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적화된 인생의 수를 생각하며

최적화된 인생의
수를 생각하며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및시스템공학과 3학년 김주현

글. 김수영 | 사진. 김선재(페니레인스튜디오) | 2018년 7호

2018. 07. 25 523

바둑 프로기사를 꿈꾸며 초등학교 시절을 연습생으로 보낸 소년.
중학교에 진학하며 학업으로 방향을 전환하자 다시금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해 우수한 학업 성취를 보였고 카이스트 산업및시스템공학과에
진학했다.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바둑처럼 자신의 인생에 한 수 한 수를 깊이 있게 두어온, 김주현 씨의 완생을 향한 스토리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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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경험도 삶의 좋은 선택을 돕는 포석

지난 4월 카투사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9월의 복학을 앞둔 김주현 씨. 아르바이트를 하며 전국 대학 산업공학도들의 학술 동아리 정기 모임에 참가하고, 인터뷰 전날까지도 한 대기업에서 진행한 기업경영체험캠프에 다녀왔다. 이공계지만 경영학과와 접목된 산업공학과의 특성상 주현 씨는 경영에도 관심이 많은데, 이번 캠프는 신규 사업 진출 시뮬레이션을 해보며 앞으로 자신이 더 공부해야 할 분야도 알게 된 좋은 기회였다고 이야기한다. 졸업 후 스타트업 창업도 조심스레 생각하고 있기에 이런 경험을 적극 활용하려 한다.
카투사 군복무도 힘들었지만 보람 있는 시간이었다. 영어 대화에 익숙하지 않았어도 움츠러들지 않았고, 나중에는 미군들과 시내 구경을 같이 다닐 만큼 편안해졌다고.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 대화하면서 생각의 방향이 다양해지고 폭도 넓어졌다고 했다. 모든 면에서 열린 마음과 긍정적인 자세로 다가가려는 그의 장점이 오롯이 드러났다.
“사실 카이스트에 입학했을 때 상상 이상으로 어렵고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 많아 열등감도 들었어요. 하지만 저를 돌아보고 반성했죠. 부러워만 할 게 아니라 내 공부법을 점검해보아야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2학년부터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는 마음으로 시간을 좀 더 투자하거나 다른 스타일을 시도하며 극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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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바둑기사를 꿈꾸던 영리한 바둑 소년

스물넷의 청년 주현 씨가 이렇게 지혜로운 삶의 태도를 갖게 된 것은 어려서부터 몰두했던 바둑의 경험 때문은 아니었을까. 엄마 손을 잡고 유치원 때부터 동네 바둑학원의 문턱을 넘었는데 이내 소질을 보이며 이세돌, 이창훈 같은 프로 기사를 꿈꾸었다.
“초등학교 6학년까지 도장에 다니면서 아마 4단까지 올라갔어요. 평일에는 오후 4시부터 밤 10시까지, 토요일에는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매일매일 연습했고 대회에도 나갔죠. 바둑은 미리 몇 수 앞을 예상하고 한 수를 두는데, 제 계획이 적중해서 그림대로 흘러갔을 때 너무 짜릿하고 재미있었어요.”
바둑 특기생으로 멀리 있는 바둑 전문학교로 진학해야 하는지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그는 학업을 택했다. 공부라고는 초등학교 때 《재능스스로한자》부터 시작해 《재능스스로영어》, 《재능스스로수학》으로 해온 게 전부였다. 그는 “재능교재로 꾸준히 공부하면서 어렵다고 느낄 때도 있었지만 중학교에 와보니 이미 기초가 잡혀 있어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특히 이과생들이 약한 영어도 무난하게 할 수 있어서 주변에서 부러워했다고.
바둑으로 채웠던 시간에 대해서는 ‘어른들 말씀처럼 바둑을 아는 게 큰 자산이라는 것을 종종 느껴왔다’고 한다.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이 있었을 때도 정작 빅데이터 기술과 바둑의 내용을 동시에 이해하는 이는 드물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선택을 되짚고 반성하는 ‘복기’의 자세나 몇 수 앞을 내다보며 상황을 넓고 깊게 파악하는 사고 역시 바둑이 알려준 인생의 교훈이라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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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 느린 것 같아도 부족함을 채우는 필수 과정

사회․정치적 이슈에 관심이 많고 인문학적 성향이 강해 변호사의 길도 생각해봤다는 주현 씨. 일반고에 진학한 후로 생명공학연구원을 희망하기도 했지만, 결국 수학과 컴퓨터 지식을 다루며 인문학적 소양까지 키울 수 있는 산업공학과를 선택했다.
“산업공학은 이공계와 경영학과가 접목된 분야예요. 기업이 얼마나 생산할지, 공장을 어디에 지으면 좋을지 수많은 요인을 계산해 최적화된 결정을 내리게 하죠. 항공사에서 최대한 많은 좌석을 팔려면 어떤 타이밍에 어느 고객층에게 할인을 해줘야 하는지 판단하는 데도 산업공학적 지식이 필요해요. 사회적 이슈를 개선한다든지, 기업의 이윤을 최대화하는 데 관심이 있는 학생에게는 참 좋은 학과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슬럼프가 찾아오자 주현 씨는 카이스트에서 열린 ‘화학과 에너지’라는 여름방학캠프에 참여했다. 카이스트와 첫 인연을 맺고, 열정 넘치는 친구들을 보며 마음을 다잡고 방황을 마무리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저는 늘 학교 과학부 게시판에 붙은 포스터를 유심히 챙겨 봤어요. 후배들도 공부가 힘들 때 이런 체험 활동을 해보길 권합니다. 새로운 동기 부여가 되고 에너지가 생기거든요. 특히 학교에서 홍보하는 활동은 인정도 받을 수 있고 선생님으로부터 좋은 정보도 얻을 수 있으니 적극 활용하는 게 좋아요.”
그는 공부 중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친구들과 대화를 하거나 축구를 하며 탈출구를 찾았다. 이때 부모의 역할은 감시자보다는 정보 전달이나 다양한 선택지의 제안자로서 충분하다고. 축구를 좋아하는 주현 씨는 중3 때부터 아버지의 축구 모임에 따라가 운동하면서 소통 방식도 익히고 어른들의 관심사에도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복학까지 남은 시간을 이용해 고등학생 두 명의 수학 과외를 맡고 있는 주현 씨는 늘 ‘반복’을 강조한다. 그 자신이 수능을 앞두고 도형 부분이 어려워 힘들 때도 끝까지 개념 이해를 위해 반복 학습을 했던 경험이 있다. 급하다고 속성풀이에 솔깃하기보다는 개념을 문제에 적용하는 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반복은 남들보다 느리게 느껴지지만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꼭 필요한 과정이라며, 절대 시간을 낭비하는 게 아니라고 학생들한테 강조한다. 그의 인생 모토라면 바둑 격언 ‘사소취대(捨小就大)’. 소를 버리고 대를 취한다는 이 말은 당장에 손해라고 생각되어도 큰 승리를 위해 판 전체를 보라는 의미라고 한다. 먼 훗날을 생각하며 지금 주어진 일을 해야 발전한다는 교훈을 실천하기 위해 주현 씨는 지금을 충실히 채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