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 호기심과 결핍으로 자란다

창의성,
호기심과 결핍으로 자란다

글. 이은화 (멀티아티스트) | 일러스트. 김지영 | 2019년 12호

2019. 12. 27 179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21세기가 요구하는 창의융합형 인재의 원조다.
서른여섯에 얻은 딸아이를 다 빈치처럼 다재다능하고 창의적인 사람으로 키우고 싶지만 아이 교육에 열성적인 엄마는 못 된다.
부자도 아니고 체력도 안 되고 시간도 없는 워킹맘이 내 현실.
그저 틈날 때마다 함께 책 읽고 ‘입으로’ 놀아주고 있다.
자주 묻고 답하고 상상하며 수다 떨고, 모르는 건 함께 공부한다.
창의성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체득하는 거라 믿으며 내가 제일 잘하는 방법으로 아이와 함께 배우며 나도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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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생각할 수 있도록, 그것만 해도

내일 3, 4교시 과학의 날 행사 그림 그리기 실시
주제 : 미래의 세계 – 집에서 미리 생각해오기
초등학교 입학하고 한 달 반쯤 지난 무렵, 아이가 알림장에 적어온 내용이다. 딸아이 덕분에 4월 21일이 과학의 날이란 걸 수십 년 만에 상기할 수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도 무슨 기념일만 되면 의례적으로 그림 그리기나 글쓰기 행사를 했었는데, 지금도 여전하다는 생각에 코웃음이 났다. 하지만 초등학교 1학년 엄마는 그냥 웃고 넘길 일이 아니었다. 담임 선생님이 보내는 문자나 아이가 써온 알림장에 매번 긴장했고, 숙제나 준비물도 꼬박꼬박 챙겨야 했다. 워킹맘이란 표를 내지 않으려 더 신경 썼던 것 같다. 그날 저녁 나는 알림장 문구 그대로 아이가 그림 주제에 대해 미리 ‘생각만’ 해볼 수 있도록 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다른 엄마들은 집에서 미리 그려보게 하거나 미술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학원에서 연습을 시켰다고 한다.
“잘 그렸어? 어떤 거 그렸어?”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를 보자마자 물었다. “어, 지하 세계를 그렸어. 300층 아파트를 그리고 싶었는데, 종이가 모자라서 층을 많이 못 그렸어.” 그날 아이가 그렸다는 미래 세계는 이러했다. 땅은 비좁고 공기는 나빠져 사람들이 더 이상 지상에 살 수가 없는 상황. 그래서 땅속에 역피라미드 모양의 대형 빌딩을 짓고 산다. 근처 숲과 공기관이 이어져 있어 주민들은 신선한 공기를 실내에서도 마실 수 있고 지하라서 여름에는 에어컨이 필요 없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각 층마다 사람들이 살고 있고, 건물 입구에선 어떤 사람이 무지개 줄넘기를 하고 있다. 일종의 보안 장치로 이 줄넘기를 통과해야 지하 빌딩으로 들어갈 수 있다.
초등학교 1학년의 생각치곤 너무 멋지지 않은가. 아이는 이 그림으로 최우수상에 뽑혀 그림 잘 그리는 아이로 소문이 났다. 초등학교에서 처음 받은 상은 평생 기억에 남는 법, 그것도 창의성 넘치는 상상화로 받은 거라 더 기뻤다. 나중에 교실 벽에 붙은 반 아이들의 그림들을 봤다. 내 어릴 적에도 인기였던 우주 그림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 다음이 로봇 그림이었다. 지하 세계를 표현한 건 딸아이가 유일했고, 도화지도 혼자 세로로 세워 그렸으니 아무래도 선생님들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상상력과 창의성에도 소스가 필요하다

사실 그 땅속 세계 그림은 온전히 아이의 상상력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전날 함께 찾은 자료의 이미지를 토대로 아이가 상상을 덧붙여 표현한 것이었다.
“유진아, 미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과 많이 다를까? 자동차 대신 우주선으로 여행 다니고 그럴까?”
나는 다만 아이의 생각을 끌어내기 위해 여러 질문을 던졌는데, 사실 미래 세계는 내가 더 궁금했다.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시대. 검색 5분 만에 100년 후의 세계를 인상 깊게 조망한 기사 하나를 바로 찾았다. 정교한 일러스트까지 있어서 아이와 함께 보기 딱 좋았다. 대형 드론이 살던 집을 통째로 옮겨 이사해주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고, 3D 프린터가 집을 짓고, 사막이 열대 숲으로 바뀌고, 기후 변화를 대비해 점점 더 깊은 지하에 건물이 지어지고 있다는 내용도 그 기사에 있었다. 우리는 그날 저녁 곧 다가올 미래 세계를 상상하며 실컷 수다를 떨었다. 아이는 지하 세계가 가장 인상 깊었는지 그걸 그림의 주제로 삼았던 거다.
평소에도 나는 책을 읽거나 인터넷을 검색하다 새로운 지식이나 정보를 알게 되면 꼭 딸을 부른다. “유진아, 이것 좀 봐봐, 세상에 말이야, 나도 방금 알아낸 사실인데···.” 마치 대단한 발명이라도 한 것처럼 좀 호들갑스럽게 아이의 반응을 이끄는 편이다. 그렇게 해야 아이도 궁금해하고 더 알고 싶어 한다. 이런 경험이 쌓인 덕분인지 이제 아이도 책이나 학교에서 얻은 새로운 정보가 있으면 내게 똑같이 전해준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이의 질문 수준도 높아져 즉답이 힘들다. 그래서 아이와 나는 궁금한 게 있을 때마다 서로 질문하고 대화하고 바로바로 자료를 찾아 공부하며 함께 성장하고 있다. 상상력과 창의성에도 소스가 필요하다. 결코 무에서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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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해야 방법을 찾아낸다

아이가 2학년이 되더니 갑자기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했다. 평소에 뭔가를 사달라고 조르지 않던 아이였는데, 친한 친구들은 다 가지고 있다며 자기도 사달라고 처음으로 졸랐다. 우리 부부가 잘하는 건 딱 한 가지,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거다. 그래도 왜 안 되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바로 검색에 들어갔다. 어린이 스마트폰 중독에 관한 기사는 차고 넘친다. 기사 내용을 함께 보며 아이를 설득했다. 결론은 ‘6학년이 되면 사주마’였다. 그런데 결국 그 해 겨울, 우리 부부는 자발적으로 아이에게 폴더폰을 사줬다. 아이가 학교에서 콜렉트콜로 건 전화를 부부가 둘 다 안 받은 게 화근이었다. 070으로 시작되는 번호를 광고나 스팸으로 여겼던 거다. 그 후 아이는 친한 친구의 폰을 빌려 전화를 했는데, 친구의 폰은 문자량과 통화 시간이 제한돼 있고 알을 충전해서 쓴다는 걸 알고는 미안해서 내 아이에게도 사주었다. 2D 폴더폰을 사준 그날 저녁, 아이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하늘 위로 아흔아홉 번 날아올랐다. 전화 기능밖에 없는데도 그렇게 좋은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이는 주말 내내 폴더폰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연구하고 분석했다. “엄마, 생각보다 폴더폰이 기능이 많아.” 기본 전화 기능 외에도 질은 떨어지지만 카메라도 달려 있고, 녹음 기능이 있는 것에 무척 기뻐했다. 폴더형이라 떨어뜨려도 액정이 깨질 염려가 없고, 라디오 버튼이 따로 있으며, 심지어 엄마의 스마트폰보다 벨소리 종류가 더 많다는 등 자신이 찾아낸 장점을 죽 늘어놓았다. 몇 달 후 검색할 게 있다며 내 폰을 잠시 빌려 간 아이는 자기 방에서 나올 생각을 안 했다. 뭘 하나 봤더니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검색해 크게 튼 후 자신의 폴더폰으로 그걸 녹음하고 있었다. 학원 버스 안에서 들을 거라고 했다. 스마트폰이 있는 친구들이 버스 안에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게 무척 부러웠던 아이가 생각해낸 자구책이었다.

불편과 부족의 힘을 믿으며

지금도 나는 검색용으로만 내 폰을 아이에게 잠깐씩 허락한다. 최근에 딸아이는 엄마 폰을 빌려 예쁜 캐릭터 찾기에 열심이다. 엄마 폰에서 찾은 예쁜 캐릭터 그림을 자기 폰으로 문자 전송한 뒤 그걸 저장해 친구들과 서로 문자로 교환한다. 경험을 통해 그림 파일이 알을 많이 소진한다는 걸 알게 된 아이는 고르고 고른 아주 예쁜 이미지만 저장하고 문자도 매우 신중하게 보낸다. 친구랑 전화 통화도 꼭 필요할 때만 짧게 한다. 이유는 딱 하나, 엄마가 알 충전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알아도 더 충전해줄 리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수많은 육아서를 쓴 제인 넬슨도 ‘넘치게 사랑하고 부족하게 키우라’고 하지 않았던가? 부족해야 생각의 싹이 자란다. 불편해야 아이 스스로 방법을 찾아낸다. 어쩌면 아이한테 돈도 시간도 많이 투자하지 못하는 엄마의 변명일 수도 있지만, 호기심과 결핍이 천재 다 빈치를 만들었다고 나는 믿는다.

이은화는 미술작가, 평론가, 칼럼니스트, 강사, 라디오 방송 등 전방위적으로 활동하는 멀티아티스트다. 바쁜 워킹맘이지만 아이가 속한 교육 제도나 환경에도 관심이 많아 녹색어머니회나 폴리스는 물론 3년째 학교운영위원으로, 2년째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과 놀이와 공부가 일치하는 삶을 지향하며 딸도 그렇게 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