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가장 자기다운 방식으로 성장한다

아이는 가장
자기다운 방식으로 성장한다

글. 배해수(OBS 기자) | 일러스트. 김지영 | 2019년 1호

2019. 01. 30 416

부모라는, 어른이라는, 보호자라는 호칭과 자리는 아이를 친구처럼 대하는 것을 참 어렵게 만든다.
아이가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은 성장 과정의 자연스런 흐름이고 모두 그들 자신이 뜻한 결과임을, 부모의 과도한 개입은 상처만
줄 뿐임을 시행착오 끝에야 깨닫는다. 보살핌의 시기가 지나고 있으니, 이제 아이 그대로를 바라봐주는 부모가 되리라.

화성에서 온 딸, 금성에서 온 아들

아이가 생기면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부모가 된다. 하지만 그것은 껍데기일 뿐 진짜 부모는 아이가 다 자랐을 때에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 같다. 지금은 아이와 함께 커가는 과정이니 우리의 생각과 행동도 아이의 수준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그런 만큼 아이를 친구처럼 대한다면 아이의 성격과 성향, 미세한 감정까지 살필 수 있으련만 어른이라는 이름과 때로는 보호자라는 호칭이 그것을 참으로 어렵게 만든다.
우리 부부는 이제 14살이 되는 딸과 11살 접어드는 아들을 두고 있다. 딸은 주변에 보이는 글자의 뜻을 물어 스스로 한글을 깨쳤을 정도로 지적 호기심이 많고 독립심이 강해 무리 안에 있기보다는 혼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파고드는 것을 좋아한다. 반면 아들은 감성적이고 애정을 갈구하며 집단 속에서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 이렇게 성향이 전혀 다르다 보니 남매간에 다툼도 잦고 서로 질투도 많이 한다. 그들 사이에서 우리는 참으로 당혹스러운 일을 많이 겪는다.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어 하는 아들에게 스킨십을 하며 애정 표현을 하면 딸이 서운해 하고, 딸의 영리함을 칭찬하면 아들이 뾰로통하며 질투한다. 그래도 이런 다른 성향을 서로 맞추게 하려고 노력하거나 바꾸려 고민하지는 않는다. 그냥 전혀 다른 아이들을 키우는 재미라고 생각한다. 그건 다년간 시행착오를 겪은 후 내린 결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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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산다

딸이 초등학교 2학년이 됐을 때다. 아내가 담임선생님과 면담을 했는데, 딸은 쉬는 시간이건 중간놀이 시간이건 책만 읽는단다. 그러다 가끔 벌떡 일어나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는 다시 자리에 앉고는 하며, 학습을 위해 이동하거나 급식실에 갈 때도 혼자란다. 이건 뭐지? 부모로서 불안감이 엄습했다. 처제 가족과 뭉쳐서 여행도 많이 가고 주말에는 늘 야외 활동을 해서 사회성에 어떤 문제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우리 딸이 늘 혼자라니···. 돌이켜보니 딸은 유치원 때도 단짝 친구가 없었다.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딸을 위해 학부모 모임에 나가서 친한 부모를 만들어 그들의 아이들과 놀게 해야 하나, 학급 친구들을 초대해 사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줘야 하나?
그런데 담임선생님은 얄미울 정도로 태평한 말만 했다. “OO이는 혼자 있거나 혼자 다니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 같아요. 그냥 그런 성향의 아이인 것 같습니다.” 딸이 혼자라는 것으로 어려움을 겪는 조짐이 나타나면 다시 이야기하겠다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우리 부부는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혹시나 딸이 상처를 받고 있는지 조심스럽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모인 것이 민망할 정도로 잘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우리는 그동안 해오던 대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확보하는 데 집중했다. 이후로도 딸은 단짝 친구를 만들어 집에 데려오거나 친구와 놀러 나가지도 않았다.

부모로서 때로는 개입하지만

그렇게 시간이 흘러 5학년이 되었을 때 우리는 새로운 방법을 시도했다. 휴대전화 개통을 조건으로 딸을 구립소년소녀합창단에 입단시킨 것이다. 합창단에서 함께 노래하고 춤도 추며 캠프도 같이 가면 다른 아이들과 좀 어울리지 않을까, 친한 친구가 생기지 않을까라는 기대에서였다. 첫해는 연습 위주라서 별 탈 없이 잘 다녔다. 그런데 공연 무대에 서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무대에 서는 것이 떨리거나 노래가 재미가 없거나 하는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공연을 위해 ‘같이’ 연습해야 하고 누가 틀리면 ‘같이’ 혼나고, 잘하나 못하나 ‘같이’ 맞춰 나가야 하는 등 5〜6시간씩 지속되는 리허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이유였다. 2년째 되는 여름부터 아이는 그만두겠다고 투정을 부렸다. 하지만 쉬 받아줄 수는 없었다. “너의 자리가 비면 공연 준비를 함께 해온 단원들과 선생님들은 모든 것을 다시 맞춰야 해”라며 만류했다. 갑자기 그만두는 것을 허락하면 책임감이 결여되지 않을까? 함께 가는 것에서 더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 또 혼자만 있으려고 하지 않을까? 등등 많은 걱정이 앞섰다. 그런 생각에 합창단의 연말 공연이 마무리될 때까지 6개월 동안 어르고 달래고 때론 화도 내면서 아이를 끌고 다녔다. 실로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큰 스트레스였다. 한 해 공연이 끝나고 합창단 활동을 마무리하던 날, 딸은 먼 길을 데려다주고 기다렸다 데려오는 아내의 수고가 헛되다 싶을 정도로 환호했고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갔다. 이후 몇 달이 지났다. 아이는 여전히 혼자서 많은 것을 한다. 방에 틀어박혀 몇 시간 동안 책을 읽고 몇 시간 동안 무언가를 만들며 또 몇 시간 동안 스스로 공부한다. 혼자 하는 것이, 혼자인 것이 때론 편안하고 즐거워 보인다. 한편으로는 사춘기를 맞으면서 다른 변화도 엿보인다. 학교에서 서너 명의 아이와 친해지기 시작했고 주말에는 친구들과 모임이 있다며 꾸미고 나가기도 한다. 그렇게 자신만의 세계에서 차츰 세상을 향해 날개를 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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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 만세

같은 핏줄인데 아들은 딸과 참 다르다. 태어나서 눈뜨자마자 엄마를 보면서 씨익 웃는가 하면 놀다가도 울다가도 엄마랑 눈만 마주치면 미소를 보내는 바람에 아내의 혼을 쏙 빼갔다. 아내가 화장실을 못 갈 정도로 엄마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아들은 아직도 엄마와 함께 잔다. 2학년이 됐을 때, 3학년이 됐을 때, 또 지난해 이사를 하게 됐을 때 몇 번에 걸쳐 자기 방을 쓰기로 약속했지만 약속은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사한 첫날은 그래도 약속한 게 있으니 기특하게 혼자서 잤다. 하지만 이튿날 밤, “엄마 안 되겠어요. 오늘만 같이 자요” 그러더니 사흘째엔 묻지도 않고 아내 옆에서 놀다가 먼저 잠들어버리는 수법을 썼다. 결국 다시 엄마 품으로 돌아갔다. 할머니들 이야기를 빌리면 상당히 ‘늦되다’. 독립심을 기르는 데도 별로 좋지 않다고들 한다. 주위에서 부부는 함께 자야 한다, 그러다 마마보이 된다 등등 걱정하는 소리들도 들린다.
하지만 아들에 대해서도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타고난 성향에 맞게 자리를 잡도록 기다려주기로 했다. 감성적이고 따뜻한 아이인 만큼 어릴 때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면 그 애정의 힘으로 삶의 고비들을 잘 극복해 나가리라 믿는다. 2남 3녀의 막내였던 나도 아들 녀석과 비슷한 유년기를 겪었다. 결국 부모와의 끈끈한 정이, 부모의 사랑과 신뢰에 보답하겠다는 마음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주었다.
아이들은 그동안 정말 많이 자랐고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성장 과정의 자연스런 흐름이었고 모두 그들 자신이 뜻한 결과였다. 부모의 과도한 개입은 상처만 줄 뿐이다. 저마다 때가 되면 가장 자기다운 방식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을 믿고 진심으로 격려하며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한다. ‘보살펴주다 바라봐주다 놓아줄 수 있는 부모’가 돼야 한다고들 한다. 보살핌의 시기가 지나고 있으니, 이제 아이 그대로를 바라봐주는 부모가 되리라 다짐한다.

배해수는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수도권 제2민영방송 iTV에서 기자 일을 시작했다. 사회, 정치, 국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취재 활동을 했고 iTV 마지막 뉴스 앵커를 지냈다. 현재는 OBS에서 청와대를 출입하고 있다. 첫 직장의 방송 재허가 취소로 실업의 아픔을 겪는 동안 겸손을 배웠다. 전문가 수준의 배낭여행가로 세상 떠돌기를 즐겼지만 지금은 시간 없음을 아쉬워하며 은퇴 후의 제2의 여행인생을 꿈꾸고 있다. 두 아이가 유소년기만이라도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학습보다는 놀이와 체험 활동을 주로 했는데, 학습과 특별 활동에서 두루 저력을 보여줘 감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