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해하도록 그러나 채워주지 않도록

궁금해하도록
그러나 채워주지 않도록

글. 현은선 | 일러스트. 김지영 | 2019년 2호

2019. 02. 27 319

출산이 늦은 탓에 주변의 젊은 엄마들처럼 활동적이거나 교육열을 올리지는 못했다.
체력 탓으로 돌리며 아이를 향한 많은 부분을 비워두었더니, 결국 아이가 먼저 묻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이가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보여주었을 때, 그때부터 엄마로서 바쁘고 신나게 따라 움직였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더 빠져들게 만드는 건 “궁금해하지만 채워주지 않는다”라는 말에 다 녹아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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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스스로 물을 때까지

첫째 딸아이를 내 나이 서른 넷에 낳았다. 간호사가 갓 낳은 아이를 포대기에 싸서 친정엄마에게 보여주었는데 딸이 울지도 않고 눈을 초롱초롱 뜨고 바라보았다. 마치 엄마 뱃속이 갑갑했다는 듯 이리저리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둘러보았다. 늦은 출산으로 딸이 마냥 예쁘기만 했지 젊은 엄마들처럼 활동적이거나 교육을 위해 뛰어다니지 못했다. 그러다 서른 일곱 살에 아들을 낳았다. 주변의 부모들은 태교부터 시작해서 유아 영재교육, 영어 유치원 등 교육에 열을 올렸지만 나는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유아기엔 아이를 엄마가 품는 게 가장 좋다는 생각으로 어린이집도 보내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는 것만 해도 힘이 부쳤다. 교육 전문가들은 아이를 안고 글을 많이 읽어주어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딸에게 책 한 권 읽어줄 힘이 없었다. 바쁜 남편에게 의지할 수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텔레비전을 보다가 갑자기 “엄마, 저게 무슨 글자야?”라고 물었다. 답을 해줬더니 단어의 뜻을 묻길 반복하더니 며칠 지나서는 문장의 뜻을 물었다. 계속되는 질문에 참을성 있게 답하기를 몇 주일, 딸은 이제 글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꺼내서 서너 시간씩 읽어내려갔다. 신기했다. 그 뒤부터 나의 발걸음은 도서관으로 향했고 딸에게 책을 조달해주느라 바빴다. 딸아이가 여섯 살에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내게도 여유가 조금 생겼다. 그때부터 세 살 먹은 아들에게 집중했다. 아들을 안고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자기 전에도 꼬박꼬박 읽어줬다. 이렇게 글을 읽어주면 누나처럼 스스로 글을 깨칠 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물론 누나보다 더 빨리 글을 읽게 될지도 모른다는 욕심도 들어 있었다. 그래서 책을 읽어주다 간간이 “가, 나, 다…”라며 글자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 녀석은 책만 펴들면 몇 분도 못 참고 웃으며 도망가 장난감을 집어 들거나 배고프다고 보채거나 짜증을 내며 누워버렸다. 결국 엄마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초등학교 입학 한 달 전쯤에야 겨우 띄엄띄엄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딸은 했고 아들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자연을 무대로 마음껏 장난쳤어요!

딸이 여섯 살, 아들이 세 살이 됐을 때 힘들고 지치고 답답했던 내게 하나의 탈출구가 생겼다. 여동생네가 다섯 살인 조카딸을 데리고 우리집 근처로 이사를 온 것이다. 어린 아들을 여동생에게 맡기고 운전 연습을 했고 15년 된 장롱 면허를 꺼내 쓸 수 있게 됐다. 답답했던 날들이여 안녕! 동생과 아이들 셋을 차에 태우고 갈 수 있는 온갖 곳을 쏘다녔다. 무대는 자연이었고 아이들 셋은 매일매일 놀러다니며 사계절을 온 몸으로 만끽했다. 평일에는 어디를 가도 또래 아이들을 보기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셋은 자연스레 똘똘 뭉치게 됐고 지금도 한 형제처럼 지낸다. 그런데 문제는 이 셋이 모이면 장난기, 호기심이 더 크게 발동한다는 거다. 아이들은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것,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해 하찮게 여기는 것, 특히 부모가 못하게 제지하는 것들에 더 강한 호기심을 가졌다. 셋이 모이기만 하면 그 동안 부모 눈치 보며 꼭꼭 눌러두었던 호기심을 발산하느라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화단에 있는 꽃을 꺾다 못해 뿌리째 뽑아본다든지 나뭇잎을 짓이겨 옷에 온통 초록 물을 들이는 건 약과였고, 놀이터만 가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래 목욕을 즐기고 액체괴물 만든다며 샴푸, 치약, 화장품을 다 쏟아 부었다. 식당에 가면 음식을 모두 섞어서 서로에게 먹이기도 했다. 처음에 우리 자매는 아이들을 졸졸 따라 다니며 잔소리를 해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잔소리란 것이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을 의식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아이들이 놀 때는 일부러 자리를 피했다. 보여도 일부러 못 본 체했다. 이제야 털어놓지만 다른 어른들이 애들을 꾸짖을 때는 우리 애들이 아닌 척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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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나고도 그 웃음은 반짝반짝!

딸아이가 아홉 살, 조카가 여덟 살, 아들이 여섯 살이 됐을 때는 수영, 밸리댄스, 축구를 배우기 위해 체육센터를 같이 다녔다. 체육센터에는 옥상이 있었는데, 입구를 두꺼운 철판으로 막아 놓아 가파른 철제 사다리를 타고 가 힘껏 밀어야만 올라갈 수 있었다. 물론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표지판이 크게 붙어 있었다. 애들이 어느 순간부터 살금살금 몰래 올라 다니는 것을 알았지만 주의만 줬을 뿐 막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아이들이 경비 아저씨에게 들키고 말았다. 실컷 혼난 뒤 우리한테로 달려올 때 아이들의 상기된 표정이란! 얼굴 가득 만연한 웃음이란! 혼이 났어도 그 흥분은 아이들을 마냥 반짝이게 했다. 계단을 오를 때의 스릴, 옥상 철문을 열었을 때의 설렘, 이런 것들을 생각하니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와 동생은 따로 사과의 인사를 해야 했고 아이들은 다시는 옥상에 올라가지 않았다. 아니 올라가고 싶은 호기심을 더 이상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자리만 마련해주세요!

남편은 딸아이가 스스로 글을 깨친 것은 영특해서라고 말한다. 물론 나도 딸이 지적 호기심이 강한 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조급해 글자를 미리 가르쳤다면 딸이 글에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책을 찾아보는 열정을 갖게 됐을까? 아들에게는 오히려 욕심을 부려 글자에 호기심을 갖기 전부터 글을 가르친 게 혹시 독이 된 건 아닐까?
아이들은 모든 것에 다 호기심을 갖는다. 그 호기심을 자극하고 더욱 빠져들게 만드는 건 “궁금하지만 채워지지 않는다. 궁금해하지만 채워주지 않는다”라는 말에 다 녹아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한 번도 조기 교육에 열을 올리거나 보습 학원에 보내지 않았다. 선행 학습은 더더욱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래도 아이들은 스스로 많은 것을 터득해 우리를 놀라게 만든다. 하나의 궁금증을 해결하고나면 스스로 또 다른 것을 찾아 나서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 과정에서 때론 잘못을 저질러 혼도 나고 스스로 저지른 일에 책임지는 법도 배우게 된다.
지금 많이 성장한 우리 아이들에게서 두드러진 부분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그것에 도전하는 데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내가 바라는 바를 충족시키기 위해 특별히 요구를 한 건 없다. 못 본 척하고 때론 방관하면서 마음껏 고민하고 찾도록 두었다. 그런데도 아이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수업 시간에 눈이 초롱초롱하다 못해 레이저를 쏜다는 칭찬을 들을 때는, 지금까지 내가 과히 틀리지 않았다는 뿌듯한 마음이 든다. 지금 우리 애들은 “이거 할까?”라고 물으면 달려들고 “이거 할래”라면서 보챈다. 앞으로도 내가 해야 할 건 그 보챔이 계속되도록, 그 호기심을 채울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것뿐이라고 믿는다.

현은선은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며, 제2의 꿈인 공방카페 창업을 위한 준비로 설레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대학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한 뒤 건축설계사의 꿈을 안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출산 후 아이가 엄마를 가장 필요로 할 때 옆에 있어 주어야 몸과 정신이 건강하리라는 믿음으로 전업을 택했다. 아이들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힘을 키워주는 부모가 되겠다는 게 변함없는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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