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네 느낌과 생각이야!

중요한 건,
네 느낌과 생각이야!
기다림, 지지, 공감, 존중을 맘속에 새기며

글. 김은정 (독서지도사) | 일러스트. 김지영 | 2018년 5호

2018. 05. 25 233

며칠 전 신랑이 나 웃으라며 보내온 캘리그라피 문구가 있다. ‘니만 잘하면 아무 문제없다.’ 그때는 크게 웃고 넘겼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아이들이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 같아 마음 한 곳이 찌릿찌릿하다. ‘니만 잘하면 니 자녀는 아무 문제없다.’
소심한 두 아이를 자신감 있게 키우기 위해 내가 다른 부모보다 더 잘 해야 했고, 변해야만 했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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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선택에는 실망도, 두려움도 없다

매년 4월에는 딸아이의 학교에서 육상대회가 열린다. 반별로 대여섯 명씩 출전하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대회에 나갔다. 누가 들으면 달리기에 뛰어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딸은 안타깝게도 나의 형편없는 운동신경을 물려받았다. 나는 어렸을 때 체육 시간이, 그 중에서도 달리기를 할 때가 제일 싫었다. 늘어진 필름처럼 달리는 내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를 완벽하게 닮은 딸이 대회에 나가 받을 상처를 생각하니, 두 팔 걷어붙이고 말리고 싶었다. 대회 날, 뒤쳐져서 달리는 딸의 모습을 보니 맘이 찌릿찌릿 아팠다. 자존심도 상하고 속상할 만도 하건만, 어떻게 위로할까 고민하던 나에게 집으로 돌아온 딸은 재미있었다며 내년에도 또 나간단다. 내년엔 상을 탈 거란다. ‘저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사실 딸아이는 어릴 때부터 겁도 많고 소심해서 새롭게 시도하고 선택하는 것을 힘들어했다. 이것도 안타깝게 나를 닮았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다양한 경험을 접해주려 했고 항상 선택권을 주려고 노력했다. 그만큼 아이도 잘 자라주는 것 같았다. 그런데 2학년이 되던 해, 미술학원 선생님께서 나를 살짝 부르시더니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다. “다영이가 자신감이 없는 것 같아요. 색칠하는데 색을 고르지 못하고 생각을 말하기를 힘들어해요.” 무엇이 문제일까? 그때 육아 서적은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론은 이론일 뿐 현실과는 달랐고 결정적으로 책에 나온 아이는 내 아이와 달랐다.
그때부터 나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책에서 말한 대로 했는데, 왜 결과는 다른 걸까? 며칠을 고민한 끝에,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기다림’과 ‘지지’였다. 나는 딸에게 항상 선택할 기회를 주었지만, 결론은 내가 내렸다. 40년 이상을 산 나와 10년도 살지 않은 아이가 무언가를 생각하고 선택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나는 아이가 생각할 시간을 기다려주지 못하고, 내가 먼저 의견을 말하고 자연스럽게 강요했다. 혹여 아이가 다른 선택을 하면, 내 의견을 덧붙이고 내 의견대로 따라주길 바랬다. 즉 나의 선택을 딸의 선택인 것처럼 포장한 것이다.
자신의 선택에는 실망도, 두려움도 없다고 한다. 딸아이가 육상대회에서 낮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즐거워할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이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이 아닐까? 선택의 기회를 주고 결정하기까지 기다리고 지지해주는 것!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면, 좀 잘못된 결정이라도 괜찮지 않을까? 부모는 항상 자녀의 편임을 느끼게 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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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표현이 자유로워야 당당할 수 있다

4학년이 된 딸아이는 몸속에서 다량의 짜증 호르몬이 출렁이는 듯하다. 이게 바로 남들이 말하는 ‘초4병’이 아닌가 싶다. 화난 표정으로 집에 와서는 묻는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버리기 일쑤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내게 “나도 몰라! 아, 짜증나” 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나도 화가 나서 “이게 무슨 버릇없는 태도야? 화가 나도 참을 줄 알아야지!”라고 혼을 내면, 그날 내내 아이와의 냉전이 지속되곤 한다. 고민은 다시 시작되었다.
그때 우연히 신문을 보다 눈에 들어온 단어는 황당하게도 ‘화병’이었다. 혹시 우리 딸이 화병은 아닐까 참 많은 걱정을 했다. 그리고 이제 초등학생인 아이에게 화병이라는 병명을 붙이기가 미안해 ‘감정병’이라는 진단을 내리기로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속의 여러 감정을 참고 눌러, 억제된 감정들이 마음을 상하게 하고 이성을 잃게 만드는 병! 이제 치료법을 생각해야 한다.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구절이 생각났다. 울고 있는 사람에게 “울지 마”가 아니라 “그래, 실컷 울어라. 후련해질 때까지 울어”라고 말하라! 나도 어렸을 때, 실컷 울고 한숨 자고나면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던가? 떼를 부리던 딸아이가 실컷 울고난 후, 겸연쩍게 나를 쳐다보던 얼굴을 잠시 잊고 살았다.
나는 바로 딸아이에게 ‘혼자만의 시간’이라는 방문걸이를 만들어주었다. 딸아이가 짜증 호르몬이 방출될 때 방문걸이를 걸어놓고 방에 들어가면 아무도 방해할 수 없다. 울어도 되고 소리 질러도 된다.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느낀 후 딸아이는 방문을 열고 나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어떤 느낌이었는지 나에게 편안하게 이야기하곤 한다.
가정은 아이에게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장소이다. 밖에서 표현하지 못하고 꼭꼭 숨겨놓았던 실망이나 화, 두려움, 슬픔들을 표현할 수 있는 곳이 가정일 것이다. 이런 감정을 받아줄 사람은 부모여야 한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느끼고 발산해 빨리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도록 기다려주자. 아이의 마음이 편해야 밖에서도 당당할 수 있다.

이 세상에 틀린 생각은 없다

독서지도사로 활동하면서, 나는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내 아이의 사고력과 당당한 표현력을 키워주고 싶어 시작한 일이지만, 오히려 내가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다. 요즘 들어 나는 수업 중에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예상 외로 많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우리나라가 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세계 1위, 2위를 겨룬다는데 왜 내가 아는 아이들은 “네”, “아니요”의 단답형 대답 아니면 “모르겠는데요!”라고만 답하는 것일까? 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것일까?
10대로 접어들면서 딸아이는 제법 논리적으로 말하기에 탁월한 재능을 뽐내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또박또박 따지기’라고 해야 할 듯. 가끔은 내가 말문이 막혀서 “엄마 앞에서 또 꼬박꼬박 말대꾸야? 엄마가 더 오래 살아서 경험도 많으니까 엄마 말 들어”라며 상황을 급히 마무리할 때도 있다. 어렸을 때 “무조건 엄마 말 들어”라는 말에 억울함을 느꼈던 나였는데, 결국은 나도 비슷한 행동을 딸에게 하고 있었다.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는 “생각에는 정답이 없어! 서로의 생각이 다를 뿐이야!”라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를 기다리고 긍정적으로 들어주자고 수천 번도 마음에 새겼건만, 나는 집에서 ‘답은 이미 정해져 있어’ 대화법의 엄마였던 것이다.
나는 요즘 아이들과 대화할 때 내 의견을 최대한 줄이고 있다. “엄마는 이렇게 생각해” 대신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를, “엄마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 대신 “너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더 많이 말하려고 노력한다. 내 의견은 아이가 요청할 때만 간단히 말하는 정도로 끝내고 있다. 내 주된 역할은 아이가 생각을 편안하게 말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아이의 의견에 최대한 공감해주는 것이다. 자신의 의견이 존중받는다고 느끼면, 아이는 조금씩 자신의 생각에 자신감을 얻고 당당하게 표현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엄마도 처음이라서 그래》(김주연 글, 글담 펴냄)라는 책이 2년 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때 책 제목에 크게 공감을 한 엄마들이 많았다고 한다. 나도 처음이라서 서툴고 시행착오도 겪고 있지만, 기다림, 지지, 존중, 공감을 맘속에 새겨놓는다면, 내 아이가 지금보다는 더 자신감 있는 아이로 자랄 것 같다.

김은정은 ‘초4병’을 앓고 있는 딸과 소심함의 대가인 여덟 살 아들의 엄마다. 책이 좋아서 도서 관련 업종에서 10년 정도 발을 담근 적이 있고, 이제는 아이도 좋아져서 독서지도사로 일하고 있다. 소심한 엄마와는 달리 아이들이 당당하게 살아가길 바라며, 오늘도 노력중이다.