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뛰고, 함께 쉬고··· 아이의 속도에 맞추며

함께 뛰고, 함께 쉬고···
아이의 속도에 맞추며

글. 김수린(중학교 교사) | 일러스트. 김지영 | 2020년 1호

2020. 01. 29 132

또래보다 야무지고 잘할 것 같았던 아이가 이제는 평범하다 못해 느린 것 같은 초등학생이 되었다.
내 아이만 느린 것 같고 이대로 둬도 괜찮은지 불안했지만, 아이에게 혼자 달리라고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뛰고 싶으면 뛰고, 걷고 싶으면 걸어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 옆에서 가족이 함께할 것이다.
함께 뛰고, 함께 걷고, 함께 쉬면서 아이의 속도를 맞추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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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요구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아이의 교육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아이가 어리기도 했지만, 학교에서 진행하는 표준화된 시험이나 평가가 없어서 아이가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한국처럼 동네에 다양한 학원이 있지도 않았고, 학교 이외에서 교육을 따로 시키지 않는 분위기라 무엇을 알아볼 생각도 없었다. 학교에 열심히 다니고, 사고 없이 친구들과 잘 지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아이도 나도 여유롭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아이의 학원 시간표를 짜는 것이었다. 남자 아이라 운동 하나 정도는 하고, 어릴 적부터 배웠던 피아노도 계속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림을 못 그리니 미술 학원도 넣어야 하고, 외국에서 익혀왔던 영어도 잊지 않기 위해서 학원을 보내야 할 것 같았다. 외국에서 제대로 국어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국어도 걱정되었다. 요즘 수학은 다 선행이라니 수학 학원도 필수인 것 같았다.
아이의 시간표를 몇 번이나 쓰고 지웠다. 학원비를 계산해 보니 금액도 만만치 않았다. 적어도 남들 하는 것은 다 해야 할 것 같은데, 돈도 시간도 빠듯했다. 어떤 이는 악보만 볼 줄 알면 된다고 피아노를 버리라고 했고, 해외 거주 경험이 있는 다른 이는 아이의 영어 실력이 완전하지 않을 나이라 금방 잊으니 더 집중적인 영어 학원에 보내라고 했다. 다른 학원은 안 보내더라도 수학은 꼭 보내라고 조언하는 이도 있었다. 학교 수업만 충실히 따라가던 아이도, 재촉하지 않고 그대로 바라보던 나도, 한국의 학원에 발을 들인 순간 혼란스러웠다.

엄마가 함께하기로 했다

아이는 외국에서 친구들과 놀면서 수영을 배웠는데, 이곳에서는 자세가 바르지 않다거나 속도가 나지 않는다며 질책을 받았다. 영어책을 즐겁게 읽었었는데 학원에서는 단어 암기와 시험으로 이어지자 아이는 힘들어했다. 외국에서는 수학이 너무 재미있고 쉬웠는데 한국에 오니 자기가 제일 못한다며 주눅이 들었다. 학교 마치고 아이들과 놀고 싶은데, 다들 자기는 모르는 게임 얘기만 하거나 학원 가느라 바쁘다며 속상해했다.
결국, 모든 것을 중단하기로 했다. 줄줄이 예약해두었던 학원 상담과 테스트를 모두 취소했다. 일단 아이를 그대로 두기로 했다.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내가 불안하다는 이유로 아이의 마음을 바라보지 못한 것 같아 미안했다. 일단 아이의 모든 활동에 또래 친구가 아닌 내가 파트너가 되기로 했다. 이곳에서 계속 살아왔던 또래 아이들의 속도에 내 아이를 맞추도록 할 게 아니라 내가 아이의 속도에 맞추기로 했다. 우선 함께 테니스를 시작했다. 엄마와 새로운 운동을 배우고 땀을 흘리면서 아이는 조금씩 지친 마음을 회복했다. 테니스 경기 동영상을 같이 보면서 함께 나눌 얘깃거리도 생겼다. 책도 함께 읽었다. 그림책 이후로 한글책은 읽어준 적이 없었는데, 1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소리 내 읽어주었다. 읽으면서 이해 가지 않는 단어에 대해서 설명해주기도 하고, 자연스레 비슷한 경험을 나누기도 했다. 영어책도 함께 읽었다. 읽었던 책을 서로 추천해주고 내용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차츰 아이는 영어책과 한글책을 혼자 읽는 시간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사실 아이와 함께하며 아이의 속도대로 지내다 보니 어른인 나도 버거운 적이 있었다. 새 학기에 야심차게 준비했던 빡빡한 스케줄을 생각하니 아이에게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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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아이만 바라보는 시간

한국에서 맞이한 첫 여름 방학에 우리 가족은 일주일 간의 휴가를 떠났다. 그동안 해외 생활을 하면서 여행을 많이 해왔던 터라 한국에서는 여행을 좀 줄여볼 계획이었으나, 아이는 벌써 지도를 펼쳐 우리의 지난 여행지를 살펴보고 다음 여행지를 기대하고 있었다. 여행지는 우리 가족에게 제2의 고향인 베트남과 비슷한 동남아 휴양지였다.
여행지에서 아이는 모처럼 즐겁게 수영을 했다. 수영이 너무 힘들어 다니기 싫다던 아이의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이는 물속에서 나오지 않고 일주일 내내 수영을 했다.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동남아 음식과 열대 과일을 먹으면서 잊고 있었던 베트남의 기억을 하나둘씩 꺼내 보았다.
“엄마, 오랜만에 패션프룻 주스 먹으니까 베트남 생각이 나.”
“엄마도 갑작스럽게 내리는 비랑 습한 날씨 속에 있으니 베트남 생각난다. 베트남 다시 가고 싶어?”
“베트남도 좋았는데, 한국이 더 좋아. 친구들과 재밌게 할 게 많아. 학교에서 한국말로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도 재밌어.”
의외였다. 학교에 다녀오면 힘들다며 학원은 다니기 싫어하던 아이라 당연히 한국 생활을 힘들어할 것 같았는데 말이다.
사실 평소에는 이런 얘기도 하지 않았다. “학교는 재밌었어?”, “숙제했어?” 등등 확인을 위한 질문만 했을 뿐 아이의 생각을 들어볼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오늘의 할 일’만 있었던 일상에서 ‘오늘은 뭐할까’를 함께 생각하는 여행을 오니 아이의 이야기를 묻고 듣게 된다.
여행을 마치면 또 반복되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내 아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만 봐야지’ 하다가도 한 번씩 흔들릴 때가 있다. 함께 하다가도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어 자괴감에 빠질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여행의 순간과 기억을 떠올리며, 아이의 건강함에 감사하고 다시 힘을 낸다. 아이가 더 자라서 힘든 순간을 맞이할 때, 우리 부부가 늙어서 외로움을 느낄 때 가족이 함께했던 모든 경험들이 고난을 이겨낼 힘이 될 것이라 믿으면서.

김수린은 남편의 주재원 발령으로 4년여 간 베트남에서 생활했고, 영국에서 4개월 동안 아이들과 지냈다. 영국에서의 경험을 담은 책 《영국에서 아이들과 네 달 살기》를 펴내기도 했다. 아이와 엄마가 함께 성장하는 힘은 독서와 여행이라 생각하기에 그 두 가지는 늘 함께하려고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