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혼자 800개 끝냈어요

엄마,
나 혼자 800개 끝냈어요

글. 이은경(작가) | 일러스트. 김지영 | 2019년 4호

2019. 04. 26 112

남자 아이들의 살은 다 키로 간다는 말은 진정 옛말인가 보다.
통통하니 귀엽다고 배를 쿡쿡 찌르고 엉덩이를 두드려가며 판다처럼 굴려 키웠는데, 그러다 보면 어느새 살이 훌쩍 키로 갈 거라 기대했는데, 중등도비만이라는 낯선 경고 앞에 우리 가족의 일상은 좀 달라졌다. 당장 10킬로그램을 감량해야 하는 상황에서 함께 했던 힘겨운 도전과 새로운 경험 속에 아이는 뜻밖의 특기와 성취감까지 모두 얻었다. 물론 아이의 계속될 도전 앞에 엄마는 설렘으로 바쁘다.

우리, 할 수 있을까?

“당장 한 달 안에 10킬로를 빼야 합니다.”
저체중아로 태어나 어지간히도 속을 태웠던 안쓰럽고 작은 아가가 어느새 형과 엄마의 체중을 가뿐히 뛰어넘어 버렸다. 간 지방이 과다한 탓에 여러 가지 합병증이 예상되며 감량이 시급하단다. 한참 식욕이 폭발하고 있는 열 살 남자아이가 10킬로그램의 체중 감량을 해야만 한단다!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면 그것으로 그저 사랑스러울 나이에 어른도 틀림없이 실패하고야 마는 10킬로그램을 감량하란다. 통통하니 귀엽다고 배를 쿡쿡 찌르고 엉덩이를 두드려가며 판다처럼 굴려 키웠는데, 그러다 보면 어느새 살이 빠지고 훌쩍 키가 자랄 것을 기대했는데 중등도비만이라는 낯선 경고 앞에 가족의 일상은 좀 달라졌다. 이제, 힘겨운 도전을 시작해야만 했다. 우리,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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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저 너무 힘들어요

체중 감량이라는 숙제 앞에 무겁고 심각한 표정으로 아이와 마주 앉았다.
“규민아, 어렵겠지만 살을 빼야 한대. 그래야 규민이가 더 건강하게 씩씩하게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 수 있대. 어떤 운동을 시작해볼까, 태권도? 줄넘기? 특공무술? 축구? 농구?”
“…휴우, 줄넘기 해볼게요, 엄마가 도와주세요.”
그렇게 아들의 줄넘기가 시작됐다. 나를 닮아 운동신경 없는 아이가 매일 수백 개의 줄넘기를 해야 했다. 운동을 잘하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우리같이 툭하면 줄에 걸리는 몸치들은 같은 개수를 넘는 데에도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짜증이 슬금슬금 늘어간다. 시작 체중 56킬로그램, 우리가 함께 정한 2주 후의 목표 체중은 52킬로그램.
“엄마, 저 너무 힘들어요.”
시작부터 덜컹거렸고 아이는 곧 울음을 터뜨렸다. 어린 시절 천식 때문에 운동을 즐기지 않았던 탓일까, 쉽게도 숨이 차올라 거칠게 호흡을 추스르는 막내의 모습에 ‘그렇게 힘들면 그만해도 괜찮아’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열 개도 못 넘겨 발에 걸려버리고 그때마다 주저앉아 짜증을 부리며 눈물을 보이기도 하는 아이의 모습에, 도대체 어쩌자고 식욕 왕성한 유전자를 물려줘 이렇게 애를 힘들게 하냐며 죄 없는 남편을 원망하기도 했다.
“규민아, 규민이가 열심히 해서 목표를 이루면 엄마도 상을 주고 싶어, 소원 있으면 말해볼래?”
“저, 살 빼고 건강해지면 회전 초밥 먹으러 가고 싶어요.”
식이조절을 겸하느라 먹고 싶어도 꾹꾹 참아가며 줄넘기로 땀을 흘리던 아이는 ‘회전 초밥’이라는 아이다운 보상을 원했다. 그 앞에 의기투합하여 힘든 시간을 버티어내기로 약속했다.

뜻밖의 선물, 줄넘기 실력

“엄마, 저 이제 줄넘기 잘해요, 보세요!”
줄넘기는 뜻밖의 효과를 보였다. 체중을 줄이려고 시작한 줄넘기였는데, 매일매일 약속한 대로 운동하는 동안 아이의 줄넘기 실력이 부쩍부쩍 늘어갔다. 줄넘기를 잘하지 못해서 체육 시간마다 속상해하던 아이는 몇 백 개씩을 슥슥 넘겨버리며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엄마, 오늘 1킬로그램 또 빠졌어요, 여기 와서 체중계 좀 보세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표정의 아이는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거의 반강제로, 당장 하기 쉬워서 시작한 운동이 아이에게는 실력과 특기로 자리를 잡아갔고 꿈쩍하지 않던 살들도 서서히 빠지고 있었다. 형에 비해, 친구들에 비해 뒤쳐져 초라하던 줄넘기 실력이었는데 이제 누구보다 잘해낼 자신이 있는 종목이 되었다. 누군가는 줄넘기 하나가 무슨 대수냐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에게는 ‘특기’라고 할 정도가 된 것이다. 그러자 아이의 성취감은 하늘을 향했다. 친구들처럼 잘하게 되었다며 늘상 함박웃음을 보인다. 정말 행복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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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어요, 하고 싶어요

하루 이틀, 그렇게 약속한 2주를 보냈다. 우리는 그 사이에 많이 달라졌다. 나는 저녁마다 줄넘기를 마친 장하고 통통한 아들의 다리를 주물러주며 또다시 내일을 응원했고, 체중계가 알려준 300그램 감량 표시에 함께 환호했다. 매일 아침 온 가족이 체중계에 모여 두근거리며 몸무게를 확인했으며 일주일의 줄넘기를 목표량만큼 마치고나면 약속했던 만화영화를 보며 함께 기쁨을 나누었다. 그것뿐이 아니다. 아이는 어느 순간 스스로 줄넘기를 잡기 시작했고, 뭔가 스스로 해내는 것의 보람을 알아가고 있었다.
“엄마, 오늘 줄넘기 800개 다 끝냈어요.”
묻지 않아도, 시키지 않아도 어느새 줄넘기를 끝내놓고는 무심한 척한다. 이제는 한번 시작하면 1000개쯤은 거뜬히 넘긴다. 덕분에 불룩하던 배는 상당히 홀쭉해졌고 목표했던 체중에 도달했다. 줄넘기, 지방, 식욕과 싸워가며 보낸 지난 2주, 아이는 상당한 체중을 덜어냈고 눈에 띄게 향상된 줄넘기 실력을 얻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열 살 생애 최고의 성취감을 맛보았다.
이제 ‘6킬로그램 더’를 향한 두 번째 도전이 시작될 참이다.
“엄마, 저 이제 하루에 2000개씩 해볼래요. 할 수 있어요, 하고 싶어요.”
“2000개씩이나? 할 수 있을까?”
“처음에 시작할 때 100개도 힘들 것 같았는데, 결국 해냈잖아요, 저 할 수 있어요.”

우리는 너의 도전을 응원해!

아이의 도전 앞에 엄마는 설렘 가득하고 몸도 마음도 바쁘다. 여전히 숨이 차올라 쌕쌕거리며 힘들어 하는 아이를 격려하고 안아주고 ‘최고’라 외쳐주는 일, 마음껏 먹지 못해 속상해 하는 아이를 위해 좋아하는 보드게임 한판 신나게 함께하는 일, 땀 냄새 쿰쿰한 빨랫감들을 포근한 꽃향기로 가득 채워 차곡차곡 개켜두는 일, 단백질과 지방이 적절히 섞인 재료들로 칼로리가 쏙 빠진 식탁을 준비하는 일, 혹여나 아이가 낙심하거나 창피해 할까봐 먼저 체중계에 올라 늘어가는 내 몸무게를 공개하며 망가져주는 일, 줄넘기하는 아이의 옆에 앉아 백 단위씩 기억하며 함께 개수를 세는 일 그리고 입 짧은 큰아이를 위해 따로 준비한 고기와 과일을 들키지 않고 방에 넣어주는 일…. 엄마는 더 많이 바빠지겠다. 엄마는 많이 행복해지겠다. 우리는 정말 많이 행복하겠다.
“규민아, 세상 최고 멋진 도전을 우리 가족 모두 널 응원해!”

이은경은 초등 연년생 두 아들을 키우는 엄마이자 작가, 강연가, 전직 초등학교 교사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너무 힘들어 그보다는 좀 낫겠지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고 날마다 노트북과 씨름하는, 읽고 쓰는 엄마! 엄마를 따라 열심히 읽고 쓰는 아이들의 원고를 출판해주고 싶어 출판사를 시작했고, 아이를 키우는 최고의 방법은 경험이라는 신념으로 해마다 방학중 해외영어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저서에 《초등 6년이 아이의 인생을 결정한다》, 《그렇게 초등 엄마가 된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