 아름다운
문체로 전하는 저자로, 방송인으로, 강연가로 만날 수 있어 더 크게 다가오는 인물, 김진애.

서브이미지

자신만의 온전한 하루를 계획해보라

이 도시의 어느 사무실, 아파트의 거실, 혹은 도로 위, 카페 한쪽 자리에서 자신의 일에 여념이 없을지라도 누구든 느껴보았을 공허함이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경력과 연륜이 쌓일수록 충만하다기보다는 소모당한다는 느낌. 여기에 도시건축가 김진애 박사가 건네는 위로 같은 솔루션이 날아와 쿵 박힌다.
“자신만의 온전한 하루를 스스로 계획해보세요. 밖에 나가서 하는 아침 식사부터 밤까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디에 갈 것인가, 무엇을 볼 것인가,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 우리가 얼마나 휘둘리고 사는지 생각해봐야 해요.”
단지 듣기만 했을 뿐임에도 머릿속이 환해진다. 지난해 말 다시 펴낸 《도시의 숲에서 인간을 발견하다》에서 밑줄 그어가며 새겼던 내용을 육성으로 들으니 그 힘이 또 다르다.
25년여 전, MIT 공대 대학원 도시계획학 박사 학위와 함께 당시 느낌대로라면 혜성처럼 나타나 존재감을 각인시켰던 김진애. 애초 자신을 소개했던 ‘도시계획 PD’보다는 건축가로 알려졌지만, 처음부터 그는 ‘공공(public)’에의 기여를 생각하며 길을 걸어온 도시계획가로서 산본 신도시, 인사동길 등을 설계했고 자문 활동에도 왕성히 임했다.

근래에는 본업과 관련한 자문 활동조차 금하고 강연, 저술, 방송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3년 전부터 라디오 생방송 코너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tbs ‘김어준의 뉴스공장’)를 진행하면서 특유의 까칠하고 직설적인 어법과 경계를 가리지 않는 풍성한 콘텐츠로 마니아층을 형성해왔다. 도시라는 공간 속에서 보이지 않게 작용하는 역학 관계 및 사람 관계에 관한 구조적인 이해와 더불어 결국은 사람과 공존하는 길을 모색하게 한다.

공간 감수성, 훨씬 행복해질 수 있는 힘

그의 저작들 바탕에 깔린 공통의 주제는 공간 감수성이다.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도시의 숲에서 인간을 발견하다》, 《우리 도시 예찬》이 도시인들이 자신의 삶을 좀 더 의미 있고 행복하게, 사회적으로 일어나는 일과 현상에 주눅 들지 않고 속지 않게 일깨우는 이야기라면, 《집놀이》는 공간에 대한 훈련을 받은 전문가가 생활인으로서 일상 속 집에서 공간 감수성을 키우고 가족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담은 이야기다.
“공간 감수성이 풍부하면 일단 자기 삶이 훨씬 행복해져요. 행복할 수 있는 순간들을 더 많이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자기가 어떤 공간을 좋아하는지 그 공간의 어떤 면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비판하게 되는지 확인할 수 있는 눈이 생기죠.”
무엇보다 아이를 둔 부모라면 《집놀이》를 꼭 챙겨 봐야 할 것 같다. 당장 따라해보고 싶은 수많은 조언들 가운데 ‘집 그리기’는 김진애 박사도 아이들과 함께했던 놀이 중 하나로, 아이들이 집 안을 구석구석 파악하는 좋은 방법이다. 줄자를 들고 이 방 저 방 길이를 재보면서 자기 방이 한 자밖에 작지 않은데도 왜 그렇게 불편한지, 어떤 공간을 좋아하는지를 통해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고. 오래도록 한 가족이 잘 살기 위해서라면 ‘부부는 모쪼록 셰어하우스처럼, 부모와 자식은 모쪼록 게스트하우스처럼’ 사는 쿨한 조언도 꽤 설득력 있게 와닿는다.

이젠 나를 드러내도 좀 편안한

타임지가 주목했던 차세대 세계 리더. 하지만 자신의 내공은 유명세에 휘둘리지 않고 그 많은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왔다는 것이며, 이는 스스로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부분임을 전한다. 더러 오해받는 부분이기도 한데, 정치권에 입문한 건 유명세를 치른 이후 자신의 생각이 정리된 다음 스스로 택한 길이라고. 그는 이제는 좀 편안하다고 말한다. 사회의 통념, 권위, 겸손, 품위 들에서 자유로워져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드러내도 괜찮은’ 지금이 좋다고.
특유의 까칠하고 직설적인 말투와 성량은 그의 내공을 짐작케 하는 시그니처가 되었다. 지금은 얼굴보다 목소리로 먼저 사람들 눈에 띈다는데, 이 또한 나쁘지 않다고 그는 받아들인다. “목소리는 얼굴보다 정직하거든요. 그 안에 내공과 캐릭터와 감정이 실리는 게 목소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방송도 제 기준은 영상을 끄고 소리로만 들어도 괜찮으면 괜찮은 프로그램이다, 라디오 토론에서 괜찮게 들리는 사람이면 괜찮다, 뭐 이런 기준들이 있어요.”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과 직업을 갖고 싶다는 어릴 적 소원을 거의 이루었다고 말하는 김진애 박사. 자신에 대해 ‘샤이하지는 않지만 굉장히 프라이빗하다’고 표현한다. 어떤 자리든 유쾌하게 장악하면서도 혼자만의 시간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한 마디로 비밀이 많은 사람, 곧 콘텐츠가 풍부한 사람으로 이해된다.
그만이 들려줄 수 있는 금언 같은 말을 기억한다. “사람은 비밀이 많아야 돼. 아이들에게는 비밀의 방이 있어야 됩니다. 내 방도 없던 시절 책장 뒤 비밀 공간을 가졌을 때 내가 갑자기 커진다고 느꼈거든요. 모든 사람은 비밀이 있어야, 외로워야 큽니다.”

서브이미지

공간을 촉매로 서로 자라기를

그의 힘과 이야기는 방송, 강연, 저작을 통해 계속 전해지고 있다. 끊임없이 스스로 찾고 공부하고 자신을 훈련해온 덕분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한 번 그 공간의 맛을 보고 나면 특정한 진미처럼 사람의 깊이를 더한다’는 그의 공간 예찬은 힘이 ‘굉장히’ 세다.
“마음속에 공간이 있는 사람의 깊이는 다릅니다. 그런 공간에 대해 자기만의 목소리로 얘기할 때 사람이 굉장히 달라보이죠. 공간뿐이겠어요. 책도 그렇고, 영화도, 사람도 자신만의 느낌을 자기의 언어로 얘기하는 사람, 굉장히 좋죠. 그런 게 많으면 좋아요.”
모두가 그와 같은 전문가가 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한다. 서로 좋은 영향을 주면서 자라기를 그리고 삶에 호기심을 유지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잘 파악하고, 행복감을 느끼기를. 공간과 글이 그 촉매이므로 모쪼록 많은 사람들이 그 촉매를 잘 활용하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도 매주 목요일 아침마다 그의 시그니처, 까칠하고도 후련한 목소리를 들으며 힘을 얻을 수 있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