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발질 아이에서 공격수 원탑으로

헛발질 아이에서
공격수 원탑으로
아이의 근성, 어쩌면 엄마 자신과의 싸움이었을까

글. 이은주 | 일러스트. 김지영 | 2019년 10호

2019. 10. 24 122

돌아보면 실수투성이고 엄마로서의 어설픔에 부끄러움으로 채워진 순간들도 많았다.
난 재미없는 성격에 흥이 있을 리가 만무한 터라 아이와 재미있게 놀아주지도 못했다.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지치지 않는 꾸준함과 성실함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한참 사춘기인 아이는 나와 내적 갈등을 겪는 순간들도 많지만 하고자 하는 일에 열정을 가지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안도와 대견함으로 내 걱정과 우려를 덮어버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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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함을 열정으로 채우며

아들은 중3이다. 고등학교 진학을 이제 몇 달 앞두고 엄마는 애가 탄다. ‘자사고가 나을까, 아님 집 근처 일반고에서 내신을 잘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건 어떨까.’ 머릿속이 복잡해진 지 한참이다.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들은 신이 나서 축구화를 집어 들고 집을 나선다.
“엄마 나 오늘 드디어 원탑이야.”
학교 친구들이 모여 반 대항으로 하는 축구 시합에서 최전선에 선 공격수란다. 아들이 다니는 학교는 항상 이맘때면 구기 대회를 연다. 1학년, 2학년 때도 있었지만 졸업을 앞두고 있어서 3학년은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아들은 항상 이야기한다. 더군다나 자신이 속한 반은 우승 후보이고 거기서 원탑을 할 정도라니 내 아이의 축구 실력은 꽤 있어 보인다. 하지만 지난 3월만 해도 공부가 아닌 축구로 나를 잠 못 들게 만든 아이였다.
“엄마, 난 축구를 못하는 아이가 됐어. 이제 아이들하고 축구할 때 헛발질도 해. 헛발질은 정말 최악이야. 달리기가 너무 느려서 어느새 따라잡히고 키 크고 덩치 큰 애들이 옆에 붙어서 수비하면 무섭기도 해. 아마 우리 반 주전에 못 들어갈 거야. 근데 축구 시합에 너무 나가고 싶어. 어떻게 하면 축구를 잘할 수 있을까?”
3월 초에 아이가 했던 말이다. 난 아이가 한 말의 의미를 잘 안다. 초등학교 때는 보통 정도는 하던 운동이었다. 그런데 학년이 올라가면서 또래 친구들보다 체격이 작고 왜소해지면서 나는 아이가 운동보다는 그 시간에 공부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한두 번 말하다 말겠지 했다. 하지만 밤잠을 안 자며 고민하는 아들의 모습에 나도 애가 탔다. ‘지금 와서 어쩌려고. 그냥 공부에나 신경 쓰지. 운동은 타고나는 건데.’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 아들의 고민이 멈추기만을 기다렸다. 내 바람과는 다르게 아들의 고민과 노력은 하루 이틀에 끝나지 않았다. 3월이 지나고, 5월이 지나도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가을이 왔을 땐 비록 학교에서 하는 작은 대회에 불구하지만 아들은 원탑 자리에 서게 됐다. 친구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이 아이가 얼마나 열심히 뛰고 노력했을까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저릿저릿하다. 체격 조건까지 이겨내려고 노력하면서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으로 얼마나 그리고 또 그렸을까! 잠 못 들고 고민했던 밤들을 알기에 기특하면서도 저런 의지가 공부에서도 발휘되기를 은근 기대해보는 엄마의 욕심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근성 있는 아이, 만들어진 걸까 타고난 걸까?

지치지 않고 끝까지 해보려는 근성을 가진 아이. 참 신기하기도 하고 나를 닮지 않았음에 한편으론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한다. 내 아이의 이 끈기는 타고난 걸까, 만들어진 걸까.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나를 닮지 않기를 참 간절히도 바랐던 것 같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던 나는 언제나 힘들면 그만두는 아이였다. 친정어머니는 나를 그렇게 키우셨다. 힘들면 그만하라고, 괜찮다고. 몸이 약한 자식에 대한 최선의 양육 방법이었겠지만 나는 늘 쉽게 그만두고 포기했다. 인간에게 환경은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자라는 과정에서의 환경은 말할 것도 없다. 아이의 단점을 보완하기도 하고 그 단점을 더욱 강화시켜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도 다른 환경에서 자라면 그 성향과 기질이 다르게 나타난다고 하지 않나. 친정어머니께는 좀 죄송하지만 내가 자란 환경은 단점을 더욱 단점으로 만들어버린 경우가 아닌가 싶다. 슬프게도.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난 아이에게는 정말 최선을 다하고 싶었고, 솔직히 내 아이가 영재가 아닐까 하는 누구나 해보는 막연한 기대를 하기도 했다. 세 돌이 됐을 때는 살짝 한글을 들이밀기도 하고, 숫자를 가르쳐보기도 했다. 너무 빠른 시도였나 위로도 해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결과는 너무나 평범했다.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자니 속은 좀 쓰렸지만 방법은 노력밖에 없었다. 다섯 살이 지날 무렵 한 줄짜리 영어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20권쯤 되는 책을 좋지도 않은 발음으로 읽어주고 또 읽어줬다. 10분이든 20분이든 하루도 쉬지 않았다.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 덕에 우린 여행 가방을 참 자주도 싸야 했지만 아이의 영어책은 빠진 적이 없다. 놀러 가서도 잠들기 전 아들과 난 영어책 읽기를 멈추지 않았다. 한 줄짜리 영어책이 두 줄이 되고 짧은 스토리로 발전하고 초등 고학년 때 ‘해리포터’까지 계속되었다. 정말 하루도 빠뜨리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다. 특히나 쉽게 그만두는 나의 성향상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몸이 무겁고 눈꺼풀이 내려앉고 진짜 읽기 싫은 날도 예외는 없었다. 어찌 보면 나와의 싸움 같다고 느껴지는 순간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아들은 지금 영어를 곧잘 한다. 학교 시험이 좀 어려워 100점이 전교에서 몇 명밖에 나오지 않을 때도 그 명단에 언제나 이름을 올렸고 담임 선생님께서 외고를 권하셨을 때는 내심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언어 감각이 있나 기대도 해보았지만 그저 끈기 있는 노력이 있었을 뿐이다. 영어가 편한 과목이라 생각하고 자신감을 가진 모습을 보면 어릴 적 나의 노력이 헛되지만은 않은 듯해 위로받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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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심어준 성실함의 씨앗

아이를 키우면서 좋은 일만 바라서는 안 되는 게 부모 자리인가 싶을 때도 참으로 많았다. 어릴 적은 기가 약한 내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치이지나 않나 전전긍긍했고, 결코 비껴갈 수 없다는 사춘기에 접어들어서는 작은 신장에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위로하고 다독이며 희망적인 말들로 시간들을 보냈다. 그 사이 나는 지나가는 남자아이들만 보면 ‘저 아이는 도대체 키가 몇일까’라는 생각으로 정수리만 쳐다보는 게 습관처럼 되기도 했다. 걱정 뒤엔 안도, 안도 뒤엔 불안, 또다시 초조함과 감사함이 뒤죽박죽 섞여 지나가고 있던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수학 학원을 다녀온 아이는 기운이 없었다.
“엄마, 난 바보인가 봐.”
자기는 고민해도 답이 안 나오고 선생님은 자꾸 더 생각하라고 해서 괴로운데 정말 똑똑한 한 친구는 너무나 편안하게 고난이도 수학 문제를 술술 푼다는 것이었다. 난 어떤 위로의 말도 해줄 수 없었고 그저 ‘나 때문인가’ 싶은 자책감마저 들어 한동안 침묵만 흘렀다.
“넌 뭐든지 끝까지 해낼 수 있는 강인함이 있잖니. 엄마가 봤을 때 너는 하고자 하면 기필코 하는 아이였어. 넌 할 수 있어.”
한참을 고민하고 해준 말이었고, 진심이었다.
내 인생에서 아이에게만큼은 게으르지 않으려고 나름 노력했던 것 같다. 그 중 하나는 아이와 관련된 일들에 대한 성실함이었고 내가 심어준 작은 성실함의 씨앗이 아이의 생활 속에서 어느 날은 끈질긴 노련함으로, 어느 날은 포기하지 않는 의지력으로 보여지는 순간들이 짧게나마 있었다. 사춘기의 중턱에 서 있는 아이와 감정적으로 대립하는 순간이 오면 ‘네 인생이지 내 인생이냐’ 하며 내 특유의 기질이 올라오곤 한다. 게다가 나는 갱년기라는 나를 정당화시킬 명분도 있다. 하지만 이제 어느덧 아이가 나를 끌고 가는 시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아이들은 성장 속에 놓여 있다. 아장아장 걷는 너무 귀여운 순간부터 부모와 자신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사춘기를 거쳐 성장과 성숙을 이뤄나간다. 그 과정 속에서 아이에게 맞는 작은 씨앗을 심어주고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아름다움을 보이기까지 지켜보고 응원해주는 것이 부모의 몫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은주는 잡지 및 사보에 글을 기고하는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다 결혼과 출산을 거치면서 그만두었다. 봉사는 아이 성장의 밑거름이라는 마음으로 6년 내내 녹색어머니회와 학부모회에서 활동했으며 지금도 성당 자모회에서 봉사중이다. 이제는 조금 더 성숙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또 어느 누군가는 공감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