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한 연구자입니다

나는 행복한 연구자입니다나노독성학자 박은정

글. 이슬비 | 사진. 이서연(AZA STUDIO) | 2019년 2호

2019. 02. 27 282

2017년 HCR(Highly Cited Researcher) 시상식, 떨리는 목소리로
‘10년 전만 해도 저는 살림하고, 아이 키우는 아줌마였습니다’라고 시작한 수상 소감이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말은 기자들을 통해 소위 유리천정을 뚫은 ‘경단녀의 성공’으로 의역되어 널리 퍼졌다.
HCR은 세계적으로 논문 피인용 횟수가 많은 연구자들 중에서도 상위 1퍼센트에게만 주어진다.
일상 속 나노 물질의 독성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박은정 교수(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 융합건강과학과)는 2016년부터 3년 연속 선정된 ‘세계 1%’ 연구자이다.
실험에 몰두할 때는 3박 4일을 뜬눈으로 지새우는 그를 어렵사리 만났다.
눈빛은 맑았고 목소리와 웃음은 아이처럼 씩씩했으며 무엇보다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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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이자 주부라서 더 좋은 ‘생활 밀착형’ 연구

2006년 미세먼지를 주제로 박사 과정을 밟던 중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나노 물질을 처음 접했고, 국내 한 대기업에서 선보인 은나노 세탁기와 관련해 환경유해성이 이슈화되면서 본격적으로 나노독성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2007년 OECD를 중심으로 글로벌 네트워크가 형성되면서 국내 연구도 활발해졌지만, 개인으로서는 연구를 그만두어야 할 고난에 수차례 부딪혔다.
그러나 연구를 지속한 결과 2011년 9월 한국연구재단의 대통령포스트닥터펠로우십 1기에 선정되었고, 2012년 3월에 처음 참석한 미국독성학회에서 나노독성과 면역독성 연구로 명성을 얻고 있던 스웨덴의 벤트 페델 교수를 처음으로 만났다.
영어가 유창하지 않았던 박은정 교수는 그림과 손편지, 이메일을 통해 자문을 구했고, 그를 만나기 위해 그가 참석하는 국제학회를 찾아 참석한 터였다.
그의 열정에 감동한 페델 교수의 소개로 2016년에는 6개월간 미국 산업안전보건연구원으로 연수를 다녀왔고, 이때 다진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지금 해외 연구진과도 활발히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나는 연구에 욕심 많은 아줌마입니다

그가 발표하는 논문마다 전세계 나노독성학 연구자들이 경쟁적으로 인용하고 있었지만 국내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불과 1년여 전까지만 해도 욕심 많은 무급 연구강사였던 그에게 2017년 11월 15일의 HCR 시상식은 인생의 대전환점이었다.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눈이 번쩍 뜨일 제안들이 잇따랐지만, 그는 시상식장에서 ‘경희대로 오라’고 한 말을 행동에 옮겨준 정서영 부총장의 뜻을 따랐다. 연구에 부족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는 조건이었다. 11월 27일, 경희대에서 공식 일정을 시작하고야 정교수 신분임을 알게 되었다는 박은정 교수는 조금 걱정은 되었지만 감사의 마음이 너무 커서 ‘최선을 다해 지원한다’는 말의 상세한 뜻을 차마 물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한때는 동생들을 챙겨야 했던 그의 어릴 적 가장 큰 소망은 ‘온 가족이 함께 모여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 자연히 모든 선택의 기준은 가족의 행복이었다. 임신, 출산, 육아 그리고 병간호가 계속되는 벅찬 상황에서 가족을 위해 공부를 미루었고, 우여곡절 끝에 2008년에야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과정 동안 5편의 SCI 논문을 발표하고 많을 때는 연간 16편의 SCI 논문을 발표했지만,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그는 연구를 계속할 수만 있다면 어떤 조건이든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공부의 끈을 놓지 않은 것은 아들 때문이었다. 10개월 된 아들이 백혈병을 진단받았을 때 병원측에 혈액검사 과정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여 결국 오진임을 밝혀낸 적이 있다. 그때 ‘모르면 내 새끼도 지키지 못하겠구나’라고 절실히 깨달았다고 한다. 그 힘으로 지금까지 달려왔지만 엄마로서는 죄인이라 고백한다. 시아버지의 식도암이 재발하지 않고 집안 사정도 어느 정도 안정되자 2003년 대학원에 입학했지만, 시아버지가 다시 치매를 앓게 되면서 여러 상황을 고려해 대학원 근처로 이사를 했다. 한창 친구관계가 중요한 중학생 아들은 할아버지 병간호와 뒤바뀐 엄마, 아빠의 역할 등 어려운 가정형편을 이해하고 오히려 가족에 힘이 돼주려 노력했다.엄마가 대통령포스트닥터펠로우십에 선정되었을 때도, 지방대학에 다니는 자신에 대한 걱정으로 연구에 집중하지 못할까봐 군대에 지원했을 만큼 속이 깊은 아이였다.
“학교에서는 한 번도 백점을 받은 적이 없는 아들이 신병훈련소 사격에서 유일한 만발자였대요. 포상으로 엄마와 통화할 수 있다는 그 이유 때문에요. 겉으로는 씩씩하게 입대했지만 실은 저도 많이 두려웠구나 싶었지요.”
교생 실습도 공교롭게 엄마의 해외 연수와 맞물려 이모할머니 집에서 다니면서도 불평 한 마디 없었다. 미안해하는 엄마에게 오히려 ‘난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라고 위로했다. 이렇게 키워도 되나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 아들은 어느새 스물아홉 건강한 청년이 되었다.

지켜보다가 다치면 치료해주는 엄마

엄마로서는 늘 자격미달이라고 생각하기에 인터뷰도 몇 차례 사양했던 박은정 교수. 아이를 키우는 자신만의 기준을 묻는 질문에 “제 의견을 강요하며 잔소리를 하거나 큰소리를 내지는 않았어요”라고 답한다. 유리로 무언가를 만들 때는 옆에서 지켜만 보다가 다치면 치료해주고, 납땜을 할 때는 조용히 창문을 열고 마스크만 끼워주고, 학원에 보내는 것이 아동학대라고 아들이 반항하면 직접 가르치고…, 그렇게 원하는 건 해보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을 뿐. 덕분에 아들과는 고민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 때 어느 날 갑자기 코트를 사달라더군요. 그때 제 한 달 인건비가 30만 원이었는데 코트가 50만 원이었어요. 비상금을 다 털어 사주고는 남편한테는 천이 너무 좋은데 세일해서 5만 원이라고 했어요. 나중에 아들이 그러더군요. 미안한 마음에 군대 다녀올 때까지 그것만 입었다고. 지금은 저보다 더 싼 것만 사 입어요.”
박은정 교수는 요즘도 아름다운가게를 자주 이용한다. HCR 시상식 날 입었던 원피스도 아름다운가게에서 5500원에 샀고, 인터뷰 날 입은 코트는 세일가 4000원에 사다가 중성세제로 깨끗이 빨아 입은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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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더 빠른 길이란 없어요

박은정 교수는 현재 폐질환과 뇌질환 사이의 연관성을 찾는 연구와 선천적 면역계에 대한 바디버든(몸속에 들어와 쌓인 유해 물질들의 총량)의 영향에 관한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여전히 ‘경단녀’라는 꼬리표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감이 좋지 않아 빨리 떼버리고 싶었죠. 그런데 지난해 봄, 후배 여성 연구자들을 위한 강연에서 그분들의 눈빛을 보면서 제 생각이 짧았다는 걸 알았어요. ‘저분들의 응원 덕분에 내가 연구를 계속할 수 있게 되었구나, 이젠 내가 저 분들을 위해 일해야 할 때이구나.’ 그래서 지금은 후배 연구자들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되면 모든 스케줄을 조정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공부 욕심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지만 그는 똑같은 상황이 다시 온다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가족의 행복이 최우선이니까.
“만약 제 공부만 고집했었다면 지금보다 조금 빨리 끝낼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행복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동안 어려운 고비가 너무나 많았지만 가족 간에 갈등이 없었다는 건 다행입니다.”
박은정 교수는 ‘어떤 경우에도 가정의 행복과 맞바꾸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조언했다. 인생에 ‘더 빠른 길’이란 없으니 지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 후에야 다음 길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 역시 남들보다 최소 20년쯤 돌아왔지만 마음을 어지럽히는 후회는 없다. 오로지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