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낭만은 우주 그곳에

나의 낭만은 우주 그곳에탐험가 문경수

글. 최지영 | 사진. 이서연(AZA STUDIO) | 2019년 7호

2019. 07. 25 351

2년 전 단짝과 함께 ‘효리네민박’에 슬쩍 얼굴을 비치고는 탐험한다며 새벽같이 나갔다가
저녁이면 떡볶이를 들고 나타났던 흥미로운 인물. 모닥불에 둘러앉아 용암동굴과 곶자왈을 이야기하며 우리가 미처 모르고
있던 제주의 가치에 눈 뜨게 했던 그 탐험가. 15년여 동안 호주, 뉴질랜드, 몽골, 아이슬란드 등 외국의 자연을
탐험하면서 만났던 많은 세계적 학자들은 그에게 되물었다. 왜 제주도에 가지 않느냐고.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는
그의 발길은 지금 제주의 과학과 지질, 독특한 생태계와 그 속의 사람을 향해 있다.

어느 날 훅! 파고든 우주

생각해보면 어릴 때 시골 하늘의 별을 보며 가슴에 한번 품었던 우주는 사라진 게 아니었다. 일상의 궤도를 좇아 살며 잠시 잊고 있었을 뿐.
18년 전 청년 문경수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후 우리나라 아리랑 인공위성의 관제 시스템을 제작하는 한 벤처기업의 연구소에 몸담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컴퓨터공학 전공자들이 흔치 않아 졸업 후 진로를 느긋하게 선택할 수 있었음에도 그는 ‘우주’와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는 회사를 애써 찾았으며, 마침 국내에 하나뿐인 곳에서 일하던 터였다. 조금 막연하긴 해도 자신의 바람과 비슷하게 우주와 관련된 일은 하고 있지만, 자주 야근에 시달리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아리랑이 지구 궤도를 돌면서 보내온 시그널과 사진을 확인하고 있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시 우주가 가슴에 훅! 들어오더라고요!”
그 순간부터 무심히 올려다보며 푸념만 늘어놓던 보름달이 달라 보였다. 저 달은 왜 매일 모양이 바뀔까? 별이 반짝이는 원리는 도대체 뭘까? 궁금하고 답답해 《코스모스》를 읽기 시작했고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을 모아 과학 독서 모임을 시작했다. 책을 읽고 토론을 거듭하다 보니 호기심은 더욱 커져 또다시 의기투합했다. 한번 가보자!

생애 최고의 지적 유희

여섯 명으로 구성된 탐험대의 첫 탐험지는 호주였다. 언뜻 보기에 하던 일을 모두 접고 훌쩍 떠났나 싶겠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모두 직장인이라 시간이며 비용이며 그 무엇도 여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9박 10일에 일정을 맞출 것, 필요한 모든 기술을 배울 것! 자동차 고치는 법부터 지도를 읽는 독도법까지 가능한 모두 습득했다. 돌아보면 그건 평생을 좌우할 엄청난 자기 계발 과정이었다.
“일 년에 딱 한 번 하는 10일 간의 탐험은 최고의 지적 유희였어요. 알아간다는 것의 즐거움이 삶에 엄청난 자극이 됐거든요. 오로지 그것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접은 채 적금을 붓고 기술을 배우며 일 년 내내 준비한 거죠. 그때 월급의 60프로를 책 사는 데 썼어요. 그렇게 사 모은 책 1만여 권은 평생 자산이죠. 그 순수함, 작은 무모함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저는 없겠죠.”
일 년에 한 번씩 세 번의 탐험에 성공하자 냉소적인 주변의 시선들이 차츰 함께 가고 싶다는 신호로 바뀌었다. 네 번째 호주 탐험을 공개 모집하자 이틀 만에 200명이 신청했다. 공교롭게도 그 다음 주부터 사스라는 전염병이 유행해 130명이 취소했지만 남은 70명은 확고했다. 일행 중에 대전의 유명한 내과병원 원장과 가족이 있었고, 모두들 나름 여행 고수들이었기에 상황을 뉴스만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과학은 좀 더 합리적인 근거를 기반으로 판단할 수 있는 태도를 길러주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전공을 하지 않더라도, 과학에 관심이 없더라도, 무엇보다 어려서부터 과학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생사를 가르는 호주 조난 사건이 남긴 것

초등학생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70명 탐사대를 이끄는 탐험을 위해 후배와 함께 호주로 사전 답사를 갔다가 조난을 당했다. 한없이 광활한 땅 200킬로미터를 걸어 나온 끝에 원주민의 도움으로 구사일생 살아난 둘은 그 길로 예정된 4500킬로미터의 대장정에 올라야 했다. 한국에 돌아오니 온몸이 망가져 있었다. 매일 꿈속에서 고기를 먹고 있고 고양이가 울기라도 하면 딩고의 하울링이 들리고, 두 젊은이가 겪기에는 엄청난 시련이었다.
하지만 마지막이겠다 싶어 가지고 있던 카메라로 서로 영정사진을 찍어주고, ‘여기 두 명의 아시아인이 머물렀다’라는 생존 노트까지 남겼던 사람치고 그의 이후 선택은 좀 달랐다.
“그곳을 걸어나오는데 외부의 잡음은 없고 체력이 완전히 바닥나니까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더라고요. 원초적인 자연의 모습들을 너무 많이 본 거예요. 내 몸의 세포에 각인된 거죠. 문득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지구라는 행성이 더 궁금해졌어요!”
심신을 가득 채운 호기심과 새로 솟아난 질문, 그때까지의 탐험의 경험을 종합해 그는 다시 호주행을 결심했다. 본격적인 탐험을 위해! 당시 회사를 그만두고 IT 매체 기자로 일하면서 생생한 현장 중심 기사에 대한 요구도 확인했고, 자연을 바라보고 과학을 표현하는 또 다른 채널로서 탐험의 비전도 보았다.
2010년 여름 다시 찾아간 퍼스의 한 여행사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더 공부해야 했고 갈 곳은 도서관밖에 없었다. 어느덧 사서와 친해지면서 그의 관심사가 전해지자, 어느 날 사서는 그가 꼭 봐야 한다며 책 한 권을 소개해주었다.

NASA 우주생물학 탐사 속으로

“제가 관심이 많았던 외계 생명체와 관련된 책인데, 저자를 보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어요. 그 동안 본 수백 편의 과학 다큐멘터리에서 지구 대기의 산소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설명할 때면 늘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멋지게 소개하던 마틴 반 크라넨동크 박사였어요. 초기 지구 대기의 산소를 만들어낸 미생물인 시아노박테리아가 기생하는 암석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NASA와 함께 우주생물학 탐사를 이끌고 있었어요.”
박사가 마침 퍼스에 파견 나와 있었다. 그는 그날 밤 바로 번역기까지 돌려가며 인터뷰하고 싶다는 이메일을 보냈고 일주일 뒤에 서호주지질조사국 연구실에서 보자는 답장을 받았다. 프린트해둔 답장을 수시로 꺼내보면서, 혹시라도 낯선 길을 잘못 들어 박사의 귀한 시간을 망칠까 염려된 그는 매일 숙소에서 연구소까지 약속 시간에 맞춰 찾아가는 연습까지 했다. 영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장면처럼 마틴 박사를 만나고 연구소 내부 투어까지 마치고 나오는 길에, 박사가 제안했다.
“보름 뒤에 각 대륙을 대표하는 우주생물학자 23명이 모여 컨퍼런스를 하고 탐사를 떠납니다. 같이 가지 않을래요?”
무엇을 망설인단 말인가.
“SURE!”

서브이미지

“How amazing!”, “How beautiful!”

2010년 9월 5일, NASA 우주생물학자들과 함께 시작한 보름 간의 탐사 여행. 우주생물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성지와도 같은 서호주의 샤크 만을 시작으로 지구 생명체의 기원 그리고 화성 탐사와 연계된 암석과 지질 환경에 관한 연구가 진행될 터였다. 학자들 사이에서 첫날에는 그는 경계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캠핑 등 몸으로 할 수 모든 일로 자기 존재를 드러내며 그들의 마음을 열었다.
그 후에도 2년에 한 번씩 탐험에 참석했다. 문경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이자 저널리스트로서 탐험 내용을 기록, 정리하는 역할이 분명했고, 상호 협업 포인트가 많았다(그가 만든 영상들이 NASA 우주생물학연구소 사이트에도 탑재돼 있다). 이때 이야기를 그는 《35억 년 전 세상 그대로》속에 고스란히 담았다.
세계의 과학자들과 함께 탐험하면서 그가 얻은 값진 것이라면, 자연을 마주하는 태도였다.
“탐사 사이트에 도착하면 다들 화석 샘플을 채취하고 분석하면서 대개 부산하게 뭔가 할 줄 알았어요. 샤크 베이에 도착했는데 모두들 ‘How amazing!’, ‘How beautiful!’을 연발하면서 계속 산책하더라고요. 제가 연구는 안 하냐고 물었더니 ‘이게 연구하는 거잖아’라고 했어요. 처음엔 어리둥절했는데 차츰 알겠더라고요. 과학이나 탐험이라는 게 결국 내가 연구하고 관찰하는 대상에 대한 애정만큼 깊어지는 게 아닌가 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또 하와이로 화산 탐험을 갔을 때 만난 은퇴한 노 화산학자는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이 제주도에 가보는 것이라고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하와이와 제주도는 방패화산으로 둘이 형제섬이고, 제주에는 화산 지역에서만 자생하는 독특한 생태계인 곶자왈이 있다는 거예요. 또 그런 독특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제주 사람들의 삶의 이면을 보고 싶다고 했어요. 순간 쾅 얻어맞은것 같았어요.”
오랫 동안 과학 탐사를 해온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한 제주의 가치를 제주에 한 번도 와보지 않은 외국 과학자에게서 들었던 것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관점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거친 탐험의 길, 그건 내 삶과의 로맨스

호주만 해도 80번쯤 다녀온 탐험가 문경수 대장. 한 번의 탐사를 위해 5개월은 철저히 공부하며 준비하는 그에게 과학, 탐험 그리고 우주는 한 마디로 로맨스다. 위험하고 거칠고 때론 지저분할지라도. 이 로맨스를 그는 예술적 감수성과 함께 일상에서 향유하고 싶다.
“알래스카에서는 오로라를 관측할 때도 방사능 측정 센서가 달린 로켓을 쏘아올려서, 오로라 내부의 입자들이 반응하는 모습을 대규모 연주홀에서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동시에 감상하지요.”
문경수 대장도 아들에게 영원한 영웅이고 싶은 아버지일 것이다. 어느덧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아들을 포함해 모든 우리 아이들이 지평선에서 해가 뜨고 달이 뜨고 은하수가 올라오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기를, 그리하여 대자연이 주는 경외심을 몸으로 느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먼 외국 땅만이 아니라 제주에서 그리고 가까운 우리 땅 곳곳에서도 얼마든지 취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싶다.
2년 전부터 일주일에 이삼 일은 제주에 머물며 탐사를 하고 여러 분야의 제주 전문가들과 다양한 협업을 진행중인 그는 우선, 누구나 친근하게 제주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문경수의 제주 과학 탐험》을 펴내기도 했다.
국내 1호 탐험가라는 타이틀을 흔쾌히 받아들이며 바쁘게 호출되고 있는 문경수 대장. 탐험이라는 매력적인 경험을 자원으로 삼아 그것을 기록하고 전파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이자 저널리스트로, IT 디바이스의 콘텐츠를 개발하는 사업가로, 지적이고 능동적인 탐사여행 상품 기획자로 왕성히 활동하는 멀티 유저. 혹시 곧 제주도로 여행할 생각이라면 문경수 대장의 안내에 따라 새로운 눈으로 과학 탐험 일정을 세워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