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인내는 쓰나 아이의 성취는 달다

부모의 인내는 쓰나
아이의 성취는 달다

글. 허영림(국민대학교 교육대학원 유아교육과 교수) | 사진. 이미지투데이 | 2019년 4호

2019. 04. 26 101

아이는 스스로 자라는 독립된 인격체로서 스스로 주변을 탐색하며 세상을 배워간다.
부모가 통제하고 개입한다고 해서 아이의 삶이 부모가 원하는 대로 다 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교육의 최종 목표는
아이가 홀로서기를 하도록 돕는 데 두어야 한다. 홀로서기는 부모가 얼마나 많은 자유를 아이에게 주느냐에 따라
그 성취 시기가 달라지며, 어려서 맛본 작은 성취에서 잔잔한 자신감이 생겨 자라면서 커다란 성취를 하게 이끈다.

성취의 첫걸음, 부모 인내로 시작된다

특히 아이의 성취에 관해서라면 부모의 인내가 필수 요건이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다. 부모의 인내 부족으로 아이의 뒤를 졸졸졸 따라다니며 일일이 통제하고 간섭하는 부모가 실상은 많다. 결과적으로 성공도 해보고 실패도 해볼 기회를 빼앗긴 아이들은 소극적이며 의존적으로 자라게 되므로 작은 성공으로 성취감을 갖는 데 간섭을 받게 된다. 어려서 맛본 작은 성취가 자라면서 커다란 성취를 하게 이끌고, 그 과정마다 아이에게 잔잔한 자신감이 생겨 커가면서 매사 적극적이며 주도적인 아이가 된다. 그러한 주도성으로 아이에게 자율성이 내장된다면 그 아이는 행복한 아이다. 사실 일상 속에서 이런 성취를 이뤄낸 행복한 아이들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다. 아이의 성취감을 키운다고 해서 너무 거창하게만 생각할 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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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 사인으로 소통에 성공한 아이의 화사한 웃음

언어를 배우기 이전의 아이에게도 소통을 통한 성취감을 쉽게 볼 수 있는 미국의 연구 사례가 있다. 생후 14개월 된 아이는 엄마로부터 배운 베이비 사인으로 엄지손가락을 입에 대는 동작을 습득했다. 어느 날, 으깬 감자를 먹는 중간에 말 못하는 아이가 음료수를 더 마시겠다는 사인으로 엄지손가락을 입에 대자 엄마가 음료수를 바로 주었다고 한다. 그때 물을 먹게 된 아기는 엄마와의 소통의 성공으로 화사하게 웃어 엄마에게 믿음을 주었다. 말을 배우기 이전의 아이라도 베이비 사인으로 소통이 이루어지는 순간, 성취를 경험한 아이는 매일의 일상이 답답하지 않고 그때그때의 정서를 손짓이나 몸짓의 사인을 써서 대화가 이루어진다. 이런 것이 소통이다. 베이비 사인으로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진 아이들은 베이비 사인과 걸맞은 음성 낱말을 배우는 과정이 훨씬 용이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베이비 때의 소통 경험이 나중의 언어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언어 이전의 베이비 사인을 연구하며 소통하고 있는 외국의 예와는 정반대의 일이 서울에서 일어나 많은 부모에게 공분을 산 사건이 있다. 얼마 전에 보도된 아이돌보미의 학대 사건이다. 15개월 된 아이에게 아이돌보미는 언어 전 아이와의 소통을 완전히 무시한 채 훈육을 빙자해 수시로 가혹 행위를 했다. 아이에게는 이미 정신적인 트라우마가 예상될 정도의 학대의 기간이며 이후 아이의 생애 발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생각할 때 단순 사고로 넘길 수만은 없는 중요한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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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놓고 맛볼 기회는 일상 속에서

마음 놓고 맛볼 기회는 일상 속에서 아이의 성취는 거창한 무엇이 아닌 일상의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아직 숟가락질이 서툰 아이는 엄마가 직접 떠먹이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 하지만 아이 스스로의 성취를 중시하는 엄마는 시간도 걸리고 성가신 일도 몇 배로 더 생기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로부터 몇 달이 더 흘러 아이는 어느덧 능숙하게 숟가락질을 하기 시작한다. 그런 자율성으로 아이는 학교에 가서도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만들어간다. 마음 놓고 실수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배려한 엄마 덕분에 아이의 자율성이 성취감을 만들며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이다. 누가 봐도 행복한 아이다.
반면, 이런 엄마도 있다. 아이가 화장대 위의 화장품을 가지고 놀다가 로션 뚜껑을 여는 순간 안 된다고 생각해서 그 화장품을 모조리 치워버리는 엄마. 엄마와 아이 모두 한순간에 조용해진다. 말썽을 일으킬 그 어떤 것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런 엄마라면 꼭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주위에 탐색할 사물이 없어지면 아이의 호기심은 사라지며 매사 재미없는 아이로 자란다는 것이다. 이런 아이는 차차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도 떨어지며 스스로 하는 일에 장애를 받는다. 그러나 탐색을 허용한 부모는 실수도 하고 말썽을 부리면서 여러 경험을 해본 아이들의 문제해결력과 자율성이 남다르게 신장됨을 보게 된다. 교육의 최종 목표인 문제해결력이 생기는 것이다. 즉 성취의 느낌이 뭔지를 알면서 성장한다.
역시 일상에서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인데 간혹 아이가 뛰어가다 넘어지면 부리나케 달려가 일으켜 세우는 엄마가 있다. 엄마가 달려가면 희한하게도 그때까지 울지 않던 아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아이는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냥 있다가도 엄마가 울상으로 달려오는 표정을 아이 나름대로 해석해서 심각한 지경이라 판단해 우는 것이다. 사실, 아이들은 평지에서 넘어져도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부모가 아이를 일으켜 세울 필요는 없다. 이때는 차라리 “괜찮아, 털고 일어나”라고 말하면서 아이 스스로 일어설 때까지 기다려주면 된다. 평상심으로 아이가 엄마 곁으로 올 때까지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며, 이런 것이 교육이다. 아이가 홀로서기를 배울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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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뒤에서 지켜보라

아이의 홀로서기는 부모가 얼마나 많은 자유를 아이에게 주느냐에 따라 성취 시기가 달라진다. 따라서 부모는 아이가 자율적으로 일을 찾는다면 홀로서기를 할 수 있고 그 분야에 성취감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반드시 믿고, 자녀가 성취할 때까지 절대 조바심을 내지 않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아이의 능력보다 부모의 기대가 높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은 조바심을 달고 살게 된다. 결국 아이 앞에서 조바심이 노출되면, 어떤 아이들은 엄마의 걱정이 싫어서 공부를 한다든지, 엄마의 조바심 때문에 피아노를 친다든지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리하여 끝까지 그 일을 오래 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아이가 주체가 되도록 부모는 뒤에서 지켜보는 자세가 가장 좋으며, 마음속으로 아이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긍정의 힘으로 오래 지켜볼 사람은 부모뿐이다.

일상 속 평범한 부모가
차별화된 성취감을 안겨주는 방법

  1. 아이의 자유로운 탐색과 궁리를 온전히 인정하자.
    물론, 아이의 수준에 맞는 자유로운 경험과 탐색을 언제나 허용하며, 엉뚱한 생각과 궁리도 전적으로 인정하여 실수든, 성공이든 겪을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준다. 아이가 아주 어린 경우는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으므로 부모가 지켜볼 수 있는 범주를 고려한다. 아이 입장에서 ‘집을 자유로운 공간이라고 생각하는지’ 먼저 아이에게 물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시작이다.

  2. 반드시 뒤따르는 실수도, 난장판도 허용하고 속으로는 즐기자.
    많은 경험을 하다 보면 실수와 실패로 일이 많아지기도 하고 한순간 집안이 난장판이 되기도 하지만, 그 과정도 아이에게는 귀중한 경험이며 그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따라서 부모는 넉넉한 마음으로 아이의 실수를 인정하고 야단치지 않으며, 속으로 이 모든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도 내 곁에서 실수를 하고 실패를 해보는 것이 더 안전하고, 이 단계를 거쳐야만 다음 단계로의 이행이 순조로우니 말이다.

  3. 영민한 눈으로 아이를 관찰하고 적재적소에 칭찬하자.
    진정 기나긴 성장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란 칭찬할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즉 부모의 영민한 관찰력이다. 적재적소에 “최고야, 대단해, 와우~ 해냈네”라고 칭찬할 수 있는 부모가 늘 곁에 있다면 아이에겐 보약 같은 힘이 되며, 아이는 더 큰 성취를 위해 달려간다. 칭찬은 귀로 먹는 보약이라고 한다. 부모는 영민한 눈으로 늘 부지런히 아이를 관찰할 때 칭찬거리와 시기를 포착하게 된다. 칭찬의 횟수로도 의미 있는 행동을 끌어내기도 한다. 즉 칭찬거리, 시기, 횟수 모두 아이에게는 중요한 일이며, 그것을 때때로 찾아내는 부모는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뭔가를 성취한 사람들 뒤에는 어려서부터 반드시 이런 수고를 했던 그들의 부모가 있음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