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공감하며 이야기는 시작되고

아픔을 공감하며
이야기는 시작되고변호사 박수진

글. 김수영 | 사진. 김선재(페니레인스튜디오) | 2018년 12호

2018. 12. 26 104

이혼, 상속 등 가족 문제 전문 변호사로 자리매김 해온 박수진 변호사.
20여 년 간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 불행을 마주한 가족관계를 주로 상담하며 수많은 의뢰인을 만나 도움을 주고 있다.
수많은 사연들을 속내까지 들여다본 박수진 변호사는 상담을 필요로 할 만큼 위기에 놓인 가정이 아니더라도,
그리고 어린 자녀가 있는 가정일수록 법률적 판단보다는 부모의 자리와 그 의미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사건의 시작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박수진 변호사는 1998년 인천시청 상근 변호사로 일 년을 근무한 후 이듬해 인천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고, 2006년부터는 서울로 옮겨와 13년째 활동하고 있다. 개업 초기만 해도 여성 변호사가 흔치 않았는데, 이후 시대적으로 증가하는 이혼, 상속 같은 가족관계 문제를 많이 맡다 보니 어느새 가족법 전문 변호사로 자리매김을 했다.
“우리나라의 부를 축적하셨던 1920년대생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서 큰 재산을 둘러싼 상속 문제가 봇물처럼 터져나왔고, 또 자기 권리에 눈을 뜬 딸들이 강하게 권리 주장을 하기 시작했죠. 형제간의 분쟁, 남아선호사상을 가진 엄마와 딸들의 갈등이 생각보다 많아요. 상속은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 수면 아래 가족관계의 문제가 터져나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가족법이라는 특징 때문에 여성 변호사의 공감 능력을 보고 찾아오는 경우가 많지만 다른 이유도 다양하다. ‘남자 변호사보다 더 꼼꼼할 것 같아서’, ‘가사 사건은 여성 변호사를 찾아가라는 주변의 말을 들어서’ 혹은 ‘같은 박씨라 믿음이 가서’, ‘조카 이름과 똑같아서’라는 뜻밖의 감성적인 이유를 들고 찾아오기도 한단다.
“대개 가사 사건은 아주 사소한 문제가 시발점이 되는데 이를 알아차리고 공감해주는 게 중요해요. 일례로 50년을 살아온 부부가 치킨 닭다리 때문에 이혼한 경우가 있어요. 부인이 치킨 무를 접시에 담아오는 동안 남편이 닭다리 두 개를 다 먹어치워서 이혼했답니다. ‘고작 그것 때문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부인은 평생 남편이 자신을 그렇게 대했기에 ‘또 시키면 되지 무슨 문제야?’라는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인 게 촉매가 된 거죠.”
박수진 변호사는 한 포털 사이트의 지식인 상담 변호사로 오랜 시간 무료 상담을 해왔다. 이혼이나 상속 등은 아주 사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는 변호사가 있어도 오히려 모르는 변호사를 찾는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한 상담 의뢰는 끊이지 않는다. 지금도 그녀가 속한 법무법인 인터넷 사이트에 24시간 무료 상담의 문을 열어놓고 있는데, 서면 답변은 책임의 소재가 있기도 해서 더욱 성실하고 정확하게 답변하려 한 번이라도 더 검토하게 된다고. 요즘은 해외에서도 상담 의뢰가 들어온다. 통화나 이메일 등 자료 전송이 원활해져서 의뢰인이 굳이 한국에 들어오지 않고도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을 할 수 있으니 한국에서 얼마든지 사건을 진행할 수 있다고 한다.

‘서브이미지

부부 싸움이 자녀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

박수진 변호사는 자신이 맡았던 이혼 사건 중에 아버지가 ‘부모참여교육’을 받고는 충격을 받아 소송을 취하한 사례를 기억한다.
“남편이 외도를 했는데 오히려 부인에게 이혼 소송을 제기했어요. 미성년자 자녀가 있으면 한 시간 남짓 부모참여교육을 받고 법원에 확인증을 제출해야 하는데, 교육중 이혼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된 거죠. 아이들은 이혼을 거의 부모가 사망하는 정도의 충격으로 받아들입니다.”
흔히 부부가 싸움을 하면 엄마는 아빠를 미워하는 감정을 자식에게 주입해 아이도 같은 감정을 갖기를 원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아이 정서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는지는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혼을 하더라도 자녀가 아빠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도록 ‘아빠의 자리’를 만들어주는 경우에는 충격이 상당히 줄어든다고 말한다.
“아이들 앞에서 절대 부부 싸움을 하면 안 되는 이유는 아이들이 자기 존재를 부정하기 때문이에요. 부부가 서로 비하하고 욕하는 것을 들으면 아이는 부모가 사랑하지 않는데 자기 때문에 결혼했고 자신이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고 인식하죠.”
박수진 변호사는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가족에게 정서적으로 쉴 수 있는 공간, 자아실현을 지지해주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도 어느 한쪽은 아이들에게 정서적인 안정을 줄 수 있도록, 어른이니까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저는 이혼을 찬성하지 않아요. 진심으로 이혼하고 싶어 찾아와도 자녀를 위해 좀 더 참을 수 없냐고 묻습니다. 이혼을 하게 되면 정서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더욱 힘들 수 있다는 점도 아주 구체적으로 실감나게 상기시켜드려요. 이혼하러 왔다가 조언을 듣고 힘을 얻어 돌아가는 경우가 많아요.”

마실 오듯 찾아와 삶의 솔루션 얻고 가길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박수진 변호사도 실은 이 일이 버거울 때가 있다. 사람들을 돕는 좋은 일이지만 그만큼 신경을 많이 쓰다 보니 두통과 소화불량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딸아이를 대하는 시선이 무척 너그럽다. 딸은 자신이 행복한 일을 선택해서 살기를 바란다는데, “아마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식은 나보다 더 잘 아는 것 같아요”라고 덧붙인다. 이처럼 아이는 그 자체로 부모에게 영향을 주는 존재이다. 그녀의 남편은 현재 검찰청에서 인권감독관으로 일하고 있는데, 인권감독관은 전국에 열세 명밖에 없다고 한다. 당초 자신의 딸이 좀 더 정의롭고 깨끗한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어서 검사를 지망했던 남편의 초심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그녀는 존경을 담아 응원한다.
조심스레 변호사라는 직업의 전망에 대해 묻자, 박 변호사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 공감이 필요한 가족법 분야는 대면 상담을 하는 변호사의 역할이 늘면 늘었지 줄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글쎄요. 상처받은 분들을 공감하고 치료해줘야 하는데, AI 변호사가 이혼이 성립하느냐는 답을 해줄 수 있겠지만 이혼 과정과 그 후에 어떻게 잘 살 수 있을지를 조언해줄 수 있을까요. 지금도 법정에 가보면 이혼 부부의 절반 이상이 한국에 온 이주 여성들이에요. 아내이자 엄마인 그 여성들도 사회적 약자로서 도움이 필요하지만 아이들까지 방치되어 문제가 심각합니다.”
언제나 ‘그’ 이후까지 고민하는 박수진 변호사는 마실 오듯이 찾아오는 의뢰인과, 때로는 함께 온 옆집 아줌마들과도 그렇게 새로운 인연을 맺고 있다. ‘변호사는 사회 의사’라는 표현처럼 법률적 정리와 권리 보호 위에 정서적 지지와 친구 같은 도움을 준다는 그녀의 큰 책임감과 자부심이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