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영어를 공부합니다

지금도 영어를 공부합니다국제회의통역사 최현진

글. 김문영 | 사진. 김선재(페니레인스튜디오) | 2019년 1호

2019. 01. 30 1295

국제회의통역사로서의 커리어는 이미 정점을 찍었다. 수많은 국제회의에서 활약했고
대통령의 목소리를 대신했다.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들, 특히 일과 가정의 양립을 고민하는 많은 여성들의
롤 모델로 꼽히기도 한다. 그럼에도 최현진 그녀에게 일과 영어는 여전히 도전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힐러리 클린턴의 목소리를 넘어서

2018년 9월 24일, 경남 거제에서 열린 도산안창호함 진수식.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독자 설계한 중형급 잠수함의 탄생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우리 정부와 군, 방산업계는 물론이고 해외 관계자와 전문가들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폭우까지 내려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도착하면서 거짓말처럼 비가 개인 일은 최현진 통역사에게 잊지 못할 순간으로 남아 있다.
경력 10년차에 접어든 한영 국제회의통역사로서 더없이 영광스럽고 중요한 자리에서 활약했다. 2016년 미국 대선 후보 토론에서 힐러리의 목소리를 대신하면서 유명세를 탔고 2017년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생중계 동시통역도 맡았다. 2016년의 한-EU FTA 무역위원회 회의와 아세안+3 정보장관회의, 2017년 OECD 국제교통포럼 등 굵직한 국제회의에도 함께했다.
지금은 자신의 커리어를 넘어설, 통역 이상의 의미 있는 일을 찾는 단계로 국제회의통역사의 경험과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일을 찾아 실천하고 있다. 모교인 한양대학교의 산업연계교육 자문위원회에 참여하고 있고, 오바마 대통령의 명연설과 명문의 배경까지 소개한 책 《대통령의 연설》을 출간했다. 새로운 책도 구상하고 있다. 새 책은 국제회의통역사가 되기까지의 과정, 직접 부딪힌 직업세계에서 알게 된 것들과 느낀 점들을 진솔하게 담은 이야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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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즐거움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가 고3이었다. 옆자리 친구조차 경쟁자로 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힘들었지만 1년이라 다행이라고 여겼다. 입시 경쟁의 압박감도 한번쯤 경험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찾는 성격 덕분에 국제회의통역사가 되는 까다로운 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국제회의통역사 자격시험이 어려운 것은 그 시험을 준비하려는 사람들이 몰리는 통번역대학원 진학조차 얼마나 어려운지 보면 알 수 있다. 학부 졸업 후 대학원에 바로 진학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영어에 어지간히 자신감을 갖고 시작했지만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든 공부였다.
바늘귀처럼 좁은 문을 통과하면 근사한 보상만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일과 생활을 여유롭게 병행하는 프리랜서를 상상했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정치, 경제, 사회, 의학, 문화예술 등 각 분야별 전문 회의에서 통역을 하려면 전문가들의 언어를 이해할 배경 지식을 쌓아야 한다. 국제회의가 많이 열리는 시즌에는 잠잘 시간도 부족하다. 국제회의통역사들은 프라하까지 가서도 호텔에서 공부만 한다는 농담을 주고받는다. 세계 어느 도시를 가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그런데 그게 괴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지식을 쌓을 수 있어서 재미있고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과정이 짜릿하다. 국제회의통역사는 대개 지적 호기심이 크고, 작은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 압박감까지 기꺼이 견디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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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영어 공부도 흥미가 우선

국제회의통역사는 때로 해당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보다 그 언어에 정통해야 한다.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구사하는 각각의 발음, 억양을 알아야 실수 없이 통역할 수 있다. 최현진 통역사는 언어를 배우는 게 좋고 재미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공부를 계속해나갈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아이의 영어 공부법을 묻는 학부모들에게도 아이가 좋아하는 대상이나 주제가 있다면 영어로 된 관련 해외 콘텐츠를 찾아볼 것을 권한다.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라면 영어로 된 수학 관련 이야기나 학습서를,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좋아하면 그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어 영상을 즐겨보는 것이 효과적이다. 좋아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더 흥미롭게 자주 접할 수 있고 한국어 콘텐츠와 비교하면서 자연스레 한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배울 수 있다. 더하여 문법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무조건 영어에 노출시켜서 귀와 입을 트이게 하겠다는 방식도 자주 쓰이지만, 사실 튼튼한 문법 기반이 우선이에요. 그 기반 위에 듣기, 읽기, 말하기, 단어 외우기를 더해나가는 거죠. 우선 쉬운 기초 문법책 한 권만 선택해서 꼼꼼하게 배우는 게 좋아요. 아이가 튼튼한 기둥을 세운 다음 이파리를 풍성하게 붙여나가는 과정을 즐기도록 이끌어주셨으면 해요. 제대로 세운 나무 기둥 없이 이파리만 가지에 붙인다고 나무가 오래갈 수 없는 것처럼.”

아이를 통해 더 성장하는 엄마 되고파

“올 여름에 엄마가 돼요.”
최현진 통역사는 주위 사람들에게도 아직 알리지 않았다며 기쁜 소식을 처음 전했다. 어떤 아이가 태어날지 궁금하고 그 아이에게 어떤 엄마가 되어주어야 할지 생각이 많다.
“수많은 사회 문제의 원인이 교육과 관련이 있고 아이의 생활, 학습 등 모든 면에서 양육과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아이가 많은 것들을 자유롭게 경험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세상을 좀 더 넓게 보고 넉넉하게 포용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최현진 통역사에게 엄마가 된다는 것은 인생의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일이다. 바쁠 때는 외부와 거의 단절된 채 일에만 집중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쉬울 리는 없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어떤 일보다 거대한 도전일 것이다. 두렵기도 하지만 즐겁게 해나가고 싶다. 아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엄마가 아니라, 아이를 통해 더 열심히 일하고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고 함께 성장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즐겁게 해온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아이와 함께할 날들은 더 보람 있고 행복할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