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과 부정의 파도, 그 위에서 중심잡기

긍정과 부정의 파도,
그 위에서 중심잡기

글. 장해원(디자이너) | 일러스트. 김지영 | 2019년 11호

2019. 11. 27 332

아이와 함께하는 삶은 늘 약간의 혼란인 것 같다. 물론 즐겁고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부모와 아이 각자의 긍정과 부정이 뒤섞인 다소 소란스런 혼동이랄까. 가끔 아이의 생뚱맞은 고집이 나올 때면
아무리 부모라도 너그럽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아이는 언제까지나 계속 부모를 시험에 들게 하는 존재임을,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더 많이 더 자주 혼란스러워진다

부모와 자식으로서 일방적인 양육의 시기를 지나 아이도 이제 한 개인으로서 어느 정도 색깔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나는 더 많이 더 자주 머릿속이 헝클어진다. 어느 선에서 얼만큼 아이를 수용하고,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거절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운 상황이 잦아진다. 어떤 색깔의 옷을 고를지, 이번 체험학습은 박물관으로 갈까 과학관으로 갈까 하던 예전의 고민은 달콤한 사치였나 싶다. 아이의 성장이란 하염없는 기쁨만이 아니라 때로는 감당하기 벅찬 무게를 동반하는 사건의 연속이란 생각이 드는 거다. 아이가 없던 시절이라면, 아니 좀 더 어릴 때만 해도 흔쾌히 받아들였을 상황조차 순식간에 불안과 걱정으로 변해버리기도 한다.

바라던 것도 이젠 시기가 좋지 않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은 대체로 밝고 긍정적이다. 사회성도 좋아 보이고 자기 고집도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엄마가 모르는 친구들도 자주 집으로 데리고 오는 걸 보면 친구관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이 정도면 잘 크고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고 자주 신통해하던 중, 2학기가 시작되면서 아이는 갑자기 반 임원 선거에 나가겠다고 했다. 꼭 회장 선거에만 나갈 거라고.
“지금? 그래, 공약은 준비했어? 집에서 연습해봐야 하는 거 아냐? 어디 한번 들어볼까.”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는 내심 고민되기 시작했다. ‘왜 하필 지금이야? 1, 2학년 때는 그렇게 권해도 꿈쩍 않더니.’ 지난해까지만 해도 회장단을 새로 꾸리는 학기초나 여름방학이 끝날 때면 혹시 잊어버렸나 싶어 내가 권하던 희망 사항이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아이의 반 상황이 그다지 평온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아이의 반에는 유독 말썽인 한 친구가 있어 아이들은 물론이고 엄마들의 신경이 온통 쏠려 있는 상태다. 다른 초등학교에서도 말썽을 피워 우리 학교로 강제 전학되었다는 그 친구는 툭하면 지각에다 수업 시간에 딴짓으로 분위기를 흐리고 친구들과는 돌아가며 다투는 바람에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몇몇 친구들과는 지속적으로 싸움을 일으켜 양쪽 부모님 면담도 자주 있었던 모양이다. 그 아이에게는 훈육이 소용없었고 아이의 부모도 상당히 냉철하여 원인은 늘 쌍방에 있다고 주장한다는 거였다. 담임 선생님도 올해 전근 오신 분이라 학교 적응도 벅찬데 말썽쟁이까지 가세해 도저히 못 견디셨는지 병가를 내고야 말았다. 병가라고는 하지만 실은 그 아이 탓이라는 건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2주라던 병가가 한 달, 두 달로 연기되며 임시 담임 선생님이 정해졌고,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과 함께 결국 담임 선생님이 바뀌었다. 학기초에 5학년이 중요하다며 의욕을 갖고 안내하던 반 운영 방침과 학습 계획들은 연기처럼 흩어졌고, 아이의 학교생활은 많이 느슨해졌다. 그저 집에서 모든 것을 더 챙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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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긍정할 수 있을까

먼 동네 뉴스로 듣던 불편한 상황을 겪으면서 나는 참 많이 혼란스러웠다. 이런 때는 무엇을 긍정적으로 봐야 할까? 아이에게는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할까? 내년도 남았으니 차라리 전학을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아이 아빠와도 진지하게 의논했었다. 그러나 아이 아빠는 나만큼 부정적이거나 비관적이지는 않았고, 아이도 나와는 좀 대비되었다. 아들이 불미스럽게 엮일까 걱정될 뿐인 나로서는 부자가 태평해 보여 못마땅하기도 했다.
“너는 진짜 그 친구와 다투거나 한 일은 없어? 그 친구는 요즘 어때?”
엄마의 속마음을 비치지 않으려 애써도 아이에게는 탐문이나 감시로 느껴졌는지, 처음에는 그날 그날 친구의 동태를 잘 전하던 아들이 어느 순간부터 말을 아꼈다. “그냥 책상에 엎드려 있어. 많이 착해졌어” 하는 정도로 끝냈다. 그리고 나는 자신의 친구에 대해 엄마가 식구들이나 친구들에게 부정적으로 얘기하는 것을 아들이 싫어한다고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는 굳이 회장 선거에 나가겠다는 것이었고, 덜컥 당선되었다. 그것도 세 명이 입후보했는데 전체 서른한 명 가운데 열 여덟 명의 표를 얻었다며, 저녁에 아빠와 함께 여자친구들의 표는 적어도 얼마나 되는지 확률을 따지기도 했다. 저학년이었다면 하교 시간과 동시에 반 엄마들의 단체톡방에서 우르르 올라오는 축하 메시지를 듬뿍 받았을 테고, 나는 기꺼이 기쁨의 술을 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몇몇 친한 맘들의 축하 톡만 받았을 뿐이며, 단톡방은 조용하기만 하고 내 마음은 더욱 복잡해졌다. 그 와중에 도대체 아이의 공약은 무엇이었을까 내내 궁금했지만 아이는 끝내 비밀로 했다.
다행히 이후로 아이의 반은 새로운 담임 선생님과 안정을 찾아가는 것 같았고, 뒤늦게 가진 학부모 상담 때 나는 회장 선거에서 아이가 대체 뭐라고 했는지 선생님께 물었다.
“평화로운 반을 만들겠다고 했어요. 저도 많이 놀랐는데 다른 아이들도 공감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 친구를 포함해서 반 아이들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고 서로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아, 내 아이가 다칠까봐 노심초사 할 때 아이는 반의 평화를 생각하고 있었다. 잠시 부끄러웠고 곧 마음이 푸근해졌다. 순간 어릴 때 아이가 유독 좋아하며 여러 번 읽던 책이 떠올랐다. 《평화는 어디에서 오나요》. 체코 출신으로 남미에서 오랫동안 교사 생활을 한 여성 작가 구드룬 파우제방(아이가 하도 반복해 읽기에 나도 덩달아 읽었고, 무척 낯선 이름도 익혔다)의 단편 모음집인데, 아이들이 평화를 찾아가는 짧은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곁에 있는 엄마의 조언이나 노력, 조심성보다 오히려 책 한 권이 아이에게는 더 큰 영향을 주었나 싶으면서 대견하기도, 살짝 서운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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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침묵이 좋은 방법

하지만 그도 엄마의 노력 가운데 하나라고 나를 위로해본다. 그러고 보니 아이 반의 문제 앞에서 나는 한 가지만은 애써 주의했는데, 아이 앞에서 말을 아끼는 것이었다. 엄마로서 가질 수 있는 솔직한 속마음을 아이에게는 다 드러내지 않으려고 그 문제에 관해서는 짧게 묻고 침묵을 지켰고, 아빠와의 대화 내용이나 엄마들의 단체 톡도 부정적인 내용은 곧 지웠다. 혹시라도 아이가 볼까 무척 조심스러웠다. 엄마가 이렇게 몰래 애썼음을 아이는 알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문제가 다 해결된 건 아니다. 체험학습 때 문제의 그 친구를 어느 모둠에 두느냐, 버스에서 누구 옆에 앉게 하느냐로 선생님이 고민 끝에 임원들에게 상의했다는 거다. 반 분위기가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그 친구 곁은 여전히 꺼리나 보았다. 솔직히 나도 여전히 웬만하면 아들이 그 아이와 엮이지 않기를 바라며 자꾸 복불복, 무작위 선정 방식을 이야기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다음날 그 친구는 우리 아들과 같이 앉고 싶다고 선생님께 말했다고 한다. ‘뭐? 왜 하필···.’ 아이 아빠는 반겼지만 내 마음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게다가 체험학습 다녀오고는 그 친구가 초등학생이 되고 처음으로 자기 생일파티에 우리 아이를 초대했다고 한다. 마침 그날은 우리 가족의 여행이 약속된 날이라 아이는 아쉬워했지만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실은 지금도 같은 모둠이라 신경이 쓰인다.
아이는 언제까지나 부모를 계속 시험에 들게 하나 보다. 어느 한쪽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긍정과 부정의 파도 위에서 부모는 늘 마음 졸이며 중심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굳게 먹는다. 우선 불필요한 부정의 말은 삼가자, 차라리 침묵하자.

장해원은 대학에서 의상학을 전공한 후 패션 회사에서 가방 전문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패션 가방에서부터 아이들 가방, 여행 가방 등 시중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브랜드의 가방이 그 손을 거쳤다. 시부모님의 도움으로 일과 육아를 병행해왔기에 매사 감사하며 지낸다. 초등학생인 아이와 함께 낙서하듯 스케치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가 많아 그 시간이 가장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