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자꾸자꾸 말하고 싶게 하려면

아이가 자꾸자꾸
말하고 싶게 하려면언어 발달의 가장 큰 동기는 부모의 리액션

글. 김지호(언어재활사) | 일러스트. 김지영 | 2019년 6호

2019. 06. 26 271

직업이 언어치료사이다 보니 여기저기서 질문을 많이 받는다.
“어떻게 하면 애가 말을 잘할까요?”, “아이의 언어 발달을 돕는 특별한 방법이 있나요?” 등등.
간혹 부모님 스스로 답을 알고 있는 때도 많다. 관련 지식도 폭넓고 상세해서 언어치료사인 나도 깜짝 놀랄 정도다.
하지만 부모의 지식이 아이의 언어 발달과 직결되지는 않는 것 같다. 나도 내 아이가 어릴 때 바빠서,
또는 미처 몰라서 저지른 안타까운 실수들이 많다.
거리낌 없이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는 제일 좋은 동기 부여 방법은 부모의 적절한 리액션이 아닐까.

아이의 언어 발달에 관심이 많고 지식이 풍부한 부모라도 일상에서 아이의 표현력을 키울 기회를 놓칠 때가 많은 것 같다. 그럴 때면 언어치료사 이전에 한 아이의 아빠로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 시절 나는 아이와의 소통에 충실했나? 아이에게 충분히 말할 기회를 주었나? 아이의 마음을 잘 살폈나? 부모와의 대화가 즐거운 경험일 수 있게끔 노력했나?
잘해야 별 다섯 개 중 두 개 반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지 못하고 내 말만 강요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지.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후회가 밀려온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진실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있을 때, 아니 어릴 때 잘할 걸···.
부모도 실수한다. 몰라서, 혹은 알아도 여력이 안 돼서. 많은 부모님들의 사정도 비슷할 것 같다. 거리낌 없이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부모님들을 위해 내가 겪은 실수와 직업적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를 나누고 싶다.

때로 부모는 연극배우가 되어야

“아빠, 나 다 했어.” 뭔가를 끝낸 아이가 아빠를 찾을 때 나는 무관심한 표정으로 “그랬구나, 아유~ 잘했네. 알았으니까 이제 가서 놀아”라는 한 마디로 끝냈었다. 아이는 시무룩해서 돌아섰다. 아이가 칭찬받고 싶어 한다는 걸 알면서도 정신이 없어서, 힘들어서 아이의 말을 받아주지 못했다.
아이들은 말의 내용보다 말투, 표정, 몸짓 같은 비언어적 요소에 더 민감하다. 어른의 못마땅한 표정 하나가 아이의 의욕이나 동기를 꺾어버릴 수도 있다. 비록 연기일망정 웃으면서, 부드럽게,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정작 나는 그러지 못했다.
이럴 때 부모의 이상적인 반응은 ‘오버’한다 싶을 정도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다. 아이가 좋아하면 부모도 물개 박수를 치고 쓰러지다시피 하며 활짝 웃자. 아이가 칭찬받을 만한 일을 했으면 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가슴을 펴고 엄지를 치켜세우자. 아이가 슬픈 얘기를 하면 이맛살을 찌푸리고 손으로 눈물 줄기를 만들자. 이런 부모의 반응을 보고 싶어서 아이는 자꾸자꾸 말을 걸 게 분명하다. 때로 부모는 연극배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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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준다는 것

서너 살 무렵, 아이가 말이 한창 늘 때였다. “아빠···.” 뭔가 할 말이 있는 아이가 아빠를 부르고는 잠시 머뭇거리면 그 새를 못 참고 다그쳤다. “아, 빨리 말해. 시간 없어.”
아이의 말이 단 하나의 낱말 ‘아빠’에서 멈추었다. 게다가 그날 이후로 아이가 말을 거는 데 주저했던 것 같다. “미안, 아빠가 바빴네. 그래 하고 싶은 말이 뭐니?”라고 했으면 좀 더 대화가 길어졌을 텐데. 아쉽다. 게다가 아이의 생각을 내 멋대로 오해해서 말을 끊어버린 적도 많다. 언젠가 함께 마트에 갔을 때다. 아이가 어딘가를 손으로 가리키더니 말했다.
“아빠··· 나, 저기···.” “뭐, 저거? 탑블레이드? 사달라고? 집에 팽이가 도대체 몇 개야?” 그러자 아이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지레짐작으로 아이를 윽박지르는 대신에 “그래, 저거 탑블레이드로구나”라고 한 번 더 아이의 말을 확인했어야 했다. 그때 아이가 가리킨 것은 탑블레이드(저거)가 아니라 화장실(저기)이었다.
아이의 말을 중간에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일이 의외로 힘들다는 걸 언어치료사가 되고나서 절감했다. 실제로 많은 부모들이 아이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한다. 아이가 뭔가 잘못 말했을 때는 더욱 그렇다. 틀린 게 빤히 보이는데 어떻게 그냥 넘기느냐고 할 수도 있다. 그렇기는 하다. 하지만 즉시 고쳐줘야 할까? 다 듣고나서 해도 늦지 않다. 말하는 중간에 지적을 받으면 자신이 뭔가 잘못했다는 기분이 들 테고, 그러면 말할 기분이 안 생긴다. 게다가 어른의 높은 잣대는 아이에게 능력 밖의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내 경우 아이가 ‘라면’을 자꾸 ‘나면’이라고 발음하기에 바로 고쳐주려고 다그친 적이 있다. 그런데 나중에야 ‘ㄹ’ 발음은 다섯 살이나 되어야 명료하게 소리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 아이는 겨우 세 살이었다. 뒤늦게 어찌나 미안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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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행동이 아이에게는 ‘보상’

아이의 말을 끝까지 성공적으로 들었다면, 그 다음 할 일은 ‘행동’이다. 이는 아이에게는 일종의 ‘보상’으로서, 아이의 말에 유의미한 결과가 주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허용일 수도 있고 금지나 유예가 될 수도 있다. 영유아기 아이들의 말은 대게 무엇을 어떻게 해달라는 요구가 많다. 그 중 어떤 것이든 좋다. 다만 외면하거나 방치하지는 말자. 부모가 그러면 아이는 입을 닫는다. 그러나 이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어른들은 늘 바쁘니까.
아이가 ‘아빠, 팽이 하고 놀아’라고 요구해올 때 “엄마한테 가서 해달라고 해”라며 미룬 적이 많을 것이다. 나도 꼽을 수조차 없으니. 이처럼 아이가 자신의 의도를 말로 표현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황이 자주 되풀이되면, 아이 입장에서는 ‘말을 해봐야 소용 없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언어는 어른을 움직이는 수단이다. 이게 외면당하면 말이라는 도구 대신 떼쓰기, 일단 저지르기 등의 필살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엄마한테 해달라고 해” 대신에 “아빠가 지금은 시간이 없어. 미안해.” 혹은 “조금만 기다릴래. 하던 일 마저 끝내고 놀자”라며 상황을 전하면 어떨까. 그러면 아이는 굳이 감정적으로 행동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아빠가 약속을 지킨다면 말이다.
부모가 조금만 더 신경 쓰면 일상 속 대화에서 아이의 표현 동기를 유발하고 언어 발달을 도울 수 있다. 물론, 종일 아이랑 실랑이하다 보면 쉽지 않은 일이다. 신경 쓸 일이 많다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면 두 가지만 기억하자. 끝까지 들어주기와 행동으로 보상하기. 이것만 잘해도 아이들의 말 표현은 눈에 띄게 성장한다.

시행착오도 한 번의 진심으로 극복된다

“아빠, 용돈 좀 주세요.”
(“알았어, 가서 엄마한테 달라고 해.” 대신) “그래. 어디에 쓸 건지 말해줄 수 있니?”
“이어팟 사려구요.”
(“뭐? 유해 전자파가 얼마나 나오는데!” 대신) “그렇구나. 가격이 좀 비싸긴 하지만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하자. 하지만 전자파로 인한 부작용도 많다는데 괜찮을까?”
“이미 찾아봤어요. 다른 전자 기기도 그 정도는 나온대요. 뭐 걱정할 수준은 아니래요.”
“솔직히 말해서 나도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당장 사기에는 큰돈이니 조금 기다려줄래? 엄마랑 상의해볼게.”
“알았어요. 결정 나면 톡 주세요.”
(짜증스런 표정 대신) “그래~ 알았다.”
요즘 우리 집 대화다. 어느 틈에 고등학생이 된 아이는 다행히 자기 경험과 계획을 이야기하고 중요한 일을 상의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성장의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 흘러가지만 기회는 있다. 열 번의 시행착오도 한 번의 진심으로 극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아이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김지호는 단국대 특수교육대학원에서 언어치료를 전공하고 장애인복지관, 개인치료실 등에서 1급 언어치료사(공식 명칭은 언어재활사이다)로 일하고 있다. 15년 간 성인 및 아동의 언어 발달 지체, 말더듬 등 다양한 언어적 문제의 해결을 돕고자 노력해왔다. 글쓰기와 보드게임, 콘솔형 비디오게임을 좋아하며, 고등학생 아들과 시인인 아내와 살고 있다. 최근, 언어 발달의 결정적 시기에 아이들이 집에서 재미있게 놀면서 말을 배울 수 있는 안내서로 《말문이 터지는 언어놀이》(길벗)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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