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력을 교육할 수 있을까?

창의력을
교육할 수 있을까?
두뇌가 말랑말랑한 아이에게 부모가 할 일

글. 이유림 (고등학교 교사) | 일러스트. 김지영 | 2018년 12호

2018. 12. 26 87

새로움, 남과 다름이 가치를 창출해내는 시대이다. 엉뚱하다 생각했던 것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말도 안 된다
여긴 것들을 끈기 있게 해낸 사람들이 큰 성공을 거둔다. 이쯤 되니 나도 아이의 창의성에 신경이 쓰인다.
창의성을 위해 아이에게 꼭 필요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어느 날 남편은 아이와 나란히 앉아 이면지에 선을 그렸다. “하윤아, 이게 무슨 모양인 것 같아? 떠오르는 대로 한 번 그려볼래?” 아이는 주저함이 없다. 무엇이 떠오르는지 금세 쓱쓱 그림을 완성한다. “아빠, 재밌어. 또 그려봐.” 이번엔 구부러진 선을 그린다. 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그림을 그려나간다. 그림책 작가인 앤서니 브라운이 어린 시절 형과 즐겨 했다는 셰이프 게임(shape game)이란다. 한 사람이 먼저 종이 위에 의미 없는 선 하나를 그리면 다음 사람이 그것을 이어받아 구체적인 그림으로 완성하는, 시각적 상상력을 키우는 방법이다. 아이와 직접 해보니 생각 이상으로 즐거워했고, 아이의 기발함에 놀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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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은 어떻게 창의성을 키울까?

여느 여자아이들처럼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딸은 여섯 살 무렵 미술학원을 보내달라고 했다. 혼자서 같은 그림만 반복해 그리기가 지겨웠던 모양이다. 아파트 앞 상가에 갔더니 딱히 커리큘럼이 있는 것은 아니고 5일 중 4일은 선생님이 정해준 사물을 그리고 하루는 특별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들기, 한 달에 한 번은 요리 수업도 한다고 소개했다. 20년 전 내가 배웠던 방식과 다를 바 없는 곳에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창의능력을 계발한다는 미술 학원을 알게 되었다. 단순한 그리기가 아니라 책을 읽고 상상하여 공간을 꾸미고 채우는 다양한 활동이 새로웠다. 그 새로움에 우리 아이도 틀에 갇히지 않고 창의력이 발산될 거란 근거 없는 믿음으로 매주 운전해서 아이를 데려다주고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수고를 자처했다. 하지만 그 창의력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내 피부로 와닿는 수고로움이 커져 결국 이사를 핑계로 그만두었다. 붓이 아닌 손에 물감을 묻히고, 종이를 잔뜩 찢어 상상의 집을 만든다고 해서 창의력이 생겨날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그렇게 미술 학원을 접고 일 년 후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1학년이 되자 4월부터 상장이 쏟아졌다. 아이의 품성, 성실함에 관련된 상도 있지만 과학 상상화 그리기 대회, 독후화 그리기 대회 등 그림 관련 상이 주를 이루었다. 아직 글을 잘 모르는 1학년이기에 활동의 대부분이 그림으로 이루어지는 모양이다. 물론 우리 아이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는 상장 수여가 있던 날 내게 와서 이렇게 말한다. “엄마, ○○는 진짜 공부 잘해.”, “어떻게 알아?”, “오늘 학교에서 상도 받았어.”, “무슨 상인데?”, “무궁화를 그렸는데 진짜 똑같이 그려서 받았어.” 아이 입장에선 어찌됐건 상을 받으면 똑똑하다 생각되는 모양이다.
이쯤 되니 후회가 된다. ‘이제 시작하는 1학년에게는 자신감이 중요한데 창의성이고 뭐고 잘 그리게 해주는 곳에 보냈어야 하는구나’ 싶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도 한다. 그 자신감으로 난 결국 우리 아이가 스스로를 똑똑하다 여겨 공부를 잘하게 되길 바라는 것이구나. 그렇다면 난 창의적인 아이를 원하는 걸까, 공부 잘하는 아이를 원하는 걸까. 두말하면 잔소리, 공부 잘하는 창의적인 아이겠지. 내가 생각해도 욕심이 과하다.

다양한 활동은 창의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학교에 가니 다양한 방과후학교 수업이 있었다. 사교육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저렴한 가격이라 하고 싶은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우선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주산·암산, 아이가 하고 싶은 종이접기, 클레이를 시작했다. 그런데 다른 과목을 시키는 엄마들의 말을 들으니 교육 효과가 좋고 관심 가는 것이 생긴다. 아이도 마찬가지인지라 친구들이 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더 하고 싶은 게 있단다. 그렇게 우리는 바둑, 과학실험까지 포함해 다섯 개나 시작했다. 물론 일주일에 두 번씩이고 요일이 다르니 모든 과목을 매일 수강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규 수업이 오후 2시에 끝나는 날이면 방과후 수업까지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이 오후 4시, 집에 잠깐 들렀다 합기도 학원으로 향한다. 집에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하고 다음날 학교 갈 준비를 하고나면 금방 잘 시간이다. 처음에는 새롭게 배운 것을 자랑하던 아이가 두 달이 지나자 지쳤다. “엄마, 나 그냥 놀면 안 될까?”
결국 꼭 해야 한다는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만두었다. 처음에는 놀이터에 가도 친구가 없어서 심심하다더니, 이내 친구들과 요리조리 시간을 맞추어 약속하고 만나기 시작한다. 근처에 비밀 기지를 정해 놀이터 바닥에서 찾아낸 나름의 보물들을 몰래 숨기기도 하고, 나뭇가지로 땅을 파며 무언가를 만들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쿠키 포장 용기를 주워 강아지풀, 잡초 등을 심어와 자신이 처음으로 만든 화분이라며 기르겠단다. 물론 이미 뿌리가 잘려나간 상태라 기를 수는 없었지만. 만날 친구가 없는 날이면 방과후 수업으로 하다가 그만둔 바둑 교재를 꺼내 계속 들여다본다. 너무 많이 봤다며 다음 교재를 구입해줄 수 없냐고 요청도 한다. 바둑을 실전 없이 책으로 익히는 것이 괜찮은가 싶었지만 시키지 않아도 혼자서 해나가는 아이가 귀여워 바둑판과 책을 사줘본다. 지속적인 인풋(input)보다 이런 여유가 아이를 더 자유롭고, 더 많이 사고하게 하고, 남과 다른 생각을 할 줄 아는 유연함을 키운다는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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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최근에 나는 마음에 드는 피아노 학원이 있어 등록했다. 초등학교 때 배웠던 실력으로 집에서 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쳐보겠다며 뚱땅거리다 보니 연주다운 연주를 해보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너무 뭘 안 하는 게 아니냐’며 가끔 불안해하는 아이에게 배우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즐거움이라는 것을, 시기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무엇이든 배울 수 있음을, 그렇기에 조바심 낼 필요가 없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레슨을 받으며 클래식도 조금씩 알아가는데, 선생님이 어느 날 이런 말을 하신다. 바흐나 모차르트는 지금까지도 전 세계 사람들이 칭송하고 연주하는데, 이렇게 발전하고 더 많은 것을 배우는 시대에 왜 그런 음악가들이 나오지 않는지 음악인들도 많이 이야기를 나눈다고. 확실하진 않지만 지금과는 달리 소음도, 불빛도, 전자파도 거의 없는 시대에 그저 광활한 자연 속에서 우리를 자꾸 방해하는 핸드폰도 없이 오로지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뛰어난 예술가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겠냐고. 그렇다. 창의성을 위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여유이고, 나에게 필요한 것 역시 엉뚱한 질문을 해도 쓸데없는 소리 말라며 잔소리 하지 않고 들어줄 수 있는 여유인 것이다.

이유림은 두 아이들의 성장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싶어 육아휴직을 하고 있는 고등학교 교사이다. 아이들이 성장할수록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직접 보여주고 싶어 캘리그라피, 그림책 감정코칭, 요가, 수영, 피아노 등 여러 가지를 배우며 세상에는 다양한 즐거움이 있음을 스스로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