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어른들이 기대하는 대로

아이는 어른들이
기대하는 대로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2학년 박세훈

글. 이슬비 | 사진. 현진 (AZA STUDIO) | 2019년 2호

2019. 02. 27 111

세상에서 부모님 말씀을 가장 존중한다는 박세훈 군. 어릴 때부터 ‘애어른’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매사에 신중한 성격이다. 세훈 군은 부모님도 누나도 모두 인문학도인 집안에서 돌연변이처럼 공대생이 되었다.
그 배경에 대해 부모님이 열어놓으신 길을 따라 걸었고 어릴 때부터 익힌 공부 습관 덕분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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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내 모의창업 지원을 받게 됐어요

겨울방학인데도 불룩한 가방을 매고 나타난 박세훈 군. 금방이라도 도서관으로 달려갈 것 같은 차림이지만 학교에 친구 만나러 간다며 웃었다.
“1학년말에 친구들과 함께 교내 창업경진대회에 참가했다가 기대보다 좋은 성적을 얻어서 모의창업 예산을 지원받게 되었어요. 방학 동안 창업 프로젝트를 준비하느라 학교에 자주 가고 있어요. 개학하면 성과물을 가지고 전시회도 열 예정이라 기대가 많이 됩니다.”
1학년 때부터 창업경시대회에 참가한 것은 대학원 진학보다 취업이나 창업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2학년부터 본격적인 전공 공부를 하다보면 지금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길이 보일지도 모른다며 아직은 다양한 경험에 더 무게를 두는 듯했다.
현재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에 재학 중인 세훈 군. 전국의 내로라하는 수재들이 지원하는 학과 가운데 하나이니만큼 입시 공부가 적잖이 치열했을 테지만 세훈 군의 공부 비결은 소박했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주로 재능스스로학습으로 공부했고 중학교 때까지 동네의 작은 보습 학원에 다녔는데, 이것이 공부의 기초가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고등학교 진학 후에는 학원 수업을 병행했지만 어릴 때 스스로학습교재로 몸에 익힌 공부 습관과 공부 기초가 없었다면 좋은 성과를 얻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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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고 가볍게 공부에 접근한 좋은 방식

“학습지는 대개 대여섯 살쯤에 시작하잖아요. 아이는 아직 공부가 뭔지 모를 때고 부모님의 생각에 따라 공부를 안 하고 지나갈 수도 있는 시기이지만 제 경험으로는 공부에 재미를 붙일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해요. 학습지는 이 시기에 아주 쉽고 가볍게 공부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아요.”
여섯 살 무렵부터 재능스스로학습을 시작했다는 세훈 군은 수학, 한자, 일본어 등의 경우 스스로학습교재를 통해 학교 공부의 기초를 다졌다.
“제일 재미있었던 것은 《생각하는피자》였고 진로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재능스스로수학》이었어요. 수학에 흥미를 갖게 했거든요. 그리고 도움을 가장 많이 받은 것은 《재능스스로한자》와 《재능스스로일본어》였어요.”
특히 한자의 경우 학습지로 차근차근 공부해두지 않았더라면 중·고등학교 한자 과목을 굉장히 힘들어했을 거라고 기억한다. 앞으로 직장생활을 하더라도 ‘사직서’ 정도는 한자로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대학 입학 후 다시 한자 공부를 시작했다가 내친 김에 한자능력검정시험에서 준4급을 취득했다. 또 중학교 선택 과목이었던 일본어도 ‘펜이 움직일 때마다 일본어로 소리가 나는’ 《재능스스로일본어》로 공부해 만족스러운 성적을 얻었다고 한다. 매주 한 번씩 선생님이 정기적으로 방문해 공부를 점검해주는 스스로학습시스템 덕분에 자의든 타의든 꾸준히 공부하는 습관이 잡힌 것 같다고.
세훈 군은 이처럼 학습지의 장점을 충분히 살리려면 선생님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재능스스로학습을 시작하기 전에 타사의 학습지도 잠깐 한 적이 있지만 이내 그만둔 기억이 있다. 그때 두 살 터울인 누나가 스스로학습교재로 재미있게 공부하는 모습을 어깨 너머로 보고는 ‘누나와 같은 것’을 졸랐다고 한다. 무엇보다 선생님과 함께 공부하는 누나의 모습이 무척 재미있어 보였다고. 이후로 누나와 같은 선생님과 계속 공부했는데 어머니처럼 친절했다고 기억한다. 학습지에 쉽게 싫증내지 않았던 데는 부모님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 공부 스트레스를 주는 편이 아니었지만 학습지만큼은 밀리지 않도록 매일매일 챙기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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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밝혀주시는 길을 따라

세상에서 부모님의 말씀을 가장 신뢰한다는 세훈 군은 요즘도 고민이 생기면 부모님과 먼저 상의한다.
“부모님은 항상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어요. A라는 길밖에 모르는 저에게 B라는 길에 대해서도 조언하시며 시야를 넓혀주시곤 합니다. 덕분에 좀 더 깊고 넓고 다양하게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늘 살가운 아들은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특히 수능을 준비하느라 예민해져 뾰족하게 굴 때마다 부모님은 늘 너그럽게 보듬어주셨다. 친구들의 경험담과 비교해보면 고등학생 시절을 참 평탄하게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대학생이 되고서야 부모님이 참 많이 참아주셨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고.
세훈 군은 두 번 생각하고 한 번 말하는 성격이다. 인터뷰 동안에도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듯 한 마디 한 마디가 조심스러웠다. 어릴 때부터 ‘애어른’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좀처럼 말을 아끼던 세훈 군은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이라고 단서를 달면서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아이들의 타고난 재능은 백지처럼 깨끗하며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는 대체로 부모님의 관심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사람들은 ‘공대생 DNA는 따로 있다’고 말하지만 제 경우는 집안 내력이나 타고난 재능 덕분이 아니었어요.

집안 내력으로 본다면 오히려 부모님이 모두 인문학도셨고 누나도 지금 인문학을 공부하고 있어요. 제가 오히려 돌연변이인 셈이죠. 제가 공대생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부모님이 처음 열어주신 길이 그 방향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부모님이 밝혀주시는 길을 따라 열심히 걸어왔어요. 아이는 부모님이 관심을 기울이고 기대하는 방향대로 자라는 것 같아요.”
이 말은 부모의 뜻에 따라 좌우되는 존재가 아니라 그만큼 다양한 가능성이 잠재된 존재라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아이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며 성장하는 존재라는 것을 커보니 더 분명히 알겠더라는 세훈 군의 말은 부모의 역할과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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