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과학의 시선이 필요한 이유

교육에 과학의
시선이 필요한 이유 물리학자 김상욱

글. 김문영 | 사진. 이서연(AZA STUDIO) | 2019년 4호

2019. 04. 26 141

양자역학 강의로 대중을 사로잡고, 텔레비전 예능 토크 프로그램 <알쓸신잡> 최고의 멤버 조합이라는 평가의 주역이 된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는 과학적 사고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과학의 시선으로 보면 인간은 우주 속 유한한 존재, 호모 사피엔스이다. 두 자녀의 아버지이기도 한 이 물리학자는 우주의 신비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자녀 교육도 인간에 대한 과학적 이해에서 실마리를 얻는다.

과학자의 독특한 존재감

동료 출연자들의 말을 경청하다 조용히 할 말을 보태는 모습, 잘 아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달라지던 눈빛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알쓸신잡>은 막을 내렸지만 김상욱 교수(경희대 물리학과)가 함께한 세 번째 시즌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펼쳐 보이는 잡학다식의 향연은 ‘쓸 데’를 떠나 유쾌했고 익숙한 도시의 풍경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역사와 문화가 강조되는 도시 기행을 통해 물리학자가 들려주던 과학 이야기도 신선했다.
김상욱 교수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경희대학교 이과대학 건물 연구실에는 몇 년 전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사온 명화 한 점이 걸려 있다. 그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최근 한 일간지에 예술 관련 칼럼을 연재하면서 더 다양한 작품을 찾아보고 있다. 과학자가 과학을 넘어 세상 이야기를 하는 것은 더 이상 낯설거나 이상한 일이 아니다. 대중적인 과학 콘텐츠가 두드러지게 늘고 과학자가 인기를 얻는 현상의 기저에는 복잡한 인간사를 과학으로 이해하고 해결하려는 태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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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김상욱 교수는 과학이 다양한 사회 현상에 대해 합리적 사고의 틀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에 불미스런 일들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그와 관련된 음모론이 난무한다면 과학적 사고가 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어떤 사안을 과학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근거를 토대로 의심하고 질문하는 태도이다. 조직에 문제가 있다면 그 실체를 확인해보는 게 합리적이다. 권위나 관습을 앞세워 질문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비합리적이며 문제를 곪게 만들 뿐이다.
“지난 수십 년 간 과학은 많이 진보했고 그만큼 인간 사회도 발전해왔어요. 과학 기술의 진보가 옳고 그른지는 별개로 어떤 변화를 이끄는 데는 효과적이라는 뜻이에요.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더 민주적인 사회가 되려면 과학적 사고가 확산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언제든 합리적 의심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해요.”
그렇다고 해서 과학이 선악이나 도덕을 설명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김상욱 교수는 과학적 사고가 인간 중심의 관점에 치우치는 것을 경계한다. 과학은 오직 물질적 증거, 실험으로 입증한 데이터로 판단하고 결론을 내린다. 인간의 관점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이해하는 것이 과학이라는 의미이다.

사자가 새끼를 교육하는 목적

과학의 시선으로 보면 인간은 동물의 한 갈래인 호모 사피엔스이다. 김상욱 교수는 이러한 이해를 토대로 교육과 사회의 문제도 고민해 왔다. 이전에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로 재직할 때는 영재교육 담당 교사들과 교육의 목적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를 갖곤 했다.
“우리는 왜 교육을 할까요?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를 행복한 아이로 키우고 싶어서라고 대답하시는데, 그 행복의 실체를 누가 알 수 있을까요? 부모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대로 자녀가 행복할 거라 믿고 교육을 시키지만 과연 자녀가 생각하는 행복도 부모의 믿음과 같을까요? 여기서부터 오류가 발생하는 거예요.”
자연계의 동물도 교육을 한다. 사자나 독수리가 새끼를 가르치는 목적은 명확하다. 이 동물들은 새끼가 혼자서도 생존할 수 있도록 사냥하는 법, 나는 법을 가르친다. 생존 능력을 갖추면 어미의 품에서 새끼를 떠나보내는 것은 법칙과도 같다. 그 때가 되면 부모의 안락한 품을 떠나기 싫어하는 새끼들도 많다. 김상욱 교수는 이러한 동물의 생태를 보면서 인간의 교육도 자녀가 독립할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왔다.

아이 스스로 행복을 찾아낼 시간

과학자를 꿈꾸던 학창 시절로 돌아가면 폭압적인 사회 분위기가 떠오른다. 1980년대는 그런 시대였고 그 때의 자신은 지금 생각해도 ‘꽉 막힌 모범생’이었다. 수학을 좋아하고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이과로 진학하는 게 당연했다. 다만 그 때도 독립을 강조했던 아버지의 교육 철학은 김상욱 교수가 스스로 해야 할 공부를 선택하고 살아갈 길을 찾을 수 있게 한 힘이었다.
십대의 자녀와 갈등을 빚는 부모는 자녀가 혹은 부모 자신이 뭔가를 잘못해서 그렇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김상욱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그 시기 부모와 자녀의 갈등은 13세를 전후해 독립해야 할 인간이 여전히 부모 슬하에 있음으로 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마찰이다. 다만 지금은 13년 정도 교육 받는 것으로는 생존 능력을 갖출 수 없는 시대이기 때문에 그 갈등을 슬기롭게 풀어나가려면 있는 그대로 상대를 인정하고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자녀가 독립할 능력을 갖추기를 원한다면 혼자 있을 시간을 갖도록 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어려도 혼자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보낼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런 시간에 아이는 자유롭게 상상하고 사색하면서,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발견하게 될 테니까요.”
김상욱 교수는 일정표에 할 일과 약속 목록을 빼곡하게 적어둬야 하는 지금도, 아무 계획 없이 빈 칸으로 남겨두는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 그런 시간에는 문득 생각난 전시를 보러가기도 하고 멍하니 앉아 빈둥거리거나 쓸 데 없는 사색에 잠기기도 한다. 그저 흘려보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그 시간은 자신을 새롭게 채우고 복잡한 인간과 세상을 다시 들여다보는 양자물리학자의 출발점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