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더 큰 가치가 중요한

언제나 더 큰 가치가 중요한옐로소사이어티 대표 이제복

글. 최지영 | 사진. 이서연(AZA STUDIO) | 2019년 11호

2019. 11. 27 1219

요즘 초등학교 앞에는 아이들이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 노란색 공간이 눈에 띈다.
두드러지는 색에 벽과 길바닥에 걸친 고깔모자 모양으로 어린이 교통사고를 예방하는 안전 지대, 옐로카펫이다.
2015년 4월부터 시작된 옐로카펫은 빠른 속도로 확산되어 지금은 정부 사업으로 진행중이며,
고등학교 교과서에 아동 인권 증진의 예시로 등재되었다.
여기에는 이제복 대표 자신의 삶과 아동이 안전한 사회에 대한 깊은 자기 성찰과 가치가 담겨 있다.

서브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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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는 안전해야 한다

옐로카펫을 모든 곳에 깔 수 없어 아이들 가방에 달아주자고 만든 것이 옐로카드다. 유럽의 법제화된 기준보다 4배 높은 반사도로 150미터 멀리서도 감지할 수 있어 어린이 보행중 사고 사망자수와 부상자수를 현저히 줄여준다고 한다.
이제복 대표는 ‘아동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는 하나의 원칙에서 창안했다. 안전의 기준을, 전혀 위험할 것이 없어 보이는 30대 성인 남자가 아니라 아동의 특성 자체에 둔 것. 우리나라 아동 교통사고 사망의 80퍼센트 이상이 횡단보도에서 발생함에도 지금까지 그 원인을 아이들이 키가 작기 때문이라고 인정하고 그친 데 의문을 가졌다.
“키가 작아서 잘 안 보이고 갑자기 뛰어나오는 직진 본능이 원인이라면, 키가 작아도 잘 보이게 하고 갑자기 뛰어나오지 않게 하면 된다, 여기서 옐로카펫 디자인이 나왔어요. 어린이가 안전하면 모두가 안전하니까요.”

참여와 변화의 경험이 중요한 청년 NGO 활동가

이제복 대표에게 늘어나는 옐로카펫의 수보다 중요한 점은 주민참여 경험이다. 사업 초반에 마을 주민들이 직접 만드는 방식을 고수한 이유이다. 설치 장소부터 주민들이 조사해 투표로 결정하는 등 내 집말고 공유 장소의 안전을 위해 온전히 기여하는 경험을 주고 싶었다. 시공 방식도 그래픽 노면 표시제라는 알루미늄 스티커를 고무망치로 두드려서 붙이도록 했다. 첫 일 년은 전국을 다니며 그 과정을 함께 했으며, 서울시와 업무 협약을 할 때도 진행 과정에서 ‘주민참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판단될 경우 사업 중지를 명할 수 있다’고 명문화했을 정도다.
“비록 작은 것이지만 직접 참여해서 변화를 경험해본 사람들은 다른 것에서도 아이디어를 내고 실천 방안을 고민하고, 최소한 건의라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사실 페인트로 하면 저희도 편하고 지자체의 경우도 알루미늄 스티커 방식을 선호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시민들께서 옐로카펫과 그 속에 담긴 가치에 공감하셨기에 주민참여 방식을 고수할 수 있었죠.”
옐로카펫을 창안할 때는 국제아동인권센터에서 일하고 있었다. 공학도인 그는 연세대 창업 동아리에서 다양한 사업을 구상하며 실제로 큰 기회들을 여러 번 만났음에도 마음은 늘 ‘더 큰’ 사회적 가치와 약자를 위한 길에 있음을 확인했었다. 자신의 능력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도록 쓰면서 사는 의미 있는 삶을, 그 대상은 절대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임을 진지하게 성찰했다. 국회에서 인턴으로 일하던 중 이양희 대표의 연설을 듣고는 바로 달려가 노크한 것도 국제아동인권센터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완전히 일치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 옐로카펫은 그렇게 일한 지 1년쯤 됐을 때 창안해 NGO로서는 유래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성공한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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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안전이 곧 아동 인권

최초의 옐로카펫과 캠페인 영상을 세월호 사건 1주년에 맞춰 공개했다. 모두가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과 부채의식을 느낀 가운데 그는 하나의 희망을 찾았다고 했다.
“아이들의 안전 문제에 대한 온 국민의 마음을 확인했어요. 사실 인권과 안전이 다르지 않거든요. 인권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고 접근 방식이 달랐구나.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부채의식을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원동력으로 쓸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죠. 그때부터 인권 대신 안전이란 표현을 썼고, 옐로카펫이 나온 거예요.”
지금 그는 옐로소사이어티라는 NGO를 설립해서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교통안전뿐만 아니라 아동 성범죄, 아동 주거권 등 아동 안전과 관련된 일이라면 무엇이든 주목하는데, 현재는 산하에 아동안전위원회를 만들어 시민의 입법 활동에 무게를 두고 있다. 어린이 안전용품에 대해 유럽 9개 국에서는 법제화된 기준이 우리나라에는 아직 없는 실정이고, 옐로카드만 해도 반사도 400mcd/lx라는 기준에 턱없이 미달인 유사품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반사도 준수를 권고하면서 법제화를 목표로 활동한다. 물론 ‘국민위원’을 통한 국민 참여 방식이다. 특별히 정한 자격은 없다. 나이나 환경에 따라 다양한 관점들이 나오고 그것이 섞이면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는 법. 그 후에 전문가 자문을 구하면 충분히 수준 높은 법안이 도출됨을 경험했다. ‘내가 의견을 낼 수 있어, 참여할 수 있어, 법을 만들 수 있어’라고 믿고 성과를 내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입법 활동에 열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지금은 청와대 국민청원이 친숙해졌지만, 국회에는 30년 전부터 국민청원제도가 존재해왔다. 이제복 대표가 그동안의 청원을 살펴보니 수천 건 가운데 아동, 청소년, 영유아 관련 청원은 단 45건뿐이었다고. 누구나 중요하다고 동의하지만 아무도 올인하지는 않는 일이었다.
“아동 관련 법안은 늘 다른 것에 밀려요. 20대 국회에도 법안이 5만 개가 계류돼 있어요. 발의도 쉽지 않지만 발의되더라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급한 것, 중요한 것부터 처리할 텐데···. 그래서 아동 관련 법이나 법안이 무척 허술한 게 현실이에요. 시민이 의견을 내서 법안을 만들어본 경험자들을 빨리 늘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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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활동도 즐겁고 폼나게

청년 NGO 활동가로서 그가 이루고 싶은 가치는 분명하다. 그 방법에 대해서는 지금도 매일 고민한다고 했다. 지금은 사회적 공간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고 본다. 경험을 통해 국민 누구나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일상 속에서 구체적인 관심을 가지는 것. 옐로카펫을 통해 가능성을 확인했다. 게다가 공대생이라는 점은 강점으로 작용한다. 늘 기계나 칩을 만들던 손이니 옐로카펫이나 옐로카드를 만드는 정도는 익숙하고 편하다. 조심스럽지만 많은 부모도 아이들이 반드시 공부한 분야의 일만 하기를 고집하지 않기를 바란다. 오히려 다른 분야에서 큰 강점으로 작용함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NGO는 가난해야 돼’라는 사회적 편견으로 그도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지만, ‘NGO도 좋은 비전과 캠페인을 통해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기업인과 NGO 회장 중에 누가 더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까? 후자가 뒤질 것 같지 않다고. 혹 자녀가 이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부모 입장에서 선입견으로 가로막지는 않았으면 한다. 좋은 비전과 좋은 캠페인이 있다면 충분히 괜찮은 길이다.
그는 어릴 때 아버지가 퇴근하면 늘 함께 동네를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던 기억을 들려주었다. 아들이 아무리 황당무계한 꿈을 쏟아내도 아버지는 정색하거나 웃지 않고 물으셨다고. ‘그러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그 긍정적인 사고는 중요한 힘이 되었다.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부정적일 때에도 그는 늘 가능을 전제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