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 넌 엄마와 다른 존재인 걸

아차!
넌 엄마와 다른 존재인 걸

글. 최소연 | 일러스트. 김지영 | 2019년 3호

2019. 03. 27 235

엄마가 재미있는 건 당연히 내 아이도 재미를 느끼겠지 싶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실제로 부딪혀보고야 그게 아님을 알게 되었다. 흔히 엄마가 아니 부모가 곧잘 잊어버리는데,
내가 낳았어도 아이는 나의 분신이 아니라 나와 다른 또 하나의 사람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닌,
내가 기대하는 모습이 아닌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발전시켜주는 것이 중요하다.
나아가 벽을 만났을 때 잘 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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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고정관념, 남자는 축구지!

나에겐 오빠가 한 명 있다. 덕분에 나는 어릴 때부터 인형 놀이보다 농구, 축구, 골프 등 몸으로 하는 놀이에 익숙했다. 대학교 졸업 후 영어강사로 일하면서 학생들과 친해지기 위해 내가 맡은 반 아이들의 관심사를 공부했었다. 남자 아이들은 축구와 게임에 관심이 많았다. 그때 축구 선수들의 이름을 어느 정도 외워둔 덕분에, 고등학교 때까지 축구 클럽에서 운동을 한 남자 친구와도 이야기가 잘 통했다.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았다.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유치원을 졸업하고 드디어 초등학생이 되었다. 입학을 하고나니 무슨 규칙이라도 되는 양 남자 아이들에게 축구는 필수 과목이 되어버렸다. 나는 그 규칙을 꼭 따라야 하는 줄 알았다. 물론 ‘남자라면 축구는 해두어야지’라고 당연하게 여기는 마음도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내가 내 아이를 잘 아는 엄마라고 자부했었다. 아이가 활동적이고 긍정적이라 축구도 좋아할 것이라고. 하지만 같은 반 친구들과 팀을 이루어 일주일에 한 번 모여 운동을 하면서 목격한 건 내가 평소 기대하던 우리 아이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이는 친한 친구와도 몸을 부딪치는 것을 싫어했고 여유롭게 공놀이를 즐기고 싶어했지만, 아이가 공만 잡으면 친구들은 잡아먹을 듯이 공을 뺏으러 달려드는 것이었다. 아이는 점점 뒤로 밀려나게 되었고, 운동장은 더 이상 아이에게 즐거운 곳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한번 시작한 팀 플레이를 쉽게 그만둘 수가 없었고, 그렇게 1년을 힘겹게 보냈다.

엄마 말고 아이가 좋아하는 것

둘째 딸아이는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 반면 아들은 그렇지가 않다. 무엇이든 아이가 원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 “어디 가고 싶어?”라고 물으면 “음··· 집?”, “뭐하고 싶어?”라고 물을 때도 “글쎄···, 레고?” 오로지 집에서 레고를 가지고 노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아들이다. 나는 그 마음을 존중한다. 그렇지만 남편과 나는 축구를 그만둔 아들에게 새로운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 뭘까 고민하던 중, 여행을 가면 물놀이를 제일 즐거워하던 것을 기억해냈다. 아이는 물속에서 굉장히 자유롭고 행복해했다. 동네 수영교실에 등록해 신나게 다니면서 기초부터 접영까지 마스터했다. 물론 중간중간 가기 싫은 날도 있었고 유독 피곤해한 날도 있었지만, 좋아하는 수영을 다녀오면 언제나 다시 에너지가 충전된 듯했다. 그러던 와중에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빠의 직장을 따라 일본으로 오게 되었다. 일본에 와서도 제일 먼저 알아본 것은 수영교실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 많이 답답했을 텐데도 수영을 하고나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다고 얘기해줘서 안심했다.
일본에서의 수영교실 첫 수업에서 놀란 것은, 아이들이 25미터 레인을 1시간 동안 쉬지 않고 왕복하는 것이었다. 일본 아이들의 체력에 매우 감탄했다. 다행히 우리 아이도 뒤처지지 않고 잘 따라갔고 자세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 진급 테스트가 있는데, 테스트 후에는 선생님이 학생들을 한 명씩 앞으로 불러 테스트를 통과하면 악수를 해주시고 그렇지 못하면 부족한 점을 설명해주신다. 우리 아이는 매달 테스트를 통과하고 선생님의 악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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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처음 만난 벽 앞에서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드디어 고비가 왔다. 스피드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언제나 느긋하고 자기 페이스대로 움직이는 아이가 3개월째에는 2초가 늦어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다. 드디어 아이 입에서 그만두고 싶다는 얘기가 나왔다. 교회에서 만난 탁구 코치님하고 탁구를 쳐보고는 이제는 수영을 그만두고 탁구를 하고 싶다고 했다. 많은 고민을 했다. 영법은 다 배운 것 같고 앞으로 선수로 활동할 것도 아닌데 여기까지만 하고 그만둘까?
고민을 했지만 결론은 ‘그 2초를 깨보자’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포기하면 앞으로 어떤 일을 만나도 벽에 부딪히는 순간 그만두는 버릇이 생길 것 같았다. 지금 아들이 이 순간 이 고비를 잘 넘기기 위해 나는 어떤 엄마여야 할까 고민했다. 나의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나는 내 마음을 알아주고 공감해주는 사람이 좋았다. 그래서 좌절을 맛보고 많이 힘들었을 아이의 마음에 공감해주기로 했다. 다음 시험 날, 이번에도 통과하지 못한 아이가 탈의실에서 나오는데 눈에는 눈물이 한가득 고여 있어 툭 치면 폭포 같은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아이는 눈물을 겨우 참다가 차에 올라타서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내 마음이 너무 아팠다. 엄마 마음은 그렇다. 아이는 늘 행복하고 즐거웠으면 좋겠고 슬프고 아픈 건 내가 대신해주고 싶다. “엄마도 학교 다닐 때 좌절했던 경험이 있어”라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대학교 입학시험에서 두 군데 떨어지고 세 번째 합격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니가 많이 노력한 거 알아, 점점 부담이 되는 것도 알아. 하지만 여기서 포기해도 우리는 살면서 또 다른 크고 작은 벽을 만날 거야. 이번 벽을 잘 넘으면 다음 벽을 만났을 때 주눅 들지 않고 또 도전할 수 있겠지?” 엄마의 마음과는 달리 아이가 잔소리로 들으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이 말이 큰 위로가 됐고 힘이 됐다며 “엄마 위로해줘서 고마워요”라고 한다. 무조건 “더 잘해” 또는 “그 2초를 왜 못 줄이니?”라고 책망하는 대신 자주 내 경험을 나누니 아이 마음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그 후로는 수영교실 가는 아이의 발걸음이 무겁지 않다. 오늘은 “엄마, 다리에 힘이 많이 들어가서 50미터도 순식간에 끝냈어요”라고 한다. 아이가 다시 자신감을 찾아 너무 감사하다.

새 날 새 아침은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

우리는 우리가 만난 벽을 아직도 넘고 있는 중이다. 수영을 하고 나오는 아이의 환한 얼굴을 보면 이 벽을 함께 잘 넘길 수 있다는 확신이 선다. 오늘도 수고했다고 안아준다.
자주 잊어버리곤 하지만 자녀는 나의 분신이 아닌 나와 다른 또 하나의 사람이다. 나와 취향이 같거나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을, 기대를 하면 안 될 것 같다. 쉽지는 않지만 아무런 선입견 없이 아이를 바라보아야 한다. 내 아들이 아닌 한 사람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닌, 내가 기대하는 모습이 아닌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해주는 것, 그것을 발전시켜주는 것이 중요하다. 더 나아가 벽을 만났을 때 잘 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다.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새 날들은 내가 받은 선물이다. 지금 아이와 함께 도전하는 세상 모든 엄마들을 응원하고 싶다.

최소연은 2년 전 일본 고베로 이주해서 새로운 ‘나’를 찾고 있는, 초등 5학년 아들과 초등 2학년 딸을 둔 엄마이다. 일본의 한 사립 중고등학교에서 영어와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두 아이가, 또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이 나를 통해 밝은 세상의 희망을 보았으면 한다. 아이들에게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며주는 엄마, 선생님이고 싶다. 우연하게도, 일본어를 어떻게 준비할까 고민하다가 《재능스스로일본어》로 공부한 터라 이 글을 쓰면서 더더욱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