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브랜드가 된다는 것

내가 브랜드가 된다는 것전시해설가 김찬용

글. 김문영 | 사진. 이서연(AZA STUDIO) | 2019년 3호

2019. 03. 27 64

전시해설가는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지만 갖기 어려운 직업 중 하나이다. 일자리는 전혀 안정적이지 않고 보수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오직 전시해설로만 프로가 되고자 했던 한 미대 졸업생은 해를 넘길 때마다 다른 일을 찾아야 하는지 고민했다. 그 고민을 끝내고 희망을 보기까지 약 10년이 걸렸다. 작품을 돋보이게 해야 하는 무채색 수트의 신사, 김찬용의 도전과 성공 그리고 새로운 꿈.

전시업계의 브랜드가 되다

도슨트, 즉 전시해설가는 미술 감상이 익숙하지 않은 관람객들을 안내하는 사람이다.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 감상의 즐거움을 높인다는 점에서 꼭 필요한 일이지만 직업으로 영위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미술관이 많지도 않은데다 도슨트를 정규직으로 고용할 만큼 투자 여력이 있는 곳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재능 기부에 의존하는 편이다.
도슨트는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나 미술관 체험 교육에 필요한 에듀케이터와도 다르다. 국내에 흔치 않은 전업 도슨트 김찬용은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전시해설 고유의 영역에서 프로가 되고 싶었다. 지난 3월 초까지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이매진-존 레논 전>을 비롯해 굵직한 전시에서 활약해온 그는 이제 전시의 흥행을 주도한다는 평을 듣는다. 전시해설뿐만 아니라 SNS 채널을 운영하고 강연을 진행하고 잡지에 칼럼을 쓰며 대중과 소통하느라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경제적 문제와 미래에 대한 불안, 주변의 시선 등을 견디며 꿈을 좇은 그는 자기 이름 석 자를 미술 전시업계의 브랜드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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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시간의 법칙은 거짓인가

전업 작가 대신 수입이 확실한 직업을 선택한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김찬용 해설가도 대학 졸업 후 여러 일들을 탐색했다. 미술관에서 전시해설과 사무직을 겸한 적도 있었다. 문제는 전시가 열리는 때에만 해설이 필요하다보니 미술관에서도 점점 전시해설보다 사무보조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전시와 관련된 책이나 논문을 읽고 해설 방향을 고민하려면 도슨트 업무에 집중할 필요가 있어요. 더 책임 있게 해나가고 싶어서 9년 전쯤부터는 도슨트만 하기로 결심했죠. 그 후에는 항상 생존 문제가 따랐어요.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일하는 건데 뭘 하고 있나 싶었어요.”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려면 1만 시간의 훈련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이가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 이 말이 김찬용 해설가에게는 좌절로 다가온 적도 있었다. 해도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포기하고 싶었을 때, 조금 더 버티자며 스스로를 독려했다. 내가 받은 작품의 감동을 누군가와 나누고 소통하는 즐거움이 힘든 현실을 견디게 한 원동력이었다.

항상 무채색 옷만 입는 이유

김찬용 해설가가 생각하는 전시해설은 서비스 업무에 가깝다. 좋은 전시해설은 관람객의 만족도를 높이고 감동 받은 관람객은 또 다른 전시를 찾을 것이다. 전시의 주제와 장소, 대상 등에 따라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해설의 방향은 효율적이고 적절한 언어를 찾는 일이다. 색면을 캔버스에 담는 것으로 유명한 마크 로스크의 전시를 의뢰 받았을 때는 고사하려고 했다. 침묵 속의 감상이 필요한 작품들을 말로 설명한다는 것은 모순이었다. 김찬용 해설가는 설명하는 분량, 내용, 말하는 어조에 이르기까지 전시의 주제와 특색을 반영하기 위해 섬세하게 고민한다. 처음 일할 때부터 지켜온 철칙 중 하나는 해설할 때 무채색 옷만 입는 것이다. 전시장에서 도슨트가 도드라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독일 작가 요셉 보이스는 ‘모든 사람이 예술가’라고 말했다. 김찬용 해설가는 이 말의 의미를 전시해설에 적용한다. 그림이나 음악뿐만 아니라 음식을 만들어 파는 일이나 환경 미화 같은 일상의 모든 행위가 예술이 될 수 있고 전시를 통해 개개인이 삶의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그래서 작가의 대표작에 얽매이기보다 전시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얻을 수 있는지 흐름을 함께 읽으려 한다. 해설자의 감상을 강요하지 않고 관람객의 시선을 열어주기 위해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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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보다 중요한 삶의 방향

과거보다 많아진 미술관과 흥행 전시는 누구나 예술을 향유하는 사회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미술계의 여러 문제들이 있다. 김찬용 해설가는 상업성만 앞세워 성의 없게 기획하는 어린이 전시를 우려한다. 자녀가 어려서부터 문화예술을 접하며 즐기게 하고 싶다면 좋은 전시를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 영화를 선택할 때 감독을 보듯, 전시는 기획사를 눈여겨보는 것이 선택의 요령이다. 아이가 미술을 좋아해 미대 입시를 준비할 때가 되면 미술학원의 문제가 장벽으로 다가올 수 있다. 입시 성공률이 높은 대형 학원의 간판과 덜 유명해도 성실하게 지도해줄 선생님 중에서 어느 쪽이 나은지는 각자 결정할 문제이다. 김찬용 해설가는 재수생 시절에 평생의 은사를 만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좋은 인생을 사는 것이 좋은 대학을 가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믿음은 한결 같다. 이제 새롭게 도전할 일들도 좋은 인생을 사는 방편이다. 도슨트로서 브랜드가 된다는 것은 상상했던 것보다 많은 기회를 갖게 되는 일이었다. 김찬용 해설가는 여러 매체를 통해 신인 작가들을 알리는 글을 쓴다. 조만간 강연 참석자를 대상으로 신인 작품 경매도 열 계획이다. 향후에는 작가에게 100퍼센트를 배분해주는 형태로 신예 갤러리를 운영하고 싶다. 무모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젊은 작가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정당하고, 이미 무모한 도전을 성공한 사람이기에 이번 꿈도 멋지게 이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