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저마다 다른 역사책

아이는 저마다 
다른 역사책

글. 최재정(차의과학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의학교육학교실 교수) | 사진. 이미지투데이, 클립아트코리아 | 2020년 1호

2020. 01. 29 174

최근 들어 국내·외적으로 유튜브 등 SNS를 통해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키드플루언서(kidfluencer)’, 즉 어린이 인플루언서가 뜨고 있다. 이 아이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잘
헤쳐나가고 있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사소해 보이기 때문에 자칫 놓칠 수도 있었던 자신만의 차이점과 개성을 자신감 있게 발휘한 결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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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체 근대’, ‘위험 사회’를 헤쳐나가는 힘, 개성

폴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사회학자 Z. 바우만에 의하면 앞으로의 세상은 더 이상 견고하고 엄격한 수직적 상하 관계에 의해 지배되지 않을 전망이라고 한다. Z. 바우만은 그런 사회의 상태가 가볍고 유동적이며 다양한 형태로 구성될 수 있는 액체와 닮았다고 해서 ‘액체 근대(Fluid Modernity)’라 명명하고 있다. 단단한 피라미드가 구조가 아닌 끝없이 물처럼 흐르는 네트워크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는 언제 어디서 미처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벌어질지 결코 쉽게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마치 힘차게 흐르는 깊은 산중 계곡물처럼 언제,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얼마나 강한 압력과 수량으로 우리의 삶을 위협할지 알 수 없는 액체 사회를 목전에 두고 있는 셈이다. 그러기에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 U. 벡은 이처럼 발 딛는 곳마다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현대와 미래를 ‘위험 사회’로 명명하고 있다.
부모로서 우리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비시킬 수 있을까? 크게 두 가지 방향의 전략이 가능할 것이다. 첫째, 그 어떠한 파도가 밀려와도 꿋꿋하게 제 자리를 지키며 중심을 잃지 않고 버티는 전략이다. 둘째, 몰아치는 격랑을 맞이하여 마치 서핑하듯 그 파도의 크고 작은 물결에 몸을 맡기며 떠다니는 전략이 있을 것이다. 어떤 전략을 적용하든 머지않아 닥쳐올 출렁이는 파도에 맞서 우리 아이들이 힘차게 헤쳐나가게 할 힘은 바로 ‘개성’이다. OECD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해가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감당하기 위한 미래 인재의 핵심역량으로 4C, 즉 비판적 사고 능력(Critical Thinking), 창의력(Creativity), 의사소통 능력(Communication Skill), 협업 능력(Collaboration)을 꼽고 있는데, 이 중 특히 비판적 사고 능력과 창의력을 높이려면 아이들 각자의 ‘차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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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별만큼 수많은 ‘다름’으로 존재하는 인간

하버드대학의 세계적 심리학자인 H.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지능이 관여하는 영역이 적어도 9가지로 나뉘어져 있으며, 이 9가지 영역의 지능들이 수만 가지 서로 다른 조합을 만들어내며 각 개인의 뇌 속에 아로새겨진다고 한다. 심리학에서 볼 때 모든 아이는 분명 선천적으로 각기 다른 개성과 차이점을 지니고 태어난다. 그에 더하여 인간에게는 애초부터 ‘자유 의지’라고 하는 앱이 기본 사양으로 장착돼 있다. 세상 어디에서, 언제 태어났든 각기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갖가지 사건들을 경험, 체험하며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선택을 내리고, 다른 길로 발을 내딛는다.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나 같은 DNA를 공유하더라도 성인이 되어 살아가는 모습이 결코 같을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러기에 H. 베르그송은 그의 ‘삶의 철학’에서 인간을 누구나 ‘유일회적 존재’, 즉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라고 설명하고 있다. 인간에게 주관적으로 경험, 체험되는 시간이란 기계적으로 시계가 1초씩 정확하게 째깍거리며 움직이는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오로지 각자에게만 의미 있는 고유한 삶의 시계가 따로 작동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각자의 삶의 역사는 타인의 것과는 뚜렷하게 차별되는 개성 넘치는 에피소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즉 참다운 시간이란 생명력을 가지고 끊임없이 흐르는 내적 체험의 시간이라는 의미이다. 그러기에 모든 아이는 각기 서로 다른 삶의 역사책을 써 내려가는,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고유성을 지닌, 하나하나 소중한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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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와 응원이 필요하다

개성을 이루는 차이, 다름은 두 가지 측면을 가진다. 한 측면은 나의 개성, 차이, 다름에 대한 자부심이다. 내 자식의 소중함을 모르는 부모는 없다.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이 그 어떤 아이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스럽고 독특하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닥쳐올 미래가 불확실하고 불안할수록 눈앞의 동아줄이라도 붙잡고 싶은 조급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럴수록 취업을 보장한다는 현재의 특정한 인기 직업, 인기 학과에 대한 집착이 점점 더 강해진다. 이는 다시 획일적이고 파행적인 과열 경쟁을 낳게 되며, 그 대열에 끼어드는 순간 아이의 개성은 순식간에 증발해버린다. 경쟁을 둘러싸고 몰아치는 광풍을 이겨내고, 타인의 시선이나 편견, 고정관념에 흔들리지 않는 주체적이고 건강한 자부심을 키워나가야 한다. 여기에는 부모의 강한 용기와 응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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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속에서 꽃피는 개인차, 고유성

개성의 또 한 측면은 너, 타인의 다름이다. 우리 아이들은 인종, 종교, 신체적 장애, 사회적인 성취 등으로 인해서 생기는 차이에 대하여 존중하고 배려함으로써 공존할 줄 아는 품성과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미래 인재의 핵심 역량 4C 중 ‘의사소통 능력’과 ‘협업 능력’이 발현되기 위해 요구되는 품성이라고 할 수 있다. 위기와 갈등으로 범람하는 시대에서 장애물들을 극복, 해결하며 나아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타인과도 융합하며 함께 힘을 모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만들어지는 어떤 팀에서도 타인의 개성과 기능, 역량을 수용하고 융화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리더, 예술가, 조용한 실무자 등 각자의 자리에서 역량을 한껏 발휘하는 개인들이 모여 있을 때에야 비로소 집단 지성이 일구어낼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최고 수준으로 극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르게 생각하고, 색깔 있게 노는 아이로 키우는 길

  1. ‘다름’을 ‘차별’로 만들지 말 것!
    아이들은 순수하여 서로의 차이에 대한 편견이 없다. 편견은 결국 어른들과 그들이 만들어놓은 환경이 심어주는 것이다. 다름을 차이로 인식하여, ‘차별’로 만드는 편벽되고 피상적인 마음을 가지지 않도록 부모 스스로 사회적 편견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2. ‘다름’을 인정하고 유머로 승화하도록 이끌어라!
    예컨대 아이가 장애나 피부색과 같이 사회에서 편견으로 대할 만한 ‘다름’을 가지고 있을 경우, 절대 부끄러워하거나 숨겨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그 다름을 인정하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장점을 최대한 살려 차별화된 개성으로 키워나가도록 할 일이다. 더 나아가 때로는 다름으로 인해 야기될 수도 있는 아픔을 딛고 성숙한 유머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3. 아이들의 독특한 ‘패션 감각’을 인정하라!
    아이건 성인이건 저마다 다른 미적 취향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 패션 감각이다. 또한 아이들은 또래 문화가 있어 그 안에서 자신의 개성을 한껏 표현하고 싶어 한다. 자칫 작아 보이지만 아이의 독특한 취향을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 패션 감각은 인간 고유의 매우 은밀하고 예민한 차원이므로, 취향을 묵살할 경우 아이의 자존심이 심각하게 손상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4. 말로 규격화, 획일화하지 말 것!
    ‘남자 아이가 인형을 가지고 놀아?’, ‘여자애가 수학도 잘하고, 놀랍네’, ‘1등은 뭐가 달라도 달라’···. 이런 말들은 아이의 내부에 깊이 잠들어 있을 개성의 씨앗, 즉 잠재력, 가능성, 꿈을 단숨에 짓밟아 버리는 위험한 말들이다. 성별과 나이, 외모 등 그 어떤 준거도 아이의 개성과 차이를 재단하는 잣대가 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