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영웅이 된 마녀 이야기

내 삶의 영웅이 된 마녀 이야기작가 이영미

글. 김문영 | 사진. 현진 (AZA STUDIO) | 2018년 9호

2018. 09. 21 178

승부에서 질 준비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핑계가 필요하다.
바쁜 일상, 넉넉하지 않은 주머니, 노화에 따른 체력 저하 같은 것들. 변명으로 치부하기에는 보편적이고 설득력도 있다.
이영미 작가의 《마녀체력》은 그래서 더 특별하다. 나이 마흔에 운동을 시작한 작가의 경험담은 몸의 잠재력을 일깨우고 자신의
나약한 부분을 이겨낸 영웅담이기도 하다.

마흔, 삶의 균열을 마주하다

바람이 제법 선선해진 9월초 어느 날, 검정색 원피스 차림의 이영미 작가를 혜화동에 있는 재능교육 JCC아트센터 카페에서 만났다. 차분한 커트머리에 오렌지색 브릿지 염색이 근사해 보이는 그는 운동을 시작한 이후로 자기를 꾸미는 것에 더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격렬한 운동을 거듭하면서 몸에는 탄탄한 근육이 잡혔지만 자기 안의 여성성은 오히려 더욱 부드러운 형태로 커진 셈이다.
《마녀체력-마흔, 여자가 체력을 키워야 할 때》는 마흔이라는 적잖은 나이에 운동을 시작한 출판편집자 이야기다. 운동을 하기 전 약해질 대로 약해진 체력에 회의를 느낀 주인공의 모습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만큼 보편적인 현실이다. 타고나길 왜소한 체격이었고 흔히 말하는 저질 체력이었다. 게다가 책상 앞에 앉아 원고를 보는 게 주업무인 사무직 커리어우먼. 근무 시간 외에는 가사를 돌보고 아이를 챙기기도 바빴다. 남편과 아들이 운동하러 나갈 때에도 잘 다녀오라고 손짓해주곤 돌아서면 책을 읽는 쪽이 당연했던 날들.
나이 마흔에 무언가를 바꿀 수 있을까. 많은 여성들이 주부이자 엄마로서의 정체성에 익숙해지고 직장을 다닌다 해도 특별한 성공이나 찬란한 미래를 기대하기 힘든 시기. 반짝였던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던 그때, 에디터 이영미는 몸과의 전쟁을 선택했다.

철인 3종으로 돌아오다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직접적 계기는 부부 동반 지리산 여행이었어요. 또래의 다른 여자는 잘만 오르는데 왜 나는 못하는지 자괴감이 들더라고요. 나를 돌보지 않고 사는 동안 아주 큰돈을 번 것도 아니고 직장 기반이 탄탄한 것도 아니었어요. 체력이라도 챙기자고 생각했죠.”
집 주변 공터를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달리기를 시작했고 수영 강습에 등록했다. 수영에는 소질이 없는 듯해 포기하고 싶기도 했지만 시간의 힘을 믿었다. 학창 시절에도 운동을 잘한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근성은 있었다. 학교 체력장 기록은 항상 최저이면서도 오래달리기만큼은 잘했다. 긴 호흡의 승부욕은 철인 3종 경기와 잘 맞았다. 달리기, 수영, 사이클을 함께 하면서 언제든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이 되니 운동 자체를 즐기기도 좋다. 바쁠 때는 가볍게 운동화 신고 나가서 달리기만 해도 좋고 비오는 날에는 실내 수영장에서 온 몸이 개운해지도록 땀을 흘릴 수 있다.
“단 한 명의 독자만 변화시킬 수 있으면 충분하다는 마음으로 책을 쓰기 시작했어요. 저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후배 편집자를 떠올렸죠. 마흔이라는 인생의 변곡점을 그저 무난하게 넘어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자기를 변화시킬 계기를 마주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때 나는 어떻게 했는지 들려주고 싶었어요.”

운동으로 발견한 내 몸의 가치

운동을 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출판편집자로서 일한 25년 삶을 이영미 작가는 운동을 하기 전과 후로 나누었다. 앞의 10여 년은 다섯 번쯤 직장을 옮길 만큼 스트레스에 취약했다면 운동을 시작한 후 몸담은 마지막 직장 11년은 일과 자기를 다스리고 운용했다. 든든한 체력을 밑천으로 자기를 긍정하고 주변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힘이 있었다는 의미이다.
《마녀체력》이 페미니즘으로도 읽히는 이유는 한 여성이 출판편집자로 살아온 이야기 속에 몸으로 삶과 맞서 싸우는 과정을 녹여냈기 때문이다. 몸이 아플 때, 귀찮을 때, 일이 바빠 운동할 짬이 없을 때 등등 운동을 하지 못할 여러 가지 이유들과 싸워왔다. 검고 깊은 바다의 공포와 맞서기도 했다. 자전거로 한강을 달리면 바구니에 개를 태우고 나온 남자들조차도 여자니까 무조건 추월하려 드는 통에 승부욕이 불끈 올랐다. 운동으로 남성을 제쳐본 경험은 일상의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운동은 나의 몸이 가진 놀라운 가치를 발견하게 했다.

그 다음 전성기를 향해서

책 출간 이후 전국의 동네 책방을 다니고 있는 이영미 작가는 가는 곳마다 “여성 작가가 너무 없다”는 인사를 듣는다고 한다. 남성에 비해 여성 작가의 수가 부족한데다 적극적으로 독자를 찾아가는 작가가 많지 않은 탓이다. 명함에 ‘트라이애슬릿’이라고 단정히 표기해둔 이영미 작가는 요즘 타이틀이 여럿 된다. 본업인 출판 관련 일은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인생학교 서울 교감으로서 강연도 왕성히 해내며, 인터넷 방송과 북토크까지 독자와 만나는 기회를 적극 늘려가면서 설레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다음 출간을 계획하고 있는 책은 육아를 소재로 할 생각이다. 당연히 이미 나와 있는 일반적인 육아서와는 다를 것이다. 엄마의 희생이나 인내가 아닌 행복한 엄마 되기를 이야기하려 한다. 일에 몰두하느라 살림이나 육아에 집중하지 못했지만 세 식구는 무탈했고 건강했다. 공부를 매우 잘했던 부모가 하나뿐인 아들의 성적에 초연하기가 쉽지 않았을 터임에도 아이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인정했다. 공부를 강요하는 대신 아들이 원하는 인생을 자유롭게 살라고 이야기해왔다.
이영미 작가는 부모가 행복하게 산다면 아이도 자유로울 수 있다고 믿는다. 부모가 아이를 양육하지만 자기 삶에 더 집중함으로써 아이와 건강한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많은 부모들과 공유하고 싶다. 자신의 또 다른 전성기도 그렇게 건강한 관계 속에서 피어날 것을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