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몰입은 아름다운 방황을 거쳐 시작된다

아이의 몰입은
아름다운 방황을 거쳐 시작된다

글. 김수영 (프리랜스 작가) | 일러스트. 김지영 | 2019년 8호

2019. 08. 28 301

서툴더라도 여러 방면에 도전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진짜 좋아하는 1을 찾는 과정은 그밖에 다른 99를 제외해가는 과정이다. 어쩌면 ‘아름다운 방황’이라고 해도 좋겠다. 이윽고 길이 분명해진다면 무섭게 집중해서 뛰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때 부모의 칭찬과 격려는 몰입을 더 가속시킨다.

“엄마, 셔틀버스를 놓쳤어요.”
“어쩌다가 또···?”
“종이접기 책을 조금만 보려고 했는데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지 몰랐어요.”
큰애는 유아 수영 강습을 다니던 청소년수련관에서 돌아오는 셔틀버스를 매번 놓치곤 했다. 친구들은 제시간에 셔틀버스를 타고 아파트단지까지 잘 왔는데 우리 아이는 매번 휴게실에 놓인 종이접기 책에 몰입해 친구들이 간 줄도 몰랐다. 타이르기도 하고 야단도 쳐봤지만, 매번 셔틀버스를 놓치고 큰길을 여러 번 건너 위험하게 걸어오는 아이가 참 답답하게 느껴졌다. 책을 좋아하던 아이는 동사무소 무료 대여 문고에 가서도 좋아하는 책만 한아름 빌려오곤 했다.
큰애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드디어 집 앞에 큰 도서관이 있는 지금의 집으로 이사했다. 여섯 살 터울의 형제에게 많은 것을 직접 가르쳐주고 싶은 의욕이 활활 타올랐던 때였다. 큰애가 등교하고 나면 작은애를 데리고 도서관 어린이열람실로 향했다. “오늘도 책 읽고 맛있는 간식 먹자”라고 작은애를 꾀어 책을 읽어주고는 큰애 하교 후에 읽힐 책 여러 권을 빌려 돌아오곤 했다.
큰아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문과 적성이지만) 당시 과학 분야의 책을 주로 읽고 전래동화는 싫어라 하며 읽지 않았다. 영어 독해력을 늘린답시고 영어 동화책을 같이 읽으며 해석해주었는데 그 시간만 되면 연거푸 하품만 하곤 했다. 그래도 엄마로서 뜻을 굽히지 않고 열심히 책을 빌려다 읽혔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이들이 무심히 “○○가 뭐야?”라며 작은 호기심만 비쳐도 기억해두었다가 관련 책을 찾아 읽힌 열혈 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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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스스로 동기가 있어야 몰입한다

돌이켜보면 섣불리 책을 만능열쇠로 생각했던 것 같다. 두 아들이 아기 때부터 육아 서적을 많이 참고했다. 내가 마음먹은 대로 아이의 진로나 교육의 방향성이 어느 정도 결정되리라 생각했다. (작은애한테는 위인전을 주로 읽혔으니 얼마나 노골적인가) 아이들이 원하기보다는 부모가 원하는 책 읽기였으니 나중에 흥미를 잃었던 게 아닌가 싶다. 지금에 와서 변명하자면 두 아이 모두 가장 집중하는 모습을 보일 때는 놀 때밖에 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방과 후 시간이 비교적 넉넉했던 우리 애들은 집에다 가방만 던져놓고는 운동장에서 주로 축구나 피구를 하며 해질녘까지 놀다 들어왔다. 어쩌다 집에 있을 때도 레고 조립이나 게임에만 열중했다. ‘친구들이 많은 것은 잘 자라고 있다는 증거’라는 전문가의 말에도 불구하고 부모로서는 어쩐지 불안하게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런데 큰애가 고학년이 되고 사춘기에 접어들자 더이상 부모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 공부가 재미없어요.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대학은 꼭 가야 하나요? 고등학교만 나오면 안 돼요?”라고 당황스러운 질문을 던져왔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가 사회생활을 겪어보니···”,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하고 이런저런 답변을 해주었지만 아이는 수긍하지 않았다. 학교 공부나 책은 멀리하고 힙합 음악과 인터넷 게임에만 빠져들었다. 힙합 작사가가 꿈이라면서 공책에 가사를 끄적거리기도 했다. 그 무렵 나는 속상한 마음을 풀 길이 없어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차마 말할 수 없는 속마음, 고민들을 일기장에 쏟아부었다. 그러다 문득 아이를 내 인생과 결부시키고 있구나 하는 반성이 들었다.

방황이 있어야 좋아하는 것을 찾게 된다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믿고 기다려보자고 마음먹었다. 그 무렵 신문에 난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의 인터뷰가 내 마음을 안정시킨 등대처럼 스크랩되어 있다.
“화려한 나방이 독소가 있다는 것을 새들도 안다. 갓 어른이 된 새는 일단 먹어보고 게워낸다. 그 후에는 독소가 없는 나비도 안 건드린다. 아이들은 아픔과 게워내는 과정을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 방황할 때 막지 말고 따뜻하게 방목해달라.”
최 교수의 말처럼 중학교 시절 내내 빈둥거리는 것처럼 보였던 큰애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달라졌다. 일단 싫다던 공부를 해야겠다고 스스로 마음을 먹더니 집중을 위해 머리를 짧게 삭발하고 핸드폰도 인터넷이 되지 않는 기종으로 바꿨다. 나는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생각하다가 ‘앞서 나아가지 말고 아이의 한 발짝 뒤에서 매니저 역할을 하자’라고 마음먹었다. 아이가 요청할 때만 학원을 수강할 수 있게 해주고 ‘그만 다니겠다’라고 하면 아이의 결정을 믿고 언제든 그만두게 했다. 불안해할 때는 “너는 충분히 혼자서도 공부할 수 있어”라고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진로를 결정하기 전에는 진로나 직업에 관한 신문기사를 오려서 책상 위에 놓아주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경영학을 공부하겠다던 아이는 2학년 중반에 가서 갑자기 직업군인이 되겠다고 진로를 바꿨다. 어렸을 때 큰애는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새로울 것도 없는 전시품들을 보고 또 보고 집중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사관학교에 진학하기로 결심한 후에는 학과시험이나 체력시험 준비도 혼자서 계획하여 실행해나갔다. 공부에도 흥미를 붙여 성적이 오르고 멀리하던 책도 좋아하게 됐다. 가끔은 자신이 읽은 책을 설명해주고, 엄마도 한번 읽어보라고 권해서 흐뭇했다. 운도 따랐고 열심히 한 덕에 시험에 합격해 현재는 육군사관학교 3학년 생도로 재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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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캠프 같은 부모라면 좋겠다

지금 중학교 3학년인 작은애는 큰애와는 전혀 다른 인격체임을 여러 번 깨닫고 있다. 즉 큰애를 키우면서 썼던 방법이 작은애한테는 통하지 않는다. 가끔 옛날에 써놓았던 일기를 들춰보면 ‘큰아이 키울 때도 이렇게 힘들었는데 지금은 다 잊혀졌으니 둘째도 무사히 잘 커나갈 거야’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칭찬에 인색하지 않은 부모가 되도록 노력하자고 다짐하게 된다. 아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은 후에는 “널 믿어”, “진짜 잘 될 거야” 같은 부모의 칭찬이 몰입할 힘을 실어준다는 것을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작은아이는 요즘 패션에 관심이 많고 남성미 넘치는 근육질 몸매를 갖고 싶어 낑낑대며 운동을 한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재능 발견과 집중력 향상을 위해 바이올린, 태권도, 주산, 속독, 독서논술 등 여러 학원에 보낸 적이 있는데 짧게는 두세 달을 넘지 못하고 금방 싫증을 내어 그만두었다. 당시에는 ‘끈기가 없나?’ 싶어 속으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지금에 와서 보면 서툴더라도 여러 방면에 도전을 해보았다는 것이 어쩌면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형처럼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기 전에는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을 포기하고 제외시키는 과정이 꼭 필요할 테니까 말이다.
최재천 교수가 ‘아름다운 방황’이라고 부른 이 과정은 모든 아이들이 필수적으로 꼭 거쳐야 하니 부모로서 너무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모도 아이와 함께 성장한다’라는 말처럼 부모도 조바심을 떨쳐내야 한다. 자신의 길을 찾으면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해서 뛰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반드시 보게 될 것이다. 그때는 칭찬과 격려로서 더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게 도와주면 좋겠다. 수많은 경쟁 속에 흔들리고 스트레스 받는 우리 아이들의 힐링캠프가 되어야겠다.

김수영은 사보 및 홍보 담당자로 10년 간 일하다가 둘째 아이를 낳으면서 프리랜스 작가로 일하고 있다. 여러 사람을 만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면 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평생교육원에서 현대한국화를 배운 지 6년째로 그림에 몰두하는 몰입의 순간이 가장 편안한 시간이라고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