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의 가치를 기억합니다

땀의 가치를
기억합니다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1학년 여종헌

글. 이슬비 | 사진. 현진 (AZA STUDIO) | 2019년 6호

2019. 06. 26 94

세상에는 고난이도 수학 문제를 척척 풀어내는 천재가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공부에 대한 집중력을 잃지 않는 모범생이 있다.
많은 이들은 그런 천재나 모범생이 가장 높은 입시의 벽을 넘는다고 생각한다. 여종헌 군은 천재도 모범생도 아니라고 한다.
이해가 안 되면 이해할 때까지 반복하고, 잊으면 다시 익히기를 포기하지 않는 수험생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누구나 선망하는 대학교의 신입생으로서 많은 것들을 새로 경험하느라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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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문을 통과한다는 것

매일 아침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앞에는 학교 정문까지 데려다줄 버스를 기다리는 학생들의 줄이 길게 늘어선다. 정문에서 단과대 건물까지 이동하는 거리도 짧지 않다. 아침 아홉 시 강의가 있는 날에는 새벽부터 등교를 서두르느라 고등학생 때와 다를 바 없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래도 서울대학교 머리글자 모양을 본뜬 정문의 조형물을 마주할 때면 꿈꾸던 대학생이 되었음을 실감한다.
이 조형물은 열쇠의 형상이기도 하다. 진리를 찾아가는 열쇠이자 꿈을 향한 열쇠이다. 서울대학교 정문에 도착했다는 것만으로 인생의 중요한 목표를 이룬 듯 안심할 수는 없다. 올해 전기정보공학부 신입생이 된 종헌 군은 수험생 때와는 또 다른 긴장감으로 첫 학기를 보내고 있다.
학기 초에는 대학에서의 여러 가지 일들을 경험하느라 바빴다. 미팅, 동아리 활동, 친구들을 만나고 좋아하는 게임을 하고, 스스로 용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과외 아르바이트까지 할 일이 너무 많았다. 힘들다고 전해 들었던 공대 공부는 역시 만만치가 않다. 중간고사 결과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기말고사 때 만회해야 한다는 부담도 크다.
“칵테일 동아리와 보드게임 동아리에 가입했는데 거의 활동을 못하고 있어요. 첫 학기부터 실험보고서를 쓰는 데 시간이 많이 드는 과목을 두 개나 신청한 것도 무리였어요. 대학생활의 모든 게 처음이니까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하고 싶었던 일이든 전공 공부든 하나씩 해나가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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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와 휴식의 균형 찾기

많은 사람들이 서울대생에게 영재 혹은 모범생의 이미지를 가질 것 같다. 종헌 군은 자신이 특별한 영재도, 그렇다고 항상 공부만 하던 모범생도 아니라고 했다. 자율학습 시간에 PC방에서 놀았던 적도 있고 시험 기간이 코앞에 닥쳐서 부랴부랴 공부하는 것도 보통의 학생들과 다르지 않았다. 고3 때 바짝 공부했어도 학생부종합전형으로는 원하는 대학에 지원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정시를 준비했지만 수능시험 결과가 좋지 않아 결국 재수를 선택했다.
“재수할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불안감이었어요. 친구들은 모두 대학생이 됐는데 나만 또 실패하면 어쩌나 싶었고 절박했죠. 하지만 불안감도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받아들이자, 그 감정에 빠지지 말고 꾸준히 공부하자고 생각했어요.”
공부가 잘 되는 날도 있고 힘든 날도 있었다. 이과였지만 수학은 쉽지 않았고 공부해도 틀리는 문제가 많았다. 그러나 모른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회피하지 않았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풀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천천히 실력을 쌓아나갔다. 잘하든 못하든 시간을 들여 꾸준히 노력하는 것은 오랜 기간 재능스스로학습으로 공부하면서 조금씩 갖게 된 습관이다. 재능스스로학습은 공부를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해주었다.
“사람이 공부만 할 수는 없잖아요. 공부할 때와 쉬거나 놀 때의 균형이 필요한데 저는 재능스스로학습을 오래 해온 것이 스스로 그 균형을 찾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적당히 놀았다 싶으면 다시 공부하러 책상으로 돌아가곤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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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질문하고 생각하는 습관

처음에 《생각하는피자》로 시작한 재능스스로학습은 공부가 무엇인지도 모를 때 공부의 재미에 눈뜬 계기가 되었다. 눈길을 잡는 그림, 흥미로운 구성 덕분에 어려울 법한 주제도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었다. 교재에 짧게 실린 만화의 다음 내용이 궁금해 재능선생님이 오시는 날을 기다린 적도 많다. 그렇게 재미를 느꼈기에 중학생 때까지 자연스럽게 수학, 국어, 영어, 한자, 중국어 등 많은 과목을 공부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도 수학은 2학년 때까지, 영어는 내신 문법 때문에 1년 정도 학원을 다니기도 했지만 종헌 군은 혼자 공부하는 쪽이 더 잘 맞았던 것 같다고 느낀다. 덕분에 재수 기간에도 하루, 일주일, 월 단위로 스스로 학습 계획을 세워 혼자 공부할 수 있었다. 자신에게 부족한 점을 찾아서 채우고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은 대학생이 된 지금도 공부의 가장 중요한 동기이다.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많았던 종헌 군은 또래 친구들보다는 책과 함께 지낸 시간이 훨씬 많았다고 한다. 관심 있는 주제가 생기면 연관된 책들을 찾아 읽고 마음에 드는 책들은 백 번도 넘게 반복해서 읽었다고 한다. 독서를 통해 쌓인 배경지식과 사고를 구조화하는 습관은 국어와 탐구 과목을 수월하게 공부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 아울러 스스로학습교재 또한 스스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또 다른 궁금증으로 확장해나가는 습관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지금 당장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도 노력하면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길러졌다.

“저는 호기심이 많은 만큼 질문도 무척 많은 아이였는데 엄마와 할머니께서 제 모든 질문을 들어주셨던 걸로 기억해요. 어렵고 애매한 질문도 책이나 자료를 찾아보면서 답변해주려고 애쓰셨거든요. 특히 스스로학습교재를 보면 엄마와 자녀가 대화할 소재가 풍부하잖아요. 엄마는 질문에 답을 해주시기도 했지만 반대로 저한테 질문을 던지면서 제가 생각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게 해주셨어요.”
부모님은 종헌 군이 공부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스스로 필요한 것을 결정하고 책임지도록 가르치셨다. 이를 테면 그토록 갖고 싶었던 컴퓨터도 자기 힘으로 장만해야 했다. 그 덕분에 중학교 입학 무렵에 부품을 사서 아빠와 함께 조립한 컴퓨터를 지금까지도 소중하게 사용하는 중이다. 넉넉하지 않은 용돈을 아껴 간절히 원했던 컴퓨터를 마련한 기억은 컴퓨터공학 분야의 전문가를 꿈꾸는 지금 더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종헌 군은 오랜 시간에 걸쳐 힘들게 얻어지는 것의 가치를 되새기며 아침마다 진리의 열쇠를 향한 발걸음을 재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